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업 빚에 3억 대줬는데..” 5년 뒤 개업식장에서 아들이 한 말에 주저앉았다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빚에 쫓기면 부모는 제 살림부터 내놓습니다. 평생 일군 것을 팔아도 자식이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아깝지 않다고 여깁니다. 다만 그 돈이 훗날 어떻게 기억되느냐에 따라 부모의 남은 삶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경상도 바닷가 마을에 사는 윤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스무 살에 처음 배에 올라 마흔 해 넘게 작은 어선을 몰며 그물을 걷었습니다. 아내는 8년 전 지병으로 먼저 떠났습니다. 자식으로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큰아들, 도시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둘째 아들, 이웃 읍내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막내딸이 있습니다.
셋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은 둘째였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새벽 출항하는 배에 몰래 숨어 탔다가 뱃멀미로 하얗게 질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방학마다 선창에 나와 아버지 옆에서 그물코를 꿰었습니다. “아버지, 나 돈 많이 벌면 제일 큰 배 사 드릴게요.” 윤 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소금기 밴 손으로 아들의 머리를 쓸어 주었습니다.
5년 전 봄, 둘째가 한밤중에 고향 집을 찾아왔습니다. 큰 거래처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받을 돈은 못 받고 갚을 돈만 3억 원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마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 이대로면 직원들 월급도 못 줍니다. 3년만 빌려주세요. 반드시 갚겠습니다.”
윤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 새벽에 선창으로 나갔습니다. 20년 넘게 몬 배를 한참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배를 1억 8천만 원에, 아내와 살던 바닷가 집을 1억 2천만 원에 팔았습니다. 아들 통장으로 3억 원을 보낸 날, 윤 씨는 읍내 시장 뒤편 월세 단칸방으로 짐을 옮겼습니다. 막내딸이 울먹이며 말렸지만 윤 씨는 담담했습니다. “집은 또 구하면 된다. 네 오빠는 지금 못 일어나면 끝이다.”
그 뒤로 5년이 흘렀습니다. 연금만으로는 월세와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윤 씨는 위판장 옆에서 일당을 받고 그물 손질을 했습니다. 겨울이면 손가락 마디가 갈라져 피가 맺혔습니다. 둘째는 명절에도 잘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늘 같은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아직 많이 힘들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윤 씨는 그 말에 오히려 아들 걱정이 앞서 밥은 챙겨 먹느냐고만 물었습니다.
올가을, 함께 배를 타던 이웃 정 씨가 시장 골목에서 윤 씨를 붙잡았습니다. “형님, 둘째가 시내에 창고 딸린 큰 매장을 새로 연다면서요? 우리 조카가 거기 납품해서 개업식에 간답디다. 형님도 가시지요?” 윤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연락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업식 날 아침, 윤 씨는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양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안주머니에는 그물 손질로 모은 50만 원을 담은 축하 봉투를 넣었습니다. 아들이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 했을 거라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내내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찬 날이었습니다. 새 매장 앞에는 화환 수십 개가 길가까지 늘어서 있었습니다. ‘번창하십시오’라고 적힌 리본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매장 안에는 양복 차림의 손님들이 북적였습니다. 윤 씨는 화환 사이에 서서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이 이만큼 일어섰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낯설었습니다.
그때 화환 너머에서 아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래처 사람들이 젊은 사장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우자 아들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5년 전에 바닥까지 갔었습니다. 아버지가 고향에서 배 하시다 진 빚까지 제가 다 떠안았거든요. 그거 정리하고 맨손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손님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졌습니다. 한 사람이 거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매출이 쭉 올랐잖아요. 그때 벌써 지점 하나 더 낸다더니 결국 이렇게 크게 여셨네.” 아들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윤 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화환 받침대에 등을 기댄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빚을 진 적이 없었습니다. 빚을 진 것은 아들이었고, 그 빚을 갚으려고 배와 집을 판 것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은 3년 전에 이미 일어서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남들 앞에서는 아버지를 빚쟁이로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윤 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잔치를 망치는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입구의 방명록 탁자 앞에 앉아 봉투에서 돈을 꺼내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니던 낡은 수첩을 펴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확인서. 5년 전 봄,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사업 빚을 갚으라고 어선과 집을 판 돈 3억 원을 빌려주었다. 아들은 3년 안에 갚겠다고 약속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빚을 진 일이 없다.” 끝에 날짜와 이름을 적고 서명했습니다. 윤 씨는 그 장을 찢어 빈 봉투에 넣고 겉에 ‘둘째에게’라고만 쓴 뒤 접수대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날 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 오셨으면 말씀을 하시지요. 손님들 앞이라 분위기 맞추느라 한 말인데….” 윤 씨는 조용히 말을 끊었습니다. “나는 네가 일어선 줄도 모르고 5년을 그물을 꿰었다. 빚쟁이 소리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너는 그동안 아버지 손이 어떻게 됐는지 한 번도 묻지 않더라.”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 윤 씨는 막내딸과 함께 시내 공증 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월세 보증금과 연금을 아껴 모은 예금을 막내딸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공증받았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연금 통장과 살림 관리도 막내딸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아빠, 오빠한테 받을 돈은요?” 막내딸이 묻자 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건 네 오빠 양심에 맡긴다. 그 돈 기다리느라 더는 늙고 싶지 않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는 사흘을 싸워 잡은 청새치를 끌고 돌아오지만, 항구에 닿았을 때 남은 것은 앙상한 뼈뿐입니다. 그래도 노인은 자신이 무엇과 싸웠는지 알았기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내준 돈은 끝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떤 돈이었는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말없이 참는 부모를 자식은 생각보다 쉽게 잊습니다. 남은 삶과 이름을 지키는 일도 부모의 몫입니다.
초겨울 문턱에 윤 씨는 막내딸과 함께 옛 선창의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예전에 자기 배가 매여 있던 자리에는 낯선 배가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고,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붉게 번졌습니다. 막내딸이 아버지의 갈라진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 주었습니다. 윤 씨는 딸의 손을 꼭 쥔 채 해가 바다에 잠길 때까지 방파제 끝에 서 있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