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누수 공사비 800만원 먼저 냈는데..” 1년 뒤 윗집이 넣은 민원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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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다 보면 이웃 덕을 보기도 하고, 이웃 때문에 속을 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웬만한 일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의 양보를 당연하게 여기고 책임마저 떠넘기기 시작하면, 참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문옥자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30년 동안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다 몇 해 전 가게를 접었습니다. 지금은 일흔셋 남편과 함께 지은 지 25년 된 아파트 9층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몇 해 전부터 천식을 앓고 있어 겨울이면 기침을 달고 삽니다. 옥자 씨는 남편을 위해 집 안을 늘 쓸고 닦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남편의 기침은 한동안 잠잠했습니다.

지난해 봄, 10층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부부는 이사 오기 전 욕실과 주방을 모두 뜯어고치는 공사를 했습니다. 공사하는 한 달 동안 소음과 먼지가 심했지만, 옥자 씨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니 이해해야지” 하며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옥자 씨네 욕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방울이던 물이 점점 늘어나더니, 안방 천장 벽지까지 누렇게 번졌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벽지 모서리에 시커먼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옥자 씨는 관리사무소에 연락했습니다. 관리소 직원이 위아래 집을 오가며 살펴본 끝에 원인을 찾았습니다. 10층 욕실 공사 때 바닥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물이 아래층으로 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누수 확인서를 써 주었습니다.

옥자 씨는 10층 부부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 되는 사람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험으로 처리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옥자 씨는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보험 처리 소식은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면 “알아보고 있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사이 곰팡이는 안방 벽 절반까지 번졌고, 남편의 기침은 다시 심해져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옥자 씨는 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남편 병원에서 곰팡이를 당장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옥자 씨는 누수 탐지 업체와 인테리어 업체를 불러 천장과 벽지를 모두 새로 했습니다. 공사비는 800만 원이 들었습니다.

옥자 씨는 미용실을 할 때부터 몸에 밴 습관대로 모든 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물이 새던 천장 사진, 곰팡이 핀 벽 사진, 누수 탐지 업체의 원인 보고서, 공사 견적서와 영수증까지 파일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10층 부부와 주고받은 문자도 하나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 옥자 씨는 서류를 챙겨 다시 10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공사비 영수증이에요. 보험 처리가 되면 이 금액만 보내 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아내 되는 사람이 문틈으로 서류를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습니다. “그게 우리 집 때문이라는 증거 있어요?”
옥자 씨는 기가 막혔습니다. 관리사무소 확인서까지 있다고 하자, 아내는 “관리소 직원이 전문가예요?” 하고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 뒤로 10층 부부는 옥자 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남편은 “돈 잃은 셈 치고 그만 잊자”고 했습니다. 옥자 씨도 이웃끼리 얼굴 붉히기 싫어 한동안 마음을 접었습니다. 800만 원은 두 사람에게 한 해 생활비의 큰 몫이었지만, 남편 건강이 좋아진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 무렵 10층 부부는 새 차를 뽑았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번쩍이는 수입 차가 세워진 것을 보며 옥자 씨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800만 원이 없어서 못 갚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올여름,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0층에서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원 내용을 들은 옥자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9층 할머니가 수시로 찾아와 돈을 달라며 괴롭힌다. 지난해 9층 공사 소음으로 아이가 잠을 못 잤다.’
1년 넘게 참아 준 공사비는 갚지 않으면서, 오히려 옥자 씨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몰아세운 것이었습니다. 관리소 직원조차 민망한 얼굴로 “할머니, 저희도 난처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 밤 옥자 씨는 파일을 꺼내 식탁 위에 펼쳐 놓았습니다.

옥자 씨는 다음 날 아침 법원 민원실을 찾아갔습니다. 3,000만 원 이하의 돈을 돌려받는 일은 소액사건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청구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소장을 쓰고, 그동안 모아 둔 사진과 보고서, 영수증, 문자 내역을 모두 증거로 붙였습니다.
10층 부부는 법원에서 서류를 받고서야 허둥지둥 연락을 해 왔습니다. “할머니, 이렇게까지 하실 줄 몰랐어요. 우리끼리 이야기로 해결하면 안 될까요?” 옥자 씨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1년 동안 이야기하자고 한 사람은 나였어요. 이제는 법대로 합시다.”
몇 달 뒤 법원은 10층 부부에게 공사비 800만 원과 그동안의 이자까지 물어 주라고 결정했습니다. 옥자 씨가 남겨 둔 사진과 서류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10층 부부는 결정문을 받고 일주일 만에 돈을 보내왔습니다.

돈이 들어온 날 저녁, 10층 아내가 과일 상자를 들고 9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할머니, 그동안 죄송했어요. 민원도 취소했습니다.” 옥자 씨는 상자는 돌려보내고 사과만 받았습니다. “이웃끼리는 잘못했을 때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관리사무소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층간 누수 처리 안내문’을 만들어 단지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누수가 생기면 원인을 확인하고, 사진과 서류를 남기고, 보험 처리를 미룰 때는 기한을 정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웃들은 “9층 할머니 덕분”이라며 옥자 씨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남편은 돌려받은 돈으로 옥자 씨에게 따뜻한 겨울 외투 한 벌을 사 주었습니다. “당신 아니었으면 그 돈 그냥 날렸지. 미용실 할 때 장부 쓰던 버릇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옥자 씨는 외투를 입어 보며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 주말, 옥자 씨는 남편과 함께 해운대 시장 골목의 오래된 분식집에 갔습니다. 어묵탕 한 그릇에 김밥 두 줄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남편이 뜨거운 어묵 국물을 옥자 씨 그릇에 덜어 주며 말했습니다. “고생 많았소.” 옥자 씨는 국물 한 모금에 1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에서 거인은 자기 정원에 높은 담을 쌓고 아이들을 쫓아냅니다. 그러자 그 정원에만 봄이 오지 않고 겨울이 계속됩니다. 이웃을 외면하고 내 것만 지키려는 마음은 결국 내 집 앞에 차가운 겨울을 불러옵니다.

이웃 사이의 다툼은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닙니다. 잘못이 분명할 때는 감정 대신 기록을 남기고, 정해진 절차대로 차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오늘부터 사진 한 장, 영수증 한 장부터 남겨 두세요.
올가을 옥자 씨는 남편과 함께 해운대 달맞이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언덕길 벚나무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탁 트인 바다 위로 저녁노을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전망대 난간에 기대어 해가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욕심쟁이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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