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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수술비 1800만원 보냈는데..” 3년 만에 간 친정에서 엄마가 한 말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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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부모님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출가한 딸은 마음부터 친정으로 달려갑니다.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을 돈으로라도 덜고 싶어, 형편이 빠듯해도 봉투를 채웁니다. 그 봉투가 정말 부모님께 닿았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형제간의 도리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임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시장 골목 안쪽에서 26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물류센터에서 정년퇴직한 뒤 가게 배달을 돕고, 서른을 넘긴 두 아들은 모두 대도시에 나가 삽니다. 임 씨는 새벽 다섯 시면 셔터를 올리고 콩나물을 데치고 멸치를 볶습니다. 오른쪽 손목에는 늘 압박붕대가 감겨 있습니다.

임 씨는 사 남매의 맏딸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어머니 혼자 밭일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임 씨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읍내 섬유공장에 들어가 월급봉투를 그대로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남동생의 고등학교 등록금도 그 봉투에서 나갔습니다.

남동생이 고3이던 겨울, 수학여행비를 못 내 학교에 가기 싫다며 방에 틀어박힌 일이 있었습니다. 임 씨는 야근 수당을 받던 날 그 돈을 들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남동생이 결혼할 때는 어머니 대신 예단을 챙기고 신혼살림 이불까지 맞춰 주었습니다. 그때 남동생은 술잔을 들고 말했습니다. “누나는 우리 집 둘째 엄마다. 이 은혜는 내가 엄마 모시는 걸로 갚을게.” 그 말대로 남동생 내외는 고향 집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3년 전 추석을 앞두고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엄마 무릎이 다 닳았단다.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된다는데, 양쪽 다 하면 수술비에 재활비까지 돈이 꽤 든다.” 임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니가 엄마 모시는데 돈까지 다 대면 되나. 명절마다 내가 보탤게.”

그날부터 임 씨는 가게 매상에서 매일 만 원씩 떼어 따로 통장에 넣었습니다. 명절 대목에 들어오는 전과 나물 주문은 밤을 새워서라도 다 받았습니다. 그렇게 설과 추석마다 300만 원씩, 3년 동안 여섯 번을 보냈습니다. 모두 1800만 원이었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장모님 다리 펴지시면 됐지, 뭐.”

전화를 걸 때마다 어머니는 “수술 잘 됐다. 인자 하나도 안 아프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늘 짧았습니다. 무슨 말을 더 물으려 하면 “가게 바쁜데 끊어라” 하며 먼저 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반찬가게는 명절이 대목이라 임 씨는 3년 동안 명절에 친정을 가지 못했습니다. 남동생은 형제 단톡방에 “엄마 재활 병원 다녀옴” 같은 짧은 글만 올렸고, 사진은 한 장도 없었습니다. 올케도 전화를 받으면 말을 아꼈습니다. 서운한 마음보다 걱정이 컸지만, 임 씨는 그저 잘 계시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올해 설, 임 씨는 처음으로 가게 문을 이틀 닫았습니다. 섣달그믐 새벽, 진눈깨비 속을 한 시간 넘게 달려 친정에 닿았습니다. 마당 수돗가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었고, 부엌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남동생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올케는 장을 보러 나가고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동그랑땡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임 씨를 본 어머니가 반가워 일어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문질렀습니다. 프라이팬에서는 전이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임 씨는 불을 끄고 어머니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수술을 했다면 있어야 할 기다란 흉터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신 양쪽 무릎에 파스가 겹겹이 붙어 있었습니다. 묵은 파스 위에 새 파스를 덧붙인 자리마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들떠 있었습니다.

“엄마, 수술한 무릎이 와 이렇노?”

어머니는 무릎을 감싸 쥔 채 한숨처럼 내뱉었습니다.

“수술은 무슨, 병원 갈 돈이 어디 있다고.”

말을 뱉고 나서야 어머니는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습니다. 임 씨가 몇 번을 물어도 어머니는 “전 다 탄다” 하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임 씨는 새 파스를 찾으러 안방 장롱을 열었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이불 사이에 우편물 한 묶음이 고무줄로 묶여 끼워져 있었습니다. 모두 남동생 이름으로 온 증권사 우편물이었고, 봉투마다 ‘연체’와 ‘상환 독촉’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임 씨가 우편물을 들고 부엌으로 나오자 어머니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니 동생이 주식인가 뭔가 하다가 빚을 졌단다. 니가 보낸 돈, 그거 막는 데 다 들어갔다. 내가 아프다 카면 니가 알 거 아이가. 그래서 잘 됐다 캤다.” 어머니는 3년 동안 아들의 허물을 덮느라 제 무릎의 통증을 삼켜 온 것이었습니다.

임 씨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탄 전을 걷어 내고 새로 반죽을 풀어 전을 부쳤습니다. 늦게 일어난 남동생이 “누나 왔나” 하며 웃었지만, 임 씨는 대답 대신 나물을 무쳤습니다. 차례상은 여느 해처럼 정갈하게 차려졌고, 임 씨는 아버지 영정 앞에 오래 엎드려 있었습니다.

차례가 끝나고 상을 물리자 임 씨는 남동생을 안방으로 불렀습니다. 우편물 묶음을 앞에 내려놓자 남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누나, 금방 메우려 캤다. 주식만 오르면 엄마 수술도 바로 시킬라 캤다.”

임 씨는 가방에서 볼펜과 종이를 꺼냈습니다. “1800만 원, 다음 달부터 매달 50만 원씩 3년 안에 갚아라. 여기 쓰고 이름 쓰고 도장 찍어라.” 남동생은 떨리는 손으로 각서를 썼습니다. 임 씨는 각서를 접어 지갑에 넣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모시고 간다.”

그날 오후, 임 씨는 어머니의 옷가지를 챙겨 자기 집 근처 원룸으로 모셔 왔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형외과에 모시고 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의사는 연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어떻게 이걸 참으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딸의 손만 꼭 쥐었습니다.

봄에 오른쪽 무릎을, 여름에 왼쪽 무릎을 수술했습니다. 비용은 임 씨가 가게 통장을 털어 댔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딸한테 짐 되는 게 제일 싫었다.” 임 씨는 어머니의 이마를 쓸어 주었습니다. “엄마, 3년 동안 아픈 거 참은 게 짐이지.”

어머니가 수술을 마친 날 밤, 임 씨는 형제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습니다. 두 여동생에게는 따로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일을 담담하게 전했습니다. 남동생은 각서대로 매달 말일이면 50만 원씩 보내오고 있습니다.

형제끼리 오가는 돈은 믿음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믿는 것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부모님 병원비를 보냈다면, 한 번쯤은 직접 찾아가 그 손을 잡고 아프다던 자리를 살펴보세요.

부모님은 자식의 허물을 덮느라 당신의 아픔을 숨기기도 합니다. 전화 너머 “괜찮다”는 말이 짧게 끊길 때, 그 짧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올가을 시장 골목에는 은행잎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임 씨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지팡이 없이 골목을 걸어 딸의 반찬가게에 옵니다. 가게 앞 낮은 의자에 앉아 마늘을 까는 어머니의 무릎 위로 늦가을 볕이 따뜻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임 씨는 콩나물을 데치다 말고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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