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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이 맡아 주고 반찬까지 챙겼는데..” 1년 뒤 학예회에서 아이 엄마가 한 말에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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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이의 정은 계산서가 없어서 더 따뜻합니다. 돈을 주고받지 않으니 서로 마음으로 갚는다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값을 매기지 않은 정성은 때로 아무 값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최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경상도 바닷가 소도시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삽니다.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 보조원으로 22년을 일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출근해 하루 칠백 명분의 밥과 국을 끓였고, 쉰아홉에 손목이 나빠져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남편은 칠 년 전 폐암으로 먼저 떠났고, 외아들은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며 명절에나 내려옵니다.

4년 전 봄, 옆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남편은 조선소 설계실에, 아내 한 씨는 시내 병원 원무과에 다니는 맞벌이였습니다. 한 씨 품에는 돌을 갓 지난 아들이 안겨 있었습니다. 이삿날 최 씨는 미역국 한 냄비를 끓여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짐 푸느라 밥 못 해 먹겠지. 따뜻할 때 먹어요.”

몇 달 뒤 어느 저녁, 한 씨가 아이를 안고 최 씨 집 현관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나니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부부 둘 다 일을 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최 씨는 아이를 받아 안았습니다. “내가 볼게요. 아들 하나 키우면서 동네 애들까지 다 봐 줬어요.”

그날부터 최 씨의 하루가 바뀌었습니다. 아침 일곱 시 반이면 한 씨가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고, 최 씨는 아이를 씻기고 먹여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오후 네 시에 아이를 데려와 저녁까지 먹였습니다. 부부가 퇴근하면 반찬통 두세 개를 들려 보냈습니다. 멸치볶음, 시금치나물,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였습니다. 급식실에서 익힌 솜씨라 간이 순하고 정갈했습니다.

한 씨가 봉투를 내민 적도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거라도 받으세요. 미안해서 안 돼요.” 최 씨는 봉투를 도로 밀었습니다. “돈 받으면 일이 되잖아요. 나는 그냥 손주 보는 셈 칠게요.” 부부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고, 자기 집 현관 열쇠 하나를 최 씨에게 맡겼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든 들어오셔도 돼요.”

아이가 수족구에 걸렸을 때는 사흘 밤을 곁에서 지켰습니다. 아이가 처음 “할미” 하고 부른 날, 최 씨는 그 소리를 휴대전화에 녹음해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연금으로 사는 형편에 장 봐서 해 먹인 반찬값이 적지 않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1년 전,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부부는 등하원 돌보미를 따로 구했습니다. 쉰 살 남짓한 윤 씨였고, 다달이 돈을 받고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데려다주었습니다. 한 씨는 “할머니 손목 아프신데 이제 좀 쉬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최 씨는 서운했지만 맞는 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도 부부가 야근하는 날이면 여전히 최 씨가 아이를 맡았고, 반찬통도 계속 옆집 문고리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지난달, 아이가 그림 카드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할미 학예회 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 씨도 “할머니, 꼭 오세요” 하고 거들었습니다. 최 씨는 장롱 깊숙이 아껴 두던 연보라색 카디건을 꺼냈습니다.

학예회 날은 늦가을 비가 막 그친 토요일이었습니다. 유치원 강당 벽에는 색종이 꽃이 붙어 있었고, 학부모들이 휴대전화를 든 채 앞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뒷줄에 앉았습니다. 토끼 머리띠를 한 아이가 율동을 하다 최 씨를 찾아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최 씨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었습니다. 아이 주려고 새벽에 싼 유부초밥 도시락이 무릎 위에서 아직 따뜻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복도에서 학부모들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최 씨는 화장실에 다녀오다 모퉁이 너머에서 한 씨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엄마가 묻고 있었습니다. “저 연보라색 옷 입은 분은 친정어머니세요? 아이가 할미, 할미 하던데요.”

한 씨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옆집 할머니예요. 혼자 사셔서 심심하시니까 봐 주시는 거예요. 저희가 따로 부탁드린 것도 아니고요.”

최 씨는 벽에 손을 짚었습니다. 도시락 보자기를 쥔 손이 떨렸습니다. 잠시 뒤 강당 입구에서 한 씨 부부가 윤 씨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일 년 잘 보냈어요. 정말 감사해요.” 윤 씨는 꽃을 안고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최 씨 쪽을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최 씨는 아이에게 다가가 도시락을 쥐여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잘했다, 우리 강아지. 할미 먼저 간다.” 그리고 비에 젖은 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화가 나기보다 부끄러웠습니다. 3년을 손주처럼 품었는데, 저쪽에서는 외로운 노인의 소일거리였던 것입니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도 자신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대로 계속 가면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저녁, 최 씨는 옆집 열쇠를 깨끗한 봉투에 넣어 마지막 반찬통과 함께 들고 벨을 눌렀습니다. 문을 연 한 씨에게 최 씨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거 돌려줄게요. 이제 내가 맡아 둘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반찬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한 씨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할머니, 혹시 어제…….” 최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심심해서 한 거 맞아요. 그러니 이제는 다른 데서 심심함을 풀어 보려고요. 아이한테는 할미가 늘 응원한다고만 전해 줘요.”

며칠 뒤 한 씨가 사과 편지와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최 씨는 편지는 받았지만 열쇠는 다시 받지 않았습니다. “미워서가 아니에요. 고마운 줄 모르는 정은 서로에게 짐이 돼요. 이제 각자 자리에서 잘 지내요.”

대신 최 씨는 동네 복지관을 찾아가 홀몸 어르신 반찬 나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급식실에서 하던 대로 앞치마를 두르고 큰 솥에 국을 끓였습니다. 반찬을 받은 어르신들은 “최 씨 반찬이 제일 맛있다”며 빈 통을 깨끗이 씻어 돌려주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는 소년에게 열매와 가지와 몸통까지 내주고 끝내 밑동만 남습니다. 많은 이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지만, 받는 쪽이 고마움을 잊으면 주는 사람만 깎여 나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정을 베푸는 일에도 경계가 필요합니다. 값을 받지 않더라도 내 수고가 어떤 자리에 놓이는지는 한 번쯤 살펴야 합니다. 그 자리가 초라하다면 조용히 손을 거두는 것도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정은 아낌없이 주되, 나를 아끼는 마음까지 내주지는 마세요.

올가을 최 씨는 복지관 봉사자들과 함께 바닷가 방파제 길을 걸었습니다. 붉은 등대 너머로 해가 기울었고, 잔잔한 물결 위로 저녁 볕이 비늘처럼 반짝였습니다. 최 씨는 접은 앞치마를 가방에 넣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래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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