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기는 자식의 마음은 늘 미안함과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잘 돌봐 달라는 마음에 웃돈을 쥐여 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건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처음부터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미안함은 한순간에 분노로 바뀝니다.
인천 부평에 사는 강순례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30년 동안 은행 창구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했습니다. 지금은 맞벌이하는 딸네 손주 둘을 봐주며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순례 씨의 어머니는 올해 아흔둘입니다. 인천 남동구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데, 3년 전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순례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평생 살던 집을 떠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래서 순례 씨는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가 하루 세 시간씩 어머니 집에 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이 쉰 중반의 오 씨였습니다. 오 씨는 싹싹하고 말솜씨가 좋아 처음 본 날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 오늘 너무 고우세요” 하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금세 오 씨를 좋아하셨습니다. 순례 씨가 전화를 드리면 “우리 오 선생이 오늘 미역국을 끓여 줬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셨습니다. 순례 씨는 오 씨가 고마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손주를 보느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들르지 못하는 처지라 더욱 그랬습니다.
순례 씨는 오 씨에게 따로 봉투를 건넸습니다. “선생님, 정해진 일 말고도 어머니 말벗 좀 더 해 주세요. 얼마 안 되지만 제 성의예요.” 그렇게 매달 30만 원씩, 3년 동안 웃돈을 건넸습니다. 명절이면 과일 상자와 상품권도 따로 챙겼습니다.

오 씨는 봉투를 받을 때마다 두 손을 모으며 말했습니다. “따님, 걱정 마세요. 제 친어머니처럼 모실게요.” 순례 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남들은 요양보호사 때문에 속을 끓인다는데, 자기는 복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여름 어느 날, 순례 씨는 어머니의 기초연금이 들어오는 통장을 정리하러 은행에 갔습니다. 30년 동안 남의 통장을 들여다보며 일한 습관대로 거래 내역을 한 줄 한 줄 훑어보던 순례 씨의 손이 멈췄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현금 인출기에서 20만 원씩 돈이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1년 넘게 한 주도 거르지 않은 기록이었습니다. 모두 합치니 1,1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현금 인출기 쓰는 법을 모르셨고, 수요일 오후는 오 씨가 어머니 곁에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순례 씨는 은행을 나와 곧장 어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 안방 서랍 속 지갑에는 체크카드가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달력 귀퉁이에는 어머니가 잊지 않으려고 적어 둔 카드 비밀번호가 볼펜으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습니다.
순례 씨는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엄마, 오 선생님이 은행에 같이 가자고 한 적 있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셨습니다. “아니, 수요일마다 장 보러 간다고 카드 좀 빌려 가지. 내 반찬 사 온다더라.”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시든 반찬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순례 씨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고맙다며 건넨 봉투, 명절마다 챙긴 선물, 그리고 “친어머니처럼 모시겠다”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순례 씨는 울지 않았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고를 봐 온 경험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순례 씨는 먼저 어머니의 체크카드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1년 치 거래 내역을 출력해 날짜와 시간, 인출한 현금 인출기 위치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인출기는 모두 어머니 집 근처 편의점 한 곳이었습니다.
순례 씨는 그 표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경찰관은 거래 내역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오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현금 인출기 화면 기록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순례 씨는 요양보호사가 소속된 재가센터에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2주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편의점 현금 인출기의 녹화 화면에는 매주 수요일, 어머니의 카드를 넣고 돈을 찾는 오 씨의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찾은 돈으로 같은 편의점에서 복권을 사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순례 씨는 재가센터 상담실에서 오 씨와 마주 앉았습니다. 오 씨는 처음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펄쩍 뛰었습니다. “따님,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어머니가 심부름하라고 주신 돈이에요.” 순례 씨는 말없이 출력한 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30년 동안 은행 창구에 앉아 있던 사람입니다. 장 보는 데 1년 동안 1,100만 원이 드는 집은 없습니다. 경찰서에서 녹화 화면도 다 확인했어요. 이제 변명은 경찰서에 가서 하세요.” 오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센터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순례 씨는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제가 3년 동안 드린 웃돈은 어머니를 잘 봐 달라고 드린 돈이지, 어머니 통장을 가져가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었습니다.” 오 씨는 그제야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빚을 갚느라 시작한 일이 복권과 노름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재판을 앞두고 가진 것을 팔아 빼돌린 돈을 모두 돌려놓았고, 다시는 요양보호사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재가센터도 관리 소홀로 시정 명령을 받았습니다.
순례 씨는 그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돈 관리 방식을 모두 바꾸었습니다. 통장에서 돈이 나갈 때마다 자기 휴대전화로 알림 문자가 오도록 하고, 달력에 적힌 비밀번호는 지우고 새로 바꿨습니다. 새로 온 요양보호사에게는 장보기 영수증을 꼭 남겨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순례 씨는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동네 노인복지관에서 열린 자녀 교실에 나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모님 통장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들여다보세요. 그게 의심이 아니라 부모님을 지키는 일입니다.” 강당에 앉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받아 적었습니다.

일이 마무리된 주말, 순례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칼국수집에 갔습니다. 바지락칼국수 두 그릇에 겉절이 한 접시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국물을 한 숟가락 뜨시더니 순례 씨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잘해 주더니… 우리 딸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순례 씨는 어머니 그릇에 면을 덜어 드리며 웃었습니다.
박지원의 『호질』에서 겉으로는 점잖은 선비인 척하던 북곽 선생은 호랑이 앞에서 위선이 낱낱이 드러나 망신을 당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친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숨긴 속마음은 결국 드러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일러 줍니다.

부모님을 누군가에게 맡겼다면 고마움을 전하는 것만큼 꼼꼼히 확인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통장 알림을 받아 두고, 영수증을 남기게 하고, 달력에 비밀번호를 적어 두지 않게 해 주세요.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님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올가을 순례 씨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를 모시고 인천대공원 단풍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길 양옆 나무마다 붉은 단풍이 곱게 물들었고, 호수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어머니는 순례 씨의 손을 꼭 잡은 채 해가 질 때까지 단풍을 바라보셨습니다.
출처 : ‘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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