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가게 6000만원 빌려줬는데..” 12년 뒤 아들 집들이에서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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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이에 오간 돈은 남에게 빌려준 돈보다 더 다루기 어렵습니다. 받으라고 하자니 정이 상할 것 같고, 잊자니 마음 한구석이 계속 쓰입니다. 그래서 많은 집에서 그런 돈은 말하지 않은 채로 세월 속에 묻히곤 합니다.
충청도 어느 읍내에 사는 정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스물다섯 살에 읍내 장터 뒷골목에 철공소를 차려 44년째 쇠를 자르고 용접을 하고 있습니다. 대문, 축사 울타리, 비닐하우스 뼈대처럼 동네에 서 있는 쇠붙이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아내와 함께 철공소 뒤 살림집에서 살고, 딸 하나와 아들 하나는 모두 출가했습니다.
정 씨는 오 남매의 맏이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열일곱 살부터 철공소 심부름을 하며 동생들을 거두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막내 여동생은 정 씨와 열여섯 살 차이가 났습니다. 동생들은 반쯤 농담으로 “큰오빠가 막내한테는 아버지다”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막내가 여섯 살 때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 씨는 동생을 들쳐 업고 십 리 길을 걸어 읍내 의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꽃다발을 들고 운동장에 서 있었습니다. 막내는 그날 사진을 지금도 지갑에 넣고 다닙니다.
막내는 서른 무렵 도시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열두 해 전 마흔세 살에 이혼했습니다. 중학생 딸 하나만 데리고 빈손으로 읍내에 돌아왔습니다.
어느 겨울밤, 막내가 철공소 난로 앞에 앉아 고개를 숙였습니다. “큰오빠, 시장에 반찬가게 자리가 하나 났어. 보증금이랑 집기 들일 돈만 있으면 애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 보겠는데.” 정 씨는 아무 말 없이 난로에 장작만 하나 더 넣었습니다.
다음 날 정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아들 결혼할 때 보태려고 10년 넘게 부어 온 적금이 4,000만 원 있었고, 철공소 운영비로 묶어 둔 돈에서 2,000만 원을 더 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막내 아가씨가 우리 애들 업어 키운 거 생각하면 해야지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 씨는 6,000만 원이 든 통장을 막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빌려주는 거다. 그래야 네가 기죽지 않는다. 언제 갚을지는 네가 정해라.” 막내는 통장을 두 손으로 받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반찬가게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새벽 네 시에 불을 켜고 밤 아홉 시에 셔터를 내렸습니다. 조카는 대학을 마치고 취직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내 입에서 돈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 씨는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해가 갈수록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철공소 일감은 줄고 손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가끔 “아가씨네 가게 요즘 손님 많던데요” 하고 지나가듯 말할 때면 괜히 용접 불꽃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명절에 만난 막내가 유난히 말수가 적은 것도, 어쩐지 오빠 눈을 피하는 것 같은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올봄,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정 씨 부부는 형편껏 3,000만 원을 보탰지만 도시 전셋값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아들은 “나머지는 대출 받고 어떻게든 맞췄어요” 하고만 말했습니다. 정 씨는 그 적금만 있었어도 하는 생각을 애써 삼켰습니다.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 아들 내외가 집들이를 열었습니다. 도시 변두리의 오래된 아파트 4층,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현관에는 사돈댁이 보낸 화분과 친척들이 들고 온 두루마리 휴지, 세제 상자가 쌓였습니다. 막내도 반찬가게에서 손수 무친 나물과 갈비찜을 커다란 통에 담아 왔습니다.
거실에 상을 두 개 이어 붙이고 양가 식구들이 둘러앉았습니다. 술이 한 순배 돈 뒤, 아들이 잔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양가 부모님 덕분이고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고모가 전세금에 6,000만 원을 보태 주셨어요. 고모 아니었으면 이 집 못 얻었습니다.”
상 위가 조용해졌습니다. 정 씨는 젓가락을 든 채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막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얘가, 그 얘기는 하지 말랬잖아.”
아들은 고모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고모, 죄송해요. 그래도 아버지가 모르고 계신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계약하던 날 고모가 그러셨잖아요. 이건 아버지께 갚는 돈이니까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정 씨는 막내를 보았습니다. “막내야, 그게 무슨 소리냐.”
막내는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큰오빠, 내가 그 돈 들고 가서 내밀면 오빠가 받았겠어? 됐다고, 애 키우는 데 쓰라고 도로 밀어 놨을 거잖아. 오빠 성격 내가 제일 잘 알아.”
“가게 시작하고 매달 조금씩 따로 모았어. 처음엔 10만 원, 장사 좀 되면서는 50만 원. 12년 걸렸어. 그동안 명절에 오빠 얼굴 보기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 그래서 조카 집 구한다는 얘기 듣고 이때다 싶었어. 오빠가 조카 장가갈 때 쓰려던 돈이었잖아. 그 돈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것뿐이야.”
정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막내가 명절마다 눈을 피하던 이유가 그제야 보였습니다. 갚지 못해 미안해서가 아니라, 몰래 갚고 있는 것을 들킬까 봐 조심했던 것이었습니다.
정 씨는 상 너머로 손을 뻗어 막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새벽마다 나물을 데치고 무치느라 손끝이 갈라진 손이었습니다. “막내야, 오빠가 속으로 서운해했다. 미안하다.” 막내는 오빠 손을 꼭 쥐고 웃었습니다. “큰오빠, 이제 우리 셈 끝난 거다.”
아내가 눈가를 훔치며 막내의 잔에 술을 채웠습니다. 사돈댁도 조용히 박수를 쳤습니다. 그날 집들이 상에 오른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비워진 것은 막내가 만든 갈비찜이었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부부는 서로를 위해 가장 아끼는 것을 몰래 내놓습니다. 선물은 엇갈렸지만, 그 엇갈림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가 드러납니다. 마음은 늘 가장 조용한 길로 돌아옵니다.
가까운 사이에 빌려준 돈이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함이 먼저 자라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다고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운함이 굳어 버리기 전에 상대가 지내 온 세월을 한 번쯤 헤아려 보세요.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깊이 애쓰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올가을 정 씨는 막내와 함께 읍내 저수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둑 아래 논에는 볏짚 더미가 줄지어 서 있었고, 물가 억새가 저녁 바람에 하얗게 흔들렸습니다. 오누이는 둑 위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해가 저수지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물빛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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