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학원비 3500만원 대줬는데..” 6년 뒤 손녀 졸업전에 걸린 그림에 울었다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맞벌이 자식 대신 손주를 키운 할머니에게 그 아이는 자식보다 더 애틋한 존재입니다. 그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무엇이든 밀어주고 싶은 것이 할머니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식 몰래 지갑을 여는 일도 생깁니다.
전라도 바닷가 작은 도시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시장 골목 백반집 주방에서 2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10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딸 내외는 차로 십 분 거리 아파트에 살고, 둘 사이에 외손녀가 하나 있습니다.
딸은 마트에서 정산 일을 했고, 사위는 조선소 협력업체에 다녔습니다. 둘 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손녀는 세 살 때부터 한 씨 손에서 자랐습니다. 한 씨는 아침에 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식당으로 출근했습니다. 오후에는 식당 뒷마당 평상에 손녀를 앉혀 두고 일했습니다.
손녀는 그 평상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난 달력을 뜯어 그 뒷면에 생선 대가리도 그리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도 그렸습니다. 주방 이모들은 “이 집 손녀 손끝이 야무지네” 하며 그림을 냉장고 문에 붙여 주었습니다.
겨울이면 한 씨의 손은 갈라져 피가 비쳤습니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 벗었다 한 탓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초등학생 손녀가 자기 손바닥에 핸드크림을 짜서 할머니 손을 비벼 주었습니다. “할머니 손은 왜 맨날 아파?” “할머니 손이 일을 많이 해서 그렇지.”
손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봄이었습니다. 손녀는 미대에 가고 싶다며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단칼에 잘랐습니다. “엄마, 그림으로 밥 못 먹어. 애 아빠 회사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한 달에 80만 원씩 어떻게 대. 공부나 하라고 해.” 손녀는 방문을 닫고 사흘 동안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한 씨는 식당 일을 마치고 앞치마 차림 그대로 시내 미술학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원장 윤 씨에게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우리 손녀 좀 받아 주세요. 학원비는 내가 다달이 갖다 드릴게요. 대신 딸네랑 애한테는 장학생으로 받았다고 해 주세요.” 윤 씨는 한참 동안 한 씨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돈은 남편이 남긴 보험금으로 들어 둔 적금을 깨서 마련했습니다. 모자라는 달에는 저녁 설거지까지 맡아 밤 열 시에 퇴근했습니다. 고3이 되자 실기 특강비가 붙어 학원비가 한 달에 백만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중3부터 고3까지 4년 동안 한 씨가 학원에 갖다 준 돈은 모두 3,500만 원이었습니다.
손녀는 서울의 미술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딸 부부는 장학생으로 받아 준 원장님 덕분이라며 학원에 떡을 돌렸습니다. 한 씨는 그 떡을 한 조각 얻어먹으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간 손녀는 점점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과제가 밀렸다며 내려오지 않는 해가 많았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는 2년 동안 휴학을 했는데, 한 씨는 그 소식마저 딸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다 크면 할미는 잊어버리는 거지.” 한 씨는 주방에서 양파를 썰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한번은 손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할머니, 손 사진 좀 찍어서 보내 줘.” 영문은 몰랐지만 한 씨는 고무장갑을 벗고 갈라진 손을 찍어 보냈습니다. 그 뒤로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학원비를 낸 지 6년이 지난 올가을, 손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나 졸업전 해. 꼭 와야 돼.” 한 씨는 식당에 사흘 휴가를 내고 딸 부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1월 초, 아침부터 차가운 비가 내렸습니다. 학교 전시장 입구에는 학생들 이름이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고, 우산꽂이에는 젖은 우산들이 빼곡했습니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손녀가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한 씨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전시장 가장 안쪽 벽에 큰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화면 가득 두 손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마디는 굵었고, 손끝은 갈라져 있었고, 손등에는 기름에 덴 자국이 희끗했습니다. 한 씨는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자기 손이었습니다. 몇 해 전 휴대전화로 찍어 보낸 바로 그 손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림 바탕이 오톨도톨했습니다. 물감 아래로 종이가 겹겹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 씨는 안경을 고쳐 쓰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미술학원 이름이 찍힌 영수증이었습니다. 날짜가 달마다 빠짐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중3 봄부터 고3 겨울까지, 4년 치였습니다. 그림 옆 작은 표에는 ‘나를 화가로 만든 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게… 이게 왜 여기 있니.” 한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손녀가 할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할머니, 나 처음부터 알았어. 학원 첫날 계단에서 할머니가 앞치마 입은 채로 내려가는 거 봤어. 원장 선생님한테 매달렸더니 다 말해 주시더라. 그래서 영수증 사본을 달마다 받아서 모았어. 나중에 꼭 갚으려고.”
“휴학한 것도 그래서야. 할머니 돈으로 학원 다녔는데 등록금까지 집에 기댈 수가 없었어. 2년 동안 일해서 등록금 모았어. 바빠서 못 내려간 게 아니야. 할머니 얼굴 보면 다 말해 버릴 것 같아서 못 갔어.”
뒤에 서 있던 딸이 그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수증 날짜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 보던 딸이 한 씨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엄마, 장학생이라며. 그게 다 엄마 돈이었어?” 사위는 말없이 장모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갈라진 손으로 그림 속 갈라진 손을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4년 동안 혼자 지켜 왔다고 믿은 비밀을 손녀가 내내 함께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녀는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어릴 때처럼 할머니 손에 발라 주었습니다. “할머니, 이 그림으로 학교에서 상 받았어. 이제 내가 할머니 손 아프지 않게 할게.” 한 씨는 손녀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할미는 갚으라고 한 거 아니다. 네가 그림 그리는 것만 보면 그걸로 다 받은 거야.”
그날 저녁, 식구들은 학교 앞 작은 칼국숫집에 둘러앉았습니다. 김이 오르는 바지락칼국수 그릇 너머로 딸이 엄마 손을 오래 만졌습니다. “엄마, 이 손으로 우리 애를 키웠네.” 한 씨는 국물을 한 국자 떠 손녀 그릇에 덜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꿈을 말할 때 집안 형편만 앞세우면 그 꿈은 쉽게 꺾입니다. 누군가 조용히 그 꿈을 받쳐 주었다면 그 마음은 아이가 먼저 알아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오래 기억합니다.
그러니 손주에게 쏟은 정성을 두고 서운해하기 전에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말 없는 그 시간 동안 아이는 받은 마음을 갚을 길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해 겨울 초입, 한 씨는 방학을 맞아 내려온 손녀와 함께 항구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잿빛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낮게 날았고, 빨간 등대 너머로 해가 천천히 바다에 잠겼습니다. 손녀는 할머니 손을 제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등대에 불이 켜질 때까지 나란히 걸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