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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 과외비 매달 30만원 대줬는데..” 장학금 받은 날 손자가 두고 간 봉투에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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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하는 자식을 대신해 손주를 키워 주는 조부모가 많습니다. 하굣길에 데리러 가고 간식을 챙기고, 형편이 빠듯하면 쌈짓돈까지 보탭니다. 그런데 손주가 커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멀리하기 시작하면, 그 서운함은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렵습니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권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스물다섯 해를 다니던 섬유 공장이 문을 닫은 뒤, 쉰한 살에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13년째입니다. 아내와 둘이 살고, 외동딸 내외는 바로 그 아파트 103동에 삽니다.

딸이 일부러 아버지가 일하는 단지로 이사를 온 것은 외손자 때문이었습니다. 딸은 마트 사무실에서, 사위는 공단 공장에서 교대 근무를 했습니다. 외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봄, 딸이 경비실 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아빠, 얘 학교 끝나면 여기 좀 있게 해 줘. 학원 보낼 형편이 안 돼서.”

그날부터 경비실 책상 한쪽은 외손자 차지가 되었습니다. 택배 상자가 쌓인 좁은 경비실에서 아이는 받아쓰기를 하고 그림일기를 썼습니다. 권 씨는 송장에 적힌 동 호수로 구구단을 가르쳤습니다. “105동 7층이면 칠 곱하기 오가 몇이냐.” 2학년이 되자 아이는 단지 안 동 호수를 다 외웠고, 택배를 찾으러 온 주민에게 “할머니, 그거 맨 아래 칸에 있어요” 하고 먼저 일러 주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권 씨는 우산 두 개를 들고 교문까지 마중을 나갔다가 뛰어 돌아왔습니다. 겨울에는 난로 위에 고구마를 올려 두었습니다. 아이는 경비실을 “할아버지 사무실”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동에 사는 박 씨 할머니는 “저 집 손자는 경비실에서 큰다”며 요구르트를 한 줄씩 놓고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손자가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발걸음이 뚝 끊겼습니다. 어느 오후, 단지 입구에서 낙엽을 쓸던 권 씨는 친구들과 지나가는 손자를 보고 반갑게 손을 들었습니다. 친구 하나가 물었습니다. “야, 저 경비 할아버지 너 아는 사람이야?” 손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몰라. 창피하게 왜 그래.”

권 씨는 빗자루를 든 채 한참 서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밥을 반 공기 남기고 일찍 누운 남편을 보며 아내는 무슨 일이 있다는 것만 짐작했습니다.

손자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겨울, 딸이 친정에 와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위 공장 일감이 줄어 잔업이 끊겼는데, 손자는 수학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과외라도 시키고 싶은데 한 달에 30만 원이래. 지금은 못 해.”

권 씨는 그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그거 내가 내마.” 딸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빠, 그 나이에 밤새 순찰 돌아서 버는 돈을.” 권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경비실에서 큰 놈이다. 끝까지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권 씨의 월급은 이것저것 떼고 나면 2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그는 30년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점심은 아내가 싸 준 도시락으로 때웠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1080만 원이 과외비로 나갔습니다. 손자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딸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그 3년 동안 손자는 할아버지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마주쳐도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아내가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권 씨는 “다 그럴 나이다” 하며 텔레비전 소리를 높였습니다.

손자는 지난겨울 서울의 한 대학 수학교육과에 합격했고, 올봄에는 지역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뽑혔습니다. 딸에게서 소식을 들은 권 씨는 “잘됐다”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축하 전화를 걸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장학금이 나온 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3월 말 밤이었습니다. 야간 근무 중이던 권 씨가 열 시 순찰을 마치고 우비를 털며 경비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봉투는 낡은 플라스틱 필통 아래 눌려 있었습니다. 손자가 초등학생 때 쓰던 것을 권 씨가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 둔 필통이었습니다.

권 씨는 CCTV 화면을 되돌려 보았습니다. 20분 전, 우산을 든 키 큰 청년이 경비실에 들어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청년은 책상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 쓸어 보더니, 서랍에서 필통을 꺼내 봉투 위에 올려놓고 나갔습니다.

봉투 안에는 5만 원권 200만 원과 접힌 공책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하던 글씨가 어느새 반듯해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장학생 면접에서 저를 키운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아파트 경비실이라고 대답했어요. 택배 송장으로 구구단을 배워서 수학교육과까지 왔다고요. 중학교 때 친구들 앞에서 모른다고 한 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어요. 센 척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 제가 제일 자랑스러운 시간은 그 책상에서 숙제하던 때예요. 과외비도 엄마한테 들어서 알아요. 이 돈은 제 힘으로 처음 받은 돈이라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어요.]

권 씨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빗소리가 경비실 지붕을 두드렸습니다. 6년 동안 가슴 한쪽에 박혀 있던 “몰라”라는 한마디가 그제야 조용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권 씨는 우산도 없이 뛰어나갔습니다. 손자는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이 녀석아, 왔으면 얼굴은 보고 가야지.” 손자가 쑥스럽게 웃었습니다. “기다리면 울 것 같아서요.” 권 씨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이건 책값 해라. 할아버지는 쪽지만 받으마.” 손자는 할아버지 손을 봉투째 감싸 쥐었습니다. “저 7년 동안 그 경비실 공짜로 다녔잖아요. 이번엔 제가 낼게요.”

그날 밤 권 씨는 쪽지를 필통에 넣어 서랍 맨 안쪽에 두었습니다. 봉투의 돈은 이튿날 손자 이름으로 적금을 들어, 손자가 사회에 나가는 날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모진 말은 대개 마음과 반대로 나옵니다. 친구들 앞에서 센 척하느라 가장 고마운 사람을 모른 척하기도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손주에게 쏟은 시간은 손주가 잊은 듯 보여도 어딘가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내어 준 자리가 결국 그 아이가 돌아올 자리가 됩니다.

올가을, 단지 안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주말에 내려온 손자는 경비실 앞에서 빗자루를 들고 할아버지와 나란히 낙엽을 쓸었습니다. 지나가던 박 씨 할머니가 웃으며 요구르트 두 개를 경비실 창턱에 놓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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