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네 김장값 400만원 대줬는데..” 이듬해 반찬가게 진열대 김치통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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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일입니다. 배추를 기르고, 절이고, 버무리는 손에는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성은 받는 쪽이 귀하게 여길 때에만 정성으로 남습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 변두리 마을에 사는 신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남편과 함께 서른두 해째 고추와 배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들과 딸은 출가해 도시에서 살고, 지금은 부부 둘이 오래된 시골집을 지킵니다. 남편은 사 형제 가운데 맏이고, 신 씨는 동서 셋을 둔 맏며느리입니다.
신 씨는 동서들을 친동생처럼 챙겼습니다. 막내동서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이 멀다며 울먹이자, 한 달 동안 시골집 안방을 내주고 미역국을 끓여 산후조리를 해 주었습니다. 둘째 시동생네 식당이 문을 닫던 해에는 쌀 다섯 가마를 실어 보냈습니다. 셋째 동서가 수술을 받았을 때도 신 씨는 반찬을 싸 들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병원에 갔습니다.
10년 전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맞은 겨울이었습니다. 막내동서가 전화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형님, 어머님 김치를 이제 못 먹어서 어떡해요. 저희는 아파트라 김장할 데도 없어요.” 신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걱정 마라. 내가 담가서 보내 줄게.”
그해부터 신 씨는 해마다 배추 300포기를 담갔습니다. 밭에서 거둔 배추로 모자라면 이웃 밭에서 더 사 왔고, 직접 말린 고춧가루에 새우젓과 멸치액젓, 마늘과 생강, 굵은소금까지 들였습니다. 해마다 400만 원이 들었습니다. 신 씨는 가을에 고추를 팔면 그 돈부터 따로 떼어 김장 통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김장을 마치면 신 씨는 김치통마다 손글씨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둘째네’, ‘셋째네’, ‘막내네’. 그리고 택배 상자에 꼭꼭 싸서 세 집으로 부쳤습니다. 신 씨는 양념값과 택배비를 작은 공책에 적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씨앗값을 적듯 몸에 밴 버릇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동서들도 김장 날 시골집에 내려와 배추를 날랐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아무도 오지 않고 문자만 왔습니다. [형님, 올해 김치 언제 보내세요?] 막내동서는 해마다 통을 늘려 달라고 했습니다. [애들이 잘 먹어서요, 두 통만 더 부탁드려요.]
신 씨는 찬 마당에서 배추를 절이느라 손목이 시큰거렸고,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잠들었습니다. 남편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했지만, 신 씨는 “애들이 잘 먹는다니 그걸로 됐어요” 하며 웃었습니다.
10년째 김장을 마친 이듬해 1월이었습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 신 씨는 설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갔습니다. 시장 입구에 반찬가게가 하나 새로 생겨 있었습니다. 나물 몇 가지나 사 갈까 싶어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냉장 진열대 맨 아래 칸에 파란 뚜껑 김치통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뚜껑 모서리가 깨져 누런 테이프로 붙인 통이었습니다. 신 씨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지난가을 자기 손으로 테이프를 붙인 바로 그 통이었습니다. 뚜껑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막내네’라고 쓴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가격표가 꽂혀 있었습니다. ‘시골 맏며느리 손김치 1kg 2만원.’
가게 주인 오 씨가 다가와 그 통을 꺼내 신 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거 드셔 보세요. 우리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요. 친구가 시골 큰동서한테 받는 건데, 그 형님이 해마다 300포기를 혼자 담근대요.”
신 씨는 목이 메어 겨우 물었습니다. “친구분이… 해마다 이렇게 가져와요?” 오 씨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습니다. “벌써 4년째예요. 자기네 동서 둘도 남는 거 보탠다던데요. 셋이서 용돈 나눠 쓴다고 하더라고요.”
신 씨는 김치 한 통을 제값을 치르고 샀습니다. 자기가 담근 김치를 자기 돈으로 사 들고 나오는데, 진눈깨비가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 주말 신 씨는 막내동서 집을 찾아가 김치통을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막내동서는 잠시 얼굴이 굳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형님, 어차피 좋아서 하시는 거잖아요. 저희가 다 못 먹어서 버리느니 파는 게 낫죠. 둘째 형님이랑 셋째 형님도 다 알아요.”
신 씨는 아무 대꾸 없이 일어섰습니다. 집에 돌아와 장롱 속 공책 열 권을 꺼내 하나하나 넘겼습니다. 배춧값, 고춧가루, 새우젓, 택배비. 10년 동안 4,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사 형제 부부가 시골집 안방에 모였습니다. 신 씨는 상 위에 공책 열 권과 ‘막내네’ 스티커가 붙은 김치통을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동서들, 이건 내가 10년 동안 김장하며 쓴 돈이네. 돌려 달라는 말은 안 하겠네. 다만 내 정성이 가게 진열대에 1kg 2만 원으로 올라가 있는 걸 보고 나니, 더는 못 하겠네. 올해부터 김장은 각자 하게.”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남편이 공책을 덮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맏이라고 집사람 손목만 축냈다. 김치 사 먹을 형편은 다들 되잖니.” 둘째와 셋째 시동생은 아내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며칠 뒤 셋째 동서가 짧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님, 면목이 없어요. 올겨울엔 제가 배추 절이는 것부터 배울게요.] 막내동서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신 씨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은 주는 사람이 지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사람이 그 무게를 알아줄 때 비로소 오래 이어집니다. 해마다 당연하게 건너가던 것이 있다면, 한 번쯤 멈추고 그 자리를 돌아보세요.
장부는 서운함을 따지려고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하려고 남기는 것입니다. 그 기록이 있기에 말해야 할 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른 봄, 신 씨는 남편과 나란히 밭에 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언 땅이 풀린 이랑 위로 흙냄새가 올라왔고, 산자락에는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올가을 김장은 부부와 자식들 먹을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신 씨는 허리를 펴고 오랜만에 가벼운 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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