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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생활비 20만원 몰래 보냈는데..” 12년 뒤 요양보호사가 건넨 보자기에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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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돈이 있습니다. 배우자의 부모에게 보내는 돈은 더욱 그렇습니다. 생색처럼 보일까, 빠듯한 살림에 짐이 될까 싶어 혼자 품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경상도 내륙의 작은 도시에 사는 강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열아홉에 처음 대패를 잡은 뒤 마흔 해 넘게 목수로 살았습니다. 젊어서는 남의 집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었고, 나이 들어서는 아파트 마루를 깔고 붙박이장을 짰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고, 둘 다 결혼해 서울에서 삽니다.

평생 무릎을 꿇고 일한 탓에 강 씨의 두 무릎은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갈 때면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났고, 비 오기 전날에는 밤잠을 설쳤습니다. 의사가 인공관절 수술 이야기를 꺼낸 지 몇 해가 지났지만, 강 씨는 “아직 걸을 만하다”며 수술을 미뤄 왔습니다.

강 씨의 장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시장 어귀에서 콩나물을 길러 팔며 삼 남매를 키웠습니다. 신혼 시절 처가에 인사를 가면 장모는 사위 밥그릇에만 달걀프라이를 두 개씩 얹어 주었습니다. 강 씨가 일하다 끌에 손바닥을 깊이 베였을 때 밤새 쑥을 찧어 붙여 준 사람도 장모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친정에 무심했습니다. 명절에도 친정에서 하룻밤을 넘기지 않았고, 전화도 한 달에 한 번이 고작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오빠들만 챙겼어요.” 아내는 그 한마디로 입을 닫곤 했습니다. 저녁이면 아내는 재봉틀 앞에 앉아 동네 사람들 바지 단을 줄이느라 바빴습니다.

12년 전, 처남들의 사업이 잇달아 기울어 장모를 돌볼 형편이 못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여든을 앞둔 장모는 단칸 셋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강 씨는 일을 마치고 장모 집에 들러 흰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장모님, 쌀값이라도 하세요. 집사람한테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자네 무릎도 성치 않은데 이걸 내가 어찌 받나.”
“현장 일 하루만 더 하면 되는 돈입니다. 다달이 들고 오겠습니다.”

20만 원은 강 씨가 일당에서 조금씩 떼어 공구함 밑에 모아 둔 돈이었습니다. 그 뒤로 강 씨는 매달 첫 토요일이면 “자재 보러 간다”며 집을 나서 장모에게 봉투를 건넸습니다. 장모가 기력이 쇠해 요양원에 들어간 뒤에도 면회 날마다 봉투를 이불 밑에 넣어 두고 왔습니다.

예순다섯에 일을 놓은 뒤로는 연금에서 20만 원을 떼어 내기가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봉투는 한 달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아내가 요양원을 찾는 일은 일 년에 두어 번뿐이었습니다. 강 씨는 그런 아내가 내심 서운했지만 차마 탓하지는 못했습니다.

지난여름, 장모는 아흔하나의 나이로 잠든 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열흘쯤 지나 요양원에서 짐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강 씨는 아내와 함께 요양원으로 향했습니다. 장맛비가 막 그친 뒤라 길가 웅덩이마다 흐린 하늘이 비쳤습니다.

장모가 쓰던 사물함에는 낡은 카디건 두 벌과 틀니 통, 손때 묻은 성경책이 전부였습니다. 짐을 상자에 담고 있는데 장모를 오래 돌본 요양보호사 윤 씨가 다가왔습니다. 윤 씨의 품에는 꽃무늬가 바랜 보자기 하나가 안겨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부탁하셨어요. 이건 꼭 사위 손에 직접 쥐여 드리라고요. 그동안 침대 밑에 잘 숨겨 뒀습니다.”

강 씨는 휴게실 탁자에 보자기를 올려놓고 매듭을 풀었습니다. 그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고무줄로 열 장씩 묶은 흰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낯익은 봉투들이었습니다. 겉봉마다 장모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연도와 달이 적혀 있었습니다. 봉투 하나를 열어 보니 만 원짜리 스무 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봉투 더미 맨 위에는 공책을 찢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위 무릎 고칠 돈. 한 푼도 손대지 말 것.’ 그 아래에는 회색 털실로 뜬 무릎덮개가 곱게 개켜져 있었습니다. 손이 떨려서 한 코 한 코 뜨느라 몇 달이 걸렸다고 윤 씨가 일러 주었습니다.

봉투는 모두 백마흔네 장, 2,880만 원이었습니다. 강 씨는 무릎덮개를 손에 든 채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장모님이 이 돈으로 쌀 한 됫박도 안 사셨단 말인가….”

그때 옆에 서 있던 아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나도 다 알고 있었어요. 엄마가 첫 달부터 전화로 말해 줬어요. 강 서방 무릎 고쳐 주려고 모아 둔다고, 당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요.”

강 씨가 놀라 돌아보자 아내는 눈을 내리깔았습니다.

“나도 당신한테 숨긴 게 있어요. 12년 동안 어머님께 매달 20만 원씩 부쳐 드렸어요. 밤마다 바지 단 줄여서 번 돈으로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챙기는데 나만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당신이 알면 밤일 그만두라고 할까 봐 말 못 했어요. 친정에 자주 못 간 것도 그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느라 그랬던 거예요.”

강 씨는 무릎이 꺾이듯 바닥에 털썩 앉았습니다. 일흔둘 먹은 목수가 요양원 휴게실 바닥에 앉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내도 남편의 등에 얼굴을 묻고 따라 울었습니다. 서로 무심하다고 여겼던 12년은 사실 서로의 부모를 향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윤 씨는 말없이 휴게실 문을 닫아 주었습니다.

초가을, 강 씨는 미뤄 두었던 무릎 수술을 받았습니다. 장모가 모아 둔 돈이었습니다. 수술 전날 밤 아내가 병실 침대맡에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끝까지 바란 게 이거예요. 이번엔 미루지 마요.” 재활 운동을 하는 동안 강 씨의 무릎 위에는 늘 회색 무릎덮개가 덮여 있었습니다.

퇴원하던 날,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올해 아흔다섯인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로 한참 숨을 고르다 말했습니다. “애비야, 네 처가 12년 동안 부쳐 준 돈으로 내가 겨울마다 보일러를 땠다. 너한테는 말하지 말래서 여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강 씨는 전화를 끊고 아내의 손을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부부는 서로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려고 각자 가장 아끼는 것을 몰래 내놓습니다. 엇갈린 선물은 쓸모를 잃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무엇보다 값진 것으로 남았습니다.

배우자가 무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남몰래 지켜 온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섣불리 서운해하기보다 한 번쯤 그 침묵의 이유를 헤아려 보세요. 배우자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아낀 마음은 돌고 돌아 결국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지난주 강 씨는 아내와 함께 시골 어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새 무릎으로 마을 앞 강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빈 논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툇마루에 앉은 강 씨는 장모가 떠 준 무릎덮개를 꺼내 어머니 무릎 위에 가만히 덮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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