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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친구 보증금 7000만원 빌려줬는데..” 10년 뒤 식당 직원이 건넨 흰 봉투에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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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사이에 돈이 오가면 우정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돈은 돌려받지 못해도 사람만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친구 사이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연락까지 끊기면 남는 것은 빈 통장보다 더 시린 서운함입니다.

윤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시장 입구에서 35년째 철물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셔터를 올리고 못 한 봉지, 경첩 하나까지 직접 챙겨 주는 가게입니다. 아내와 함께 가게를 지켜 왔고,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도회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윤 씨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강 씨가 있었습니다. 둘은 읍내 자취방 한 칸에서 라면 하나를 나눠 먹으며 3년을 보냈습니다. 윤 씨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강 씨는 사흘 밤을 빈소에서 꼬박 새웠습니다. 강 씨 결혼식 사회를 본 것도 윤 씨였습니다. 서로의 집 경조사에 봉투를 빠뜨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강 씨는 젊어서부터 남의 식당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손맛이 좋아 언젠가 제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11년 전 어느 겨울밤, 강 씨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친구야, 큰길에 좋은 자리가 났다. 보증금이 모자란다. 염치없지만 니밖에 없다.”

윤 씨는 그날 밤 아내와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끝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 친구 아니면 누가 돕겠어요. 대신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어야 해요.” 윤 씨는 노후를 위해 부어 온 적금을 깨고 모자란 돈을 보태 7,000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강 씨는 돈을 받으며 윤 씨 손을 꽉 쥐었습니다. “내 이 은혜 평생 안 잊는다.”

강 씨의 식당은 처음 1년은 잘되었습니다. 그러나 길 건너에 대형 상가 공사가 시작되면서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밀린 월세가 보증금에서 빠져나갔고, 식당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 뒤 강 씨의 휴대전화는 꺼졌고, 살던 집도 비어 있었습니다.

윤 씨는 돈보다 친구가 사라진 것이 더 아팠습니다. 철물점 계산대 옆에는 개업식 날 둘이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이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떼자고 해도 윤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냥 둬라. 그놈도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밤이면 사진 앞에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10년이 흘렀습니다. 올가을, 고교 동창회가 읍내 오리고기 식당에서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려 식당 유리창에 김이 서려 있었습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한 동창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윤 사장, 니 아직도 강 씨 기다리나? 칠천을 떼이고도 사진 붙여 놓고 산다며. 그게 바보지, 뭐가 친구고.”

자리가 일순 조용해졌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윤 씨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려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윤 씨는 지갑을 꺼내 들고 일어섰습니다. 오늘 밥값이나 내고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운터에 선 젊은 직원이 윤 씨 얼굴을 한참 보더니 물었습니다. “혹시 철물점 하시는 윤 사장님 맞으세요?” 윤 씨가 그렇다고 하자 직원은 서랍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이 오셔서 동창회 날 꼭 전해 달라고 맡기셨어요. 오늘 식사비도 그분이 미리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봉투 겉에는 낯익은 글씨로 ‘친구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열어 보니 7,0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접힌 편지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윤 씨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습니다.

‘친구야, 가게 망하고 니 얼굴 볼 낯이 없어 도망쳤다. 남쪽 바닷가 도시에서 남의 주방 설거지부터 다시 했다. 몇 해 전 작은 국숫집을 차렸고, 이제야 니 돈을 다 모았다. 이자도 못 쳐서 미안하다. 다른 사람한테는 빈손으로 가도 니한테만은 빈손으로 못 가겠더라. 얼굴 들고 찾아갈 용기가 안 나서 이렇게 맡긴다.’

편지 끝에는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윤 씨는 카운터 앞에 선 채로 그만 무너졌습니다. 예순 넘은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었습니다. 뒤따라 나온 동창들이 봉투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바보라고 했던 동창이 먼저 다가와 윤 씨 등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다. 미안타.”

그날 밤 윤 씨는 편지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10년 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친구야, 봉투 받았나.” 윤 씨는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아, 돈이 문제였나. 니 얼굴 한 번 보는 게 그리 어렵더나.”

일주일 뒤, 윤 씨는 아내와 함께 남쪽 바닷가 도시로 내려갔습니다. 항구 뒷골목의 작은 국숫집이었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강 씨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윤 씨는 봉투를 강 씨 손에 다시 쥐여 주려 했지만, 강 씨는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멸치 육수를 우린 국수 두 그릇을 내왔습니다. “이거는 평생 공짜다.”

돈을 빌려주고 연락이 끊기면 사람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침묵이 꼭 배신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 차마 나서지 못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섣불리 사람을 잃었다고 단정하기 전에, 기다려 줄 마음 한 자리는 남겨 두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돈을 건넬 때는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만 건네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래야 돈이 돌아오지 않아도 우정까지 잃지는 않습니다.

늦가을 항구에는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었습니다. 국숫집 앞 평상에 나란히 앉은 두 친구 뒤로 고깃배들이 하나둘 불을 밝혔습니다. 윤 씨와 강 씨는 김이 오르는 국수 그릇을 앞에 두고 해가 바다 너머로 다 질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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