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 항암비 4000만원 대줬는데..” 삼우제 날 산소 앞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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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는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나이가 들고 각자 가정을 꾸리면 사는 형편도 마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래도 피붙이가 아프다는 소식 앞에서 셈부터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만 그렇게 건넨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전라도 한 읍내에 사는 김 씨는 올해 쉰아홉입니다. 농협 맞은편 건물 2층에서 22년째 보습학원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학생 수학과 영어를 혼자 가르쳤고, 지금은 강사 둘을 두고 있습니다. 남편은 군청에서 정년퇴직했고, 두 딸은 결혼해 도시에 나가 삽니다.
김 씨는 사남매 가운데 셋째입니다. 위로 큰오빠와 작은언니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로는 열네 살 위인 큰오빠가 집안의 기둥 노릇을 했습니다. 김 씨가 사범대에 붙었을 때 큰오빠는 다니던 철공소에서 가불을 받아 첫 등록금을 내 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너 하나라도 공부를 끝까지 해라.” 김 씨는 그 말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학원을 처음 열던 해에도 큰오빠는 낡은 트럭에 책상 스무 개를 싣고 와 손수 2층까지 날라 주었습니다. 올케가 십 년 전 지병으로 먼저 떠난 뒤로 큰오빠는 외아들인 조카와 둘이 살았습니다. 김 씨는 명절마다 오빠 집에 반찬을 해 날랐습니다.
2년 전 봄, 큰오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이 일흔셋이었습니다. 진단을 받은 날 밤, 조카가 학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수업이 끝난 빈 교실에서 조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습니다.
“고모, 염치없는 줄 알지만 집에 돈이 없어요. 아버지가 모아 두신 건 제 가게 차릴 때 다 들어갔고요. 항암을 시작해야 하는데 보험이 안 되는 약이 많대요.”
김 씨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빠한테는 말하지 마라. 아픈 사람이 돈 걱정까지 하면 안 된다. 병원비는 내가 맡으마.”
김 씨는 3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깨고, 학원 교실을 고치려고 모아 둔 돈까지 헐었습니다. 모자라는 달에는 남편의 퇴직금 통장에 손을 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도장을 내주었습니다. 조카가 병원비 고지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오면 김 씨는 그날로 돈을 부쳤습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보낸 돈이 4000만 원이었습니다.
그사이 서운한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돈을 보내도 조카의 답장은 “네, 고모” 한 줄뿐이었고, 병원 일정은 갈수록 늦게 알려 왔습니다. 면회를 가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사람 만나기 싫어하세요” 하며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작은언니는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하고 달랬지만, 김 씨는 수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석 달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실에서 큰오빠는 앙상한 손으로 김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얘야, 병원비 걱정은 하지 마라. 내가 해 둔 게 있다.” 김 씨는 오빠가 정신이 흐려져 하는 말이려니 하고 손등만 쓸어 주었습니다.
지난 시월 큰오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맞은 삼우제 날 아침, 밤새 내린 가을비가 그친 선산에는 젖은 흙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형제들과 사촌들까지 스무 명 남짓이 산소 앞에 모였습니다. 봉분에 입힌 떼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군데군데 붉은 흙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김 씨는 돗자리를 펴고 오빠가 좋아하던 홍시와 북어포를 상에 올렸습니다.
절을 마치고 음복을 하려는데,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산길을 올라왔습니다. 장례식장에도 다녀간 읍내 부동산 정 씨였습니다. 큰오빠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습니다. 정 씨는 봉분에 술 한 잔을 올리고 조카를 한쪽으로 불렀습니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바람이 마침 그쪽에서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상주, 경황없는 줄은 아는데 사는 쪽에서 자꾸 물어서요. 상가 잔금은 언제 치르실 거요? 계약은 어르신 살아 계실 때 했으니 상속 등기부터 서둘러야 할 거요.”
김 씨는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사장님, 방금 상가라고 하셨어요?”
정 씨는 그제야 친척들의 얼굴을 둘러보았습니다. “터미널 앞 2층짜리 상가 말이에요. 어르신 명의로 된 거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매매 계약을 했지요. 아드님이 위임장을 들고 와서요.”
산소 앞이 조용해졌습니다. 작은언니가 조카를 돌아보았고, 남동생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조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 집에 돈이 없다고 했지.” 김 씨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습니다. “그 상가에서 달마다 세가 나왔을 텐데, 그 돈은 다 어디 갔냐.”
한참 만에 조카가 입을 열었습니다. “가게 대출이 밀려서요. 상가 팔면 고모 돈은 다 갚으려고 했어요.”
“갚을 생각이었으면 왜 숨겼냐. 오빠는 알고 계셨냐.”
조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침묵이 곧 대답이었습니다. 병실에서 들었던 ‘해 둔 게 있다’는 말이 그제야 김 씨의 귀에 다시 울렸습니다. 큰오빠는 그 상가로 자기 병원비를 감당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조카는 아버지의 상가에서 나온 세는 제 빚을 막는 데 쓰고, 병원비는 고모에게서 받아 냈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숨이 남아 있을 때 상가부터 팔기로 계약을 맺어 두었습니다.
김 씨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4000만 원은 잔금 받는 날 내 통장으로 보내라. 여기 계신 어른들이 다 들으셨다. 그리고 오늘 일은 오빠 앞에서 네가 직접 사죄드려라.” 조카는 봉분 앞에 무릎을 꿇었고, 친척들은 누구도 그 등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 돈은 들어왔습니다. 김 씨는 그 돈부터 남편의 퇴직금 통장에 도로 채워 넣었습니다. 돈을 돌려받았는데도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오빠 집 대문을 드나들던 지난 세월이었기 때문입니다.
피붙이를 돕는 일에 셈을 앞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돈이 오갈 때 사정을 한 번 더 묻고 확인하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일입니다. 묻지 않은 마음이 때로는 상대에게 숨을 자리를 내주기도 합니다.
첫서리가 내린 아침, 김 씨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 선산에 올랐습니다. 봉분에는 어느새 떼가 자리를 잡았고, 마른 억새가 바람에 낮게 흔들렸습니다. 김 씨는 홍시 두 개를 상석에 올려놓고 오래도록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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