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병원비 7000만원 대줬는데..” 유언장 읽던 날 법무사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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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프면 자식들은 저마다 사정을 꺼냅니다. 멀어서, 바빠서, 형편이 어려워서. 결국 가장 가까이 사는 한 사람이 간병을 떠맡게 되고, 그 사람의 세월은 아무도 셈해 주지 않습니다.
최 씨는 올해 쉰여덟입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15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다 지난해 은퇴했고, 외아들은 결혼해 따로 살고 있습니다. 최 씨는 4남매 가운데 셋째, 둘째 딸입니다.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철물점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시장 골목 끝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못과 경첩을 팔아 4남매를 키웠습니다. 장사가 끝나면 최 씨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며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로 아버지는 철물점 위층 낡은 2층집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7년 전 봄, 아버지가 가게 열쇠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하루 종일 찾았습니다.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던 날, 4남매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빠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는 사업 때문에 지방을 오가야 해서 모시기가 어렵다.” 언니는 손주를 봐 줘야 했고, 남동생은 외국 근무 중이었습니다.
최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모실게요. 남의 부모님도 모시는데 우리 아버지를 못 모시겠어요.”
처음 3년은 최 씨 집 작은방에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낮에는 남의 집 어르신을 돌보고, 밤에는 아버지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느라 병원 진단서와 의사소견서를 떼고, 주민센터와 건강보험공단을 오갔습니다. 그 서류들은 모두 누런 서류봉투 하나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밤마다 집을 나가 길을 잃기 시작하자,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셨습니다. 한 달 병원비는 15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최 씨는 형제들에게 조금씩 나누자고 했지만 오빠는 “지금 사정이 안 좋다”고 했고, 다른 형제들도 몇 번 보내다 말았습니다. 최 씨는 남편과 모아 둔 노후 적금을 깨고, 자신의 월급을 보태 4년 동안 7,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홀로 냈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장인어른 덕에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최 씨는 그 말에 몇 번이고 부엌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오빠는 1년에 두어 번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2년 전 가을, 최 씨는 병원 간호사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드님이 아버님 모시고 반나절 외출하셨어요.” 오빠에게 물으니 “바람 좀 쐬어 드렸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최 씨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올여름,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마지막 날 손을 잡고 있던 사람도 최 씨였습니다.
석 달 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시월 오후였습니다. 4남매는 오빠가 정한 시장 근처 법무사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2층집과 철물점 자리를 어떻게 정리할지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사무실 한쪽 난로에서 보리차 주전자가 끓고 있었습니다.
오빠가 가방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유언장이다. 법원 검인도 받았다.” 법무사 김 씨가 안경을 고쳐 쓰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습니다. “집과 가게 터는 장남에게 물려준다.”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언니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오빠, 아버지가 언제 이런 걸 쓰셨어?” 오빠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정신 맑으실 때 나한테 따로 부탁하셨어. 장남이 집을 지켜야 한다고.”
최 씨는 유언장을 건네받았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 아래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2년 전 시월 열이틀이었습니다. 최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 날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 씨는 가방에서 7년 동안 들고 다닌 누런 서류봉투를 꺼냈습니다. 맨 위에는 7년 전 날짜가 찍힌 치매 진단서가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요양병원 외출 기록 사본이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 병원 서류를 정리하며 받아 둔 것이었습니다.
“오빠, 이 날짜 봐요. 아버지는 이때 이미 저를 고모라고 부르셨어요. 그리고 이날이 오빠가 아버지 모시고 외출한 날이에요. 보호자 서명도 오빠 이름으로 되어 있고요.”
언니와 남동생이 서류를 번갈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법무사 김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치매 진단 뒤에 쓴 유언이라고 모두 효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때 아버님이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었는지는 따져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참 만에 오빠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업이 기울어서 빚이 있었다. 집이라도 있으면 살 길이 열릴 것 같았어. 아버지 손에 펜을 쥐여 드리고, 내가 불러 드리는 대로 쓰시게 했다.”
남동생이 주먹을 쥐었고, 언니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최 씨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오빠, 나는 집이 탐나서 아버지를 모신 게 아니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아버지 말이라고 하는 건 못 참겠어요.”
최 씨는 소송 대신 형제들과 다시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오빠는 그 유언장을 내세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4남매는 법에 정한 몫대로 나누되, 오빠가 그동안 밀린 병원비 몫을 최 씨에게 갚기로 했습니다. 언니와 남동생도 자신들 몫에서 조금씩 떼어 최 씨에게 내밀었습니다. “누나, 늦었지만 이건 받아야 해.”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늙은 왕은 달콤한 말을 한 딸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묵묵히 곁을 지킨 막내딸을 내쫓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사람은 그 막내딸이었습니다. 부모 곁을 지킨 세월은 서류 몇 장으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부모를 돌보는 일이 한 사람에게 쏠린다면, 병원비와 서류는 꼭 기록으로 남겨 두세요. 그리고 형제끼리는 아프기 전에 미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두세요. 말하지 않은 섭섭함은 결국 가장 아픈 자리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올가을 최 씨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산비탈에는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늦은 햇살이 봉분 위 잔디를 따뜻하게 비추었습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올리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해가 기울 때까지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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