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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운전 연수비 200만원 내줬는데..” 3년 뒤 쓰러진 날 며느리 차에서 울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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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가까워지기도 어렵고, 멀어지기는 쉽습니다. 서로 조심하느라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세월만 흐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무심한 듯 건넨 작은 배려 하나가 훗날 생각지 못한 순간에 목숨을 지키는 끈이 되기도 합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박영희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과 함께 청주 외곽 시골 마을에서 40년 동안 방앗간을 했습니다. 몇 해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방앗간을 정리한 뒤, 마을 끝자락 옛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외아들 상훈이는 장거리 화물차를 몰았습니다. 한 번 일을 나가면 사나흘씩 집을 비우기 일쑤였습니다. 며느리 은정이는 상훈이와 결혼해 영희 씨 집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옆 마을에 살며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은정이는 운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친구 차를 타고 가다 큰 사고를 겪은 뒤로 운전대를 잡는 것조차 무서워했습니다. 버스가 하루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은정이는 아이가 아프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4년 전 겨울, 작은 손주가 한밤중에 고열로 경기를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상훈이는 경상도로 일을 나가 있었고, 은정이는 아이를 안고 택시를 부르느라 한 시간을 길에서 떨었습니다. 다음 날 그 이야기를 들은 영희 씨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영희 씨는 며칠 뒤 은정이를 불러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방앗간을 정리하고 모아 둔 돈에서 떼어 낸 200만 원이었습니다. “이걸로 운전 배워라. 시골에서 차 없으면 발이 묶인다. 애들 아플 때 네가 데리고 병원 가야지.”

은정이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어머니, 저 운전 못 해요. 무서워서 안 돼요.” 영희 씨는 은정이의 손에 봉투를 쥐여 주었습니다. “무서우니까 배우는 거다. 천천히 해라. 몇 번 떨어져도 괜찮다.” 은정이는 그날 봉투를 받아 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은정이는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붙었지만 도로 주행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영희 씨는 전화로 말했습니다. “괜찮다. 나는 경운기도 다섯 번 만에 몰았다.” 은정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면허를 딴 은정이는 남은 돈으로 도로 연수를 받았습니다. 영희 씨는 아들이 쓰던 낡은 경차를 은정이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은정이는 시속 40킬로미터를 넘기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은 “박 씨네 며느리 차는 걸어가도 따라잡겠다”며 웃었습니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수군거림도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운전까지 가르쳐 주고, 별일이다.” 시누이는 “엄마는 우리한테는 그렇게 안 해 줬잖아” 하며 서운해했습니다. 영희 씨는 그런 말에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은정이가 아이들을 태우고 장을 보러 다니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도 은정이는 여전히 말수가 적은 며느리였습니다. 명절이면 부엌일을 묵묵히 하고, 시어머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영희 씨는 가끔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밤늦게 영희 씨 집 앞 골목으로 낯익은 경차 불빛이 천천히 지나갔다가 돌아가는 날이 종종 있었습니다. 영희 씨는 잘못 본 거겠지 하며 커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올해 1월, 눈이 많이 내린 날 밤이었습니다. 혼자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영희 씨는 갑자기 오른손에 힘이 빠지며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말을 하려는데 혀가 꼬여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희 씨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왼손으로 겨우 휴대전화를 집었습니다. 단축 번호 1번은 아들이었지만, 아들은 그날도 지방에 가 있었습니다. 영희 씨는 떨리는 손으로 2번을 눌렀습니다. 은정이었습니다. 영희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소리만 냈습니다.

은정이는 그 숨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은정이는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린 뒤 곧장 차 열쇠를 집어 들었습니다. 눈이 쌓인 시골길을 달려 은정이는 15분 만에 영희 씨 집 마당에 차를 세웠습니다.

쓰러진 시어머니를 본 은정이는 보건소 교육에서 배운 대로 얼굴과 팔을 살폈습니다. 한쪽 입꼬리가 처지고 오른팔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뇌졸중이었습니다. 119 구급차가 눈길 때문에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자, 은정이는 구급대와 통화하며 영희 씨를 차에 태웠습니다.

은정이는 구급대가 알려 준 대로 큰길에서 구급차를 만나기 위해 눈길을 달렸습니다. 운전대를 꽉 쥔 은정이의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뒷좌석에 누운 영희 씨의 귀에 은정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버티세요.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운전이에요. 제가 꼭 모셔다 드릴게요.”

영희 씨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3년 전 봉투를 받아 들고 울던 며느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무섭다며 운전대를 잡지 못하던 그 아이가 지금 눈길을 뚫고 자기를 살리러 달리고 있었습니다.

큰길에서 구급차로 옮겨진 영희 씨는 청주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다행히 빨리 병원에 도착한 덕분에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마비가 크게 남을 뻔했다”며 며느리가 큰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은정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병실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영희 씨의 손을 주무르며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 사실 면허 따고 나서 밤마다 몰래 어머니 집까지 연습했어요. 혹시 어머니가 아프시면 제가 모셔야 하니까요.”

영희 씨는 아직 어눌한 말투로 겨우 대답했습니다. “고맙다… 우리 은정이.” 결혼하고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손을 맞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시누이도 병실로 달려와 은정이를 끌어안았습니다.

퇴원한 뒤에도 은정이는 일주일에 세 번씩 영희 씨를 태우고 재활 병원에 다녔습니다. 영희 씨는 이제 지팡이 없이 마을 길을 걸을 만큼 회복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박 씨네 며느리 차가 생명줄”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말, 은정이는 영희 씨를 태우고 괴산의 한 시골 식당에 갔습니다. 올갱이국 두 그릇에 산나물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은정이가 수저를 챙겨 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음 달에는 바다 보러 가요. 제가 운전할게요.” 영희 씨는 웃으며 며느리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루리의 『긴긴밤』에서 코뿔소와 어린 펭귄은 핏줄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기나긴 밤을 함께 걸으며 서로의 가족이 됩니다. 가족은 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밤 서로를 지켜 준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가까운 가족에게 건네는 배려는 당장은 티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상대의 마음속에 조용히 쌓여 갑니다. 오늘 곁에 있는 가족이 혼자 넘지 못하는 문턱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넘어 주세요.

올가을 영희 씨는 은정이와 함께 상당산성 성곽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성곽을 따라 늘어선 나무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고, 성 아래 마을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영희 씨는 며느리의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성곽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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