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 몰래 형님 제사비 대줬는데..” 15년 뒤 장조카가 보낸 청첩장에 펑펑 울었다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의 맏이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 그 빈자리는 남은 형제가 메우게 됩니다. 제사상을 차리고 산소의 풀을 베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 일을 말없이 떠맡은 사람은 대개 생색 한 번 내지 않고 그렇게 늙어 갑니다.
박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경상도 산골 읍내 장터 어귀에서 마흔다섯 해째 의자 두 개짜리 이발소를 하고 있습니다. 커트는 만 원이고 면도까지 하면 만 삼천 원입니다. 손님은 대부분 박 씨와 함께 늙어 가는 동네 어른들입니다. 아내와 단둘이 살고, 외아들은 도시에서 직장을 다닙니다.
박 씨에게는 다섯 살 위의 형님이 있었습니다. 집이 가난해 형님은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사판으로 나갔습니다. 박 씨가 스물다섯에 처음 가게를 낼 때, 형님은 몇 달 치 품삯을 털어 중고 이발 의자를 사 왔습니다. “기술 있는 놈이 앉힐 자리는 있어야 안 되겠나.” 그 의자는 지금도 이발소 창가 쪽에 놓여 있습니다.
형님의 외아들, 그러니까 장조카의 첫 머리를 깎아 준 사람도 박 씨였습니다. 조카가 어릴 때는 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걸쳐 그 위에 앉혔습니다. 조카는 학교가 끝나면 이발소에 들러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었고, 박 씨는 그때마다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여 주었습니다.
열여섯 해 전 겨울, 형님이 공사장에서 쓰러졌습니다. 심근경색이었고 그때 나이 쉰다섯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교복을 입은 고1 조카는 끝내 울지 않고 입술만 깨물고 서 있었습니다. 형수는 그 뒤로 읍내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아들을 키웠습니다.
첫 기일을 앞두고 형수가 박 씨를 찾아왔습니다. “도련님, 제사를 우째 지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더.” 박 씨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형수님, 문중에서 맏집 제사 몫으로 나오는 돈이 있습니더. 제사는 우리 집에서 지내고, 그 돈으로 하면 됩니더. 걱정 마이소.” 그런 돈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형님 기일에 부모님 제사 두 번, 설과 추석 차례, 가을 벌초 일꾼 품삯까지 합치면 해마다 150만 원 남짓이 들었습니다. 박 씨는 매일 저녁 가게 문을 닫고 그날 번 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따로 떼어 ‘제사 통장’에 넣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 형님한테 의자값 갚는 셈 칩시다.”
세월이 흘러 조카는 도시의 대학을 나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전화 한 통으로 끝나는 해가 늘었고, 기일에 오지 못한 해도 있었습니다. 박 씨는 해마다 혼자 예초기를 메고 산에 올랐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려 쉬어 가는 횟수가 늘어 갔습니다. 아내가 “공부 시켜 놓으니 남이 됐네요” 하면 박 씨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잠자리에 누우면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올해 구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손님 없는 이발소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우체부가 젖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조카였습니다. 연한 미색 청첩장이었습니다.
박 씨는 돋보기를 찾아 쓰고 청첩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혼주 칸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신랑 쪽 아버지 자리에 형님의 이름이 아니라 박 씨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 자리에는 형수의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박 씨는 떨리는 손으로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야, 이거 잘못 찍힌 거 아이가.” 수화기 너머에서 조카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작은아버지, 맞게 쓴 겁니다. 그날 작은어머니랑 꼭 같이 오이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월의 맑은 토요일, 박 씨는 십 년 묵은 양복을 꺼내 입고 도시의 예식장으로 갔습니다. 혼주석에 앉으니 손이 어디 둘 데를 몰랐습니다. 식이 끝나자 조카는 박 씨 내외의 손을 이끌고 폐백실로 갔습니다. 대추와 밤이 올라간 폐백상 앞 가운데 자리에 박 씨 부부를 앉히고, 형수는 그 옆에 앉혔습니다.
절을 올린 뒤 조카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수첩 하나를 꺼냈습니다. 표지가 닳아 모서리가 둥글어져 있었습니다. 첫 장에는 열일곱 살 아이의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첫 기일. 작은아버지 장 보신 것, 대략 32만 원.’
그 뒤로 열다섯 해 동안의 제사와 벌초가 한 줄 한 줄 적혀 있었습니다. 제수 장보기, 예초기 기름값, 벌초 일꾼 품삯, 산소 떼 입힌 값까지 빠진 것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 맨 아래에는 ‘합계 2,25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고1 때 문중 어른을 찾아가서 여쭤 봤습니다. 그런 돈은 없다 카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적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장날마다 제사 장 보시는 거, 혼자 낫 들고 산에 오르시는 거, 저 다 봤습니다.”
형수가 입을 막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도련님, 문중 돈이라 카더니….”
조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연락 못 드린 거 죄송합니다. 빈손으로 찾아뵙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집 장만해서 제사 모실 방 생기면 그때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가시고 제 아버지 노릇 해 주신 분은 작은아버지였습니다. 앞으로 제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벌초도 이제 제가 하겠습니다.”
박 씨는 수첩을 받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어깨가 들썩이더니 폐백상 앞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니 아버지가 내한테 의자 하나 사 줬다. 그 의자로 사십오 년 밥 먹고 살았다. 나는 그 값 갚은 것뿐이다.” 새신부가 다가와 박 씨의 손등에 손을 얹었습니다.
『논어』에는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줄 알고 묵묵히 해 온 일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고, 그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연락이 뜸한 자식이나 조카를 두고 서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미처 말하지 못한 고마움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운함을 꺼내기 전에 한 번쯤은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
지난주 박 씨는 조카 내외와 함께 형님 산소에 올랐습니다. 이미 조카가 말끔하게 풀을 베어 놓은 봉분 위로 늦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산비탈의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박 씨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술잔을 올리는 조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 “동생에게 땅 1억2000만원 줬는데..” 15년 뒤 남편이 남긴 통장 한 권에 울었다
- “거실에서 자라고요?..” 명절에 아들 가족 재울 때 며느리가 가장 고마워하는 준비 1위
- “아랫집 천장이 젖었대요..” 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1위
- “화장품만 바르지 마세요” 날로 먹던 걸 기름에 살짝 볶으면 달라지는, 중장년 푸석한 피부에 좋은 ‘3가지 음식’
- “이 집은 창문을 안 여나?..” 호흡기 전문의가 꼽은 겨울 난방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1위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