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땅 1억2000만원 줬는데..” 15년 뒤 남편이 남긴 통장 한 권에 울었다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친정 식구에게 건넨 돈은 남편에게 꺼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미안해서 숨기고, 숨겼기 때문에 더 미안해지는 일이 오래 이어지기도 합니다.
장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시장 골목에서 32년째 옷 수선집을 하고 있습니다. 한 평 반짜리 가게에 재봉틀 두 대와 다리미 하나를 두고, 바짓단을 줄이고 지퍼를 갈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40년 동안 보일러와 수도 설비 일을 하다 지난봄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딸은 서울로 시집가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장 씨에게는 여덟 살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장 씨가 동생을 업어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중학생이던 장 씨는 새벽마다 동생 도시락을 쌌고, 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는 수선집 일당을 모아 통닭 두 마리를 들고 면회를 갔습니다. 동생은 그때 철조망 앞에서 울면서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나중에 꼭 갚을게.”
동생은 끝내 고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 남아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태풍에 무너진 해에는 빚이 크게 늘었고, 장 씨는 명절마다 동생의 얼굴이 조금씩 더 늙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15년 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된 논밭 가운데 장 씨 몫으로 돌아올 땅은 시세로 1억2000만 원쯤 되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날 밤, 동생이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말했습니다.
“누나, 누나 몫은 내가 땅을 팔아서라도 돈으로 맞춰 줄게. 조금만 기다려 줘.”
장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땅 네가 다 가져라. 아버지 마지막까지 모신 게 너다. 그 땅 팔면 너는 농사 못 짓는다.”
장 씨는 상속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정하는 협의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자기 몫까지 모두 동생 앞으로 가도록 한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게 빚뿐이더래요. 우리는 받은 거 없어요.”
남편은 신문을 접으며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장인어른 보내느라 고생했소.” 그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 무렵 남편이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도 늙으면 쓸 연금 하나 들어 둡시다. 당신 이름으로.” 장 씨는 남편을 따라 은행에 가서 신분증을 내밀고 서류에 이름을 썼습니다. 납입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 장 씨는 작은 보험 하나쯤으로 여기고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 씨의 마음 한구석은 늘 무거웠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밑창이 닳은 작업화를 수선집에 들고 와 꿰매 신었고, 딸 결혼 때는 적금을 깨고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장 씨는 그 땅을 떠올렸습니다. ‘그 돈이 있었으면 저 사람 신발 한 켤레는 새로 사 줬을 텐데.’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처남 농사는 요새 어떻다더냐” 하고 물으면 장 씨는 괜히 바늘에 실을 꿰는 척했습니다. 동생은 해마다 가을이면 햅쌀 네 포대를 보내왔고, 남편은 그 쌀로 밥을 지을 때마다 “처남 쌀이 제일 맛있다”고 했습니다. 장 씨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가슴이 찔렸습니다.
지난봄, 남편은 일하러 나간 아파트 기계실에서 쓰러졌습니다. 심근경색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틀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장 씨는 남편에게 끝내 땅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한스러웠습니다.
석 달 뒤 장마가 끝난 칠월 말, 딸이 내려와 함께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베란다 창고에는 남편이 40년 동안 쓰던 빨간 철제 공구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파이프렌치와 몽키스패너, 기름때 묻은 장갑을 하나씩 꺼내던 딸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엄마, 바닥이 이상해. 밑에 판이 하나 더 있어.”
얇은 합판을 들어 올리자 비닐봉지에 꼭꼭 싸인 꾸러미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장 씨 이름이 적힌 연금저축 통장과 반으로 접힌 메모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15년 전 은행에서 이름을 써 넣었던 바로 그 통장이었습니다.
딸이 통장을 넘기다 손을 멈췄습니다. 15년 동안 다달이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50만 원, 70만 원, 어떤 달은 30만 원. 일감이 없던 겨울에는 금액이 줄었다가 봄이면 다시 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의 잔액은 1억2000만 원을 조금 넘기고 있었습니다.
장 씨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를 펼쳤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남편의 글씨였습니다.
[당신이 동생한테 준 만큼 내가 채워 놓는다. 잘한 일이니 미안해하지 마시오.]
장 씨는 공구함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 사람이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그날 저녁 장 씨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참 말이 없던 동생이 목멘 소리로 털어놓았습니다.
“누나, 사실은 그때 고맙다고 누나한테 전화했는데 매형이 받았어. 내가 땅 얘기를 다 해 버렸지. 다음 주에 매형이 혼자 시골까지 내려왔더라. 누나 마음 다치니까 절대 모른 척하라고, 그 땅 팔지 말고 잘 지으라고. 그 말 지키느라 15년 동안 혼났어.”
남편은 해마다 동생이 보낸 쌀로 밥을 지으며 “처남 쌀이 제일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를 안심시키려는 남편 나름의 대답이었습니다. 장 씨가 혼자 미안해하던 15년 동안, 남편은 공구함 밑에 아내의 노후를 한 장씩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이 엄마의 등을 쓸어 주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외삼촌 챙기는 거, 자랑스러워했나 봐.” 장 씨는 메모지를 가슴에 대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살다 보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숨긴 사람은 그 일이 들킬까 봐 마음을 졸이지만, 곁에 있는 사람은 이미 알고서 조용히 덮어 주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탓하는 대신 말없이 채워 주는 것, 그것이 오래 함께 산 부부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깊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너무 오래 품고 있지 마십시오. 말하지 못한 고마움은 떠난 뒤에야 더 무겁게 남습니다.
늦가을 오후, 장 씨는 시장 골목 수선집에서 남편의 낡은 작업복 소매를 꿰매고 있습니다. 가게 문 앞으로 은행잎이 노랗게 쌓이고, 재봉틀 옆 선반에는 동생이 올해도 보내온 햅쌀 한 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장 씨는 바늘을 멈추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한 땀을 이어 갑니다.
- “거실에서 자라고요?..” 명절에 아들 가족 재울 때 며느리가 가장 고마워하는 준비 1위
- “아랫집 천장이 젖었대요..” 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1위
- “화장품만 바르지 마세요” 날로 먹던 걸 기름에 살짝 볶으면 달라지는, 중장년 푸석한 피부에 좋은 ‘3가지 음식’
- “이 집은 창문을 안 여나?..” 호흡기 전문의가 꼽은 겨울 난방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1위
- “그 약, 아까 드셨잖아요..” 약사가 손사래 치는 60대 약 복용 절대 금지 실수 3가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