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틀니값 300만원 몰래 해드렸는데..” 20년 뒤 유품 속 편지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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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건네는 정성은 생색을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습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해도, 그저 그분이 편하시면 됐다고 스스로를 달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를 거라 여긴 그 정성을 정작 받은 사람은 평생 가슴에 품고 있기도 합니다.
강원 춘천에 사는 윤경자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30년 가까이 춘천 명동 골목의 닭갈비집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남편은 작은 철물점을 했고, 두 사람은 빠듯한 살림에 1남 1녀를 키웠습니다.
경자 씨의 시어머니는 춘천 외곽 시골집에서 홀로 지내셨습니다. 시누이가 셋이나 있었지만 모두 서울과 원주에 살아, 시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챙기는 사람은 맏며느리인 경자 씨뿐이었습니다. 경자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반찬을 싸 들고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20년 전 여름, 시어머니는 일흔여섯이셨습니다. 그해 시어머니는 남은 이가 거의 빠져 밥을 제대로 씹지 못하셨습니다. 경자 씨가 해 간 반찬도 물에 말아 겨우 삼키셨고, 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 못하셨습니다. 몸은 눈에 띄게 야위어 갔습니다.
경자 씨는 남편에게 틀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철물점 사정이 좋지 않던 때라 남편은 “어머니 연세도 있으신데 나중에 하자”며 말을 돌렸습니다. 명절에 모인 시누이들도 “엄마가 그 연세에 틀니까지 하시겠어?” 하며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경자 씨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밥을 물에 말아 드시던 시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경자 씨는 닭갈비집에서 받는 수당과 손님들이 쥐여 주는 팁을 따로 봉투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여덟 달 뒤, 봉투에는 300만 원이 모였습니다. 경자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춘천 시내 치과에 갔습니다. 틀니를 맞추는 동안 시어머니는 연신 “이 비싼 걸 왜 하냐”며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경자 씨는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거 제가 해 드렸다고 아무한테도 말씀하지 마세요. 아범도 형님들도 서운해할 거예요. 그냥 어머니가 모아 둔 돈으로 하신 걸로 해요.” 시어머니는 한참 동안 며느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틀니를 하신 뒤 시어머니는 몰라보게 달라지셨습니다. 경자 씨가 해 간 불고기를 맛있게 드셨고, 동네 경로당에 나가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셨습니다. 경자 씨는 시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여덟 달 동안의 고생을 다 잊었습니다.
그해 추석, 시누이들은 갈비를 맛있게 뜯으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틀니 하셨네? 누가 해 드렸어?” 시어머니는 “내가 모아 둔 돈으로 했다”고만 하셨습니다. 부엌에서 그 말을 들은 경자 씨는 혼자 조용히 웃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는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몸이 쇠약해지시자 시누이들은 시골집에 혼자 두면 안 된다며 서울 큰시누이 집 근처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경자 씨는 한 달에 한 번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시어머니를 뵙고 돌아왔습니다.
시누이들은 요양원 비용을 나눠 내면서 경자 씨에게 가끔 서운한 소리를 했습니다. “언니는 춘천에 있으니 편하겠어요. 우리가 다 모시잖아요.” 경자 씨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틀니 이야기를 꺼내면 생색내는 것 같아 끝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올봄, 시어머니는 아흔여섯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장례식 내내 경자 씨는 영정 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시누이들은 그런 올케를 보며 “언니가 왜 저렇게 우는지 모르겠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 뒤, 시누이들과 경자 씨는 춘천 시골집에 모여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장롱 맨 아래 칸에서 낡은 과자 상자 하나가 나왔습니다. 상자 위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큰며느리 경자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누렇게 바랜 치과 영수증 한 장과 통장 하나, 그리고 접힌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영수증에는 20년 전 날짜와 함께 틀니값 300만 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큰시누이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쳐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경자야. 네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20년 동안 말 안 했다. 그런데 나 죽으면 이건 꼭 알려야겠다. 네가 해 준 이 덕에 나는 20년 동안 고기도 씹고 사람들하고 웃고 살았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살렸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이 통장은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이랑 자식들이 준 용돈에서 조금씩 떼어 모은 돈이다. 네가 해 준 틀니값 300만 원이다. 갚을 길이 이것뿐이구나. 고맙다, 우리 큰며느리.] 통장에는 20년 동안 한 달에 만 원, 이만 원씩 넣은 기록이 빼곡히 찍혀 있었습니다.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큰시누이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언니,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언니한테 그렇게 서운한 소리만 하고….” 다른 시누이들도 경자 씨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경자 씨는 편지를 가슴에 안은 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남편도 그제야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내가 나중에 하자고 했지. 당신이 몰래 했구나. 20년 동안 그걸 말도 안 하고….”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놓지 못했습니다. 시골집 마루에 오랫동안 울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경자 씨는 시어머니가 남긴 통장의 돈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누이들과 상의해 그 돈을 시어머니가 다니시던 마을 경로당에 기부했습니다. 경로당 사람들은 그 돈으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틀니와 보청기 비용을 보태는 작은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기부금을 전하던 날, 경로당 회장 할머니가 경자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자네가 그 큰며느리구먼. 형님이 살아계실 때 틀니 자랑을 얼마나 하셨는지 몰라. 누가 해 줬냐고 물으면 웃기만 하시고, 우리 큰며느리가 최고라는 말만 하셨어.”

그 일이 있은 뒤로 시누이들은 명절이면 춘천의 경자 씨 집으로 먼저 모입니다. 예전에는 서로 연락도 뜸하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단톡방에 “언니, 김장 언제 해요?” 하는 메시지가 먼저 올라옵니다.
지난 주말, 시누이들은 경자 씨를 모시고 소양강 근처 막국수집에 갔습니다. 막국수 네 그릇에 감자전 한 장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큰시누이가 경자 씨 그릇에 육수를 부어 주며 말했습니다. “언니, 엄마 대신 우리가 언니 챙길게요.” 경자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값비싼 물건이나 높은 담장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누군가의 작은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콘크리트 틈에 핀 민들레꽃처럼 작은 정성이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붙들어 줍니다.
누군가를 위해 한 일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간다고 해서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을 받은 사람은 평생 그것을 기억하고, 언젠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돌려줍니다. 오늘 가까운 어르신께 작은 정성 하나를 조용히 건네 보세요.
올가을 경자 씨는 시누이들과 함께 의암호 호숫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호숫가 나무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고, 잔잔한 물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경자 씨는 큰시누이의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호숫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옥상의 민들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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