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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요양원비 1800만원 냈는데..” 1년 뒤 언니가 내민 반지 케이스에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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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프면 자식들 가운데 누군가는 곁을 지키게 됩니다. 대개 가까이 사는 자식, 마음 약한 자식이 그 몫을 떠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남긴 물건이 다른 자식에게 돌아가면, 그동안 견뎌 온 시간이 한꺼번에 서러워지기도 합니다.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쉰일곱입니다. 12년째 학원 차량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후 두 시면 노란 승합차를 몰고 초등학교 앞에 서고, 밤 열 시에 마지막 아이를 내려 줄 때까지 같은 길을 일곱 번 돕니다. 남편은 동네에서 작은 철물점을 하고, 외아들은 지방에서 직장을 다닙니다.

한 씨의 어머니에게는 다이아 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목수였던 아버지가 몇 년을 모아 결혼 20주년에 사 준 반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2년 뒤 공사장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반지를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 잔칫날에만 꺼내 꼈습니다. “이건 느그 아버지 손때다.” 반지를 닦을 때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뒤 어머니는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새벽마다 시루에 물 붓는 소리가 한 씨에게는 어린 시절의 시계 소리였습니다. 세 살 위 언니는 열일곱에 읍내 봉제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첫 월급날 언니는 봉투째 어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 동생은 고등학교 꼭 보내.” 한 씨는 그 돈으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언니는 스물셋에 남쪽 바닷가 도시로 시집을 갔고, 그 뒤로는 명절에나 얼굴을 보았습니다.

4년 전 겨울,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오른쪽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한 씨는 몇 달을 집에서 모셨지만, 운행하는 동안 어머니를 혼자 둘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집 근처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비용의 상당 부분은 공단에서 나왔지만, 본인부담금에 식비와 기저귀 값까지 매달 50만 원 안팎이 들었습니다.

언니네는 그 무렵 형부의 수산물 가게가 문을 닫아 빚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은….” 전화기 너머로 언니가 말끝을 흐리면 한 씨는 “언니는 신경 쓰지 마” 하고 먼저 끊었습니다. 한 씨는 월급에서 요양원비를 떼어 냈고, 아들 결혼 자금으로 붓던 적금도 하나 깼습니다. 3년 동안 낸 돈이 1800만 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던 날, 한 씨에게 부탁을 하나 했습니다. “작은애야, 네 이름으로 통장 하나 만들어 오너라. 엄마 용돈 넣어 둘 데가 있어야지.” 한 씨는 통장을 만들어 어머니 손에 쥐여 드렸고, 곧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운행 사이 빈 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습니다. 한 씨는 그 틈에 요양원으로 달려가 어머니 손톱을 깎고 죽을 떠먹였습니다. 어머니는 성한 왼손으로 딸의 손등을 쓸며 “밥은 먹고 다니냐” 하고 묻곤 했습니다.

작년 여름, 어머니의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언니가 올라왔습니다. 두 딸이 침대 곁에 앉자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반지는… 큰애가 가져라.”

언니는 대답 없이 고개만 숙였습니다. 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 세워 둔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에 이마를 댔습니다. ‘내가 3년을 매달렸는데, 엄마 마음은 결국 언니였구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태우러 갈 시간이었습니다. 한 씨는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그해 가을에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를 마친 뒤 언니는 반지를 챙겨 내려갔습니다. 그 뒤로 자매의 전화는 눈에 띄게 뜸해졌습니다. 남편이 “장모님도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하고 달래면 한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생각은 무슨. 아픈 손가락이 언니였던 거지.”

그리고 1년이 지나 어머니의 첫 기일이 돌아왔습니다. 10월 말,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한 씨는 거실에 제사상을 차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콩나물무침을 한가운데 올렸습니다. 언니는 첫차를 타고 올라와 젖은 우산을 현관에 세워 두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남편이 상을 치우러 부엌으로 들어가자, 언니가 가방에서 자줏빛 벨벳 케이스를 꺼냈습니다. 어머니의 반지 케이스였습니다. 언니는 그것을 한 씨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제 말해도 되겠다.”

“그걸 왜 나한테 줘. 엄마가 언니 주라고 한 거잖아.”

“열어 봐.”

케이스를 여는 순간 한 씨는 숨을 멈췄습니다. 반지가 꽂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 작게 접힌 통장 하나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3년 전 어머니 부탁으로 만든 바로 그 통장이었습니다. 첫 줄에는 680만 원이 찍혀 있었고, 그 뒤로 매달 30만 원 남짓이 꼬박꼬박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지막 잔액은 1800만 원이었습니다.

쪽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작은애야. 엄마 요양원비 네가 다 낸 거 안다. 달마다 적어 뒀다. 반지는 언니 준다 했지만 사실은 팔았다. 돈 준다 하면 너는 안 받을 거고, 언니 앞에서 너만 받으면 언니한테 미안해할 거라 그랬다. 언니가 너 학교 보낸 거 너도 알지. 둘이 서로 미안해하지 말고 살아라. 왼손으로 써서 글씨가 이렇다.]

언니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반지 마지막으로 한 번 껴 보시고는 나보고 팔아 오라 하셨어. 연금 나오는 것도 달마다 이 통장에 옮겨 달라 하시고. 장례 끝나자마자 주면 너는 엄마 생각에 그 돈 한 푼도 못 쓴다고, 1년만 지나서 주라 하셨어.”

언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습니다. “그 1년 동안 네가 나 미워하는 거 다 알았어. 그래도 엄마 부탁이라 참았다.”

한 씨는 통장을 가슴에 끌어안고 언니 어깨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3년 동안 운전대 앞에서 삼킨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부엌에서 나오던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다시 돌아섰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셈법은 자식이 보는 장부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보다, 남은 자식들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바로 등을 돌리기보다 한 번쯤은 기다려 보세요. 말하지 못한 사정은 대개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고, 그 사정 안에는 생각보다 깊은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11월 첫 주말, 한 씨는 언니와 함께 어머니가 콩나물을 팔던 옛 장터 길을 걸었습니다. 길가 은행나무마다 노란 잎이 수북이 내려앉아 발밑이 폭신했습니다. 두 자매는 어머니가 앉던 골목 어귀에 한참을 서 있다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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