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간병비 6000만원 대줬는데..” 49재 날 올케가 한 말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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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프면 형제 사이의 셈법이 드러납니다. 병수발은 누가 맡으라고 정해 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마음 약한 자식의 몫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뒤에야 누가 무엇을 짊어졌고 누가 무엇을 챙겼는지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윤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스물여섯 해째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외버스 기사로 일하다 퇴직한 남편과 단둘이 살고, 딸과 아들은 모두 출가했습니다. 친정 식구로는 어머니와 세 살 아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윤 씨가 열네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읍내 장터 어귀에서 콩나물을 길러 팔며 남매를 키웠습니다. 새벽마다 시루에 물을 붓던 어머니의 손은 늘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윤 씨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읍내 공장에 들어가 남동생 학비를 보탰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자개 패물함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집올 때 외할머니가 해 준 진주목걸이와 비취 가락지, 아버지가 생전에 사 준 금반지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명절이면 어머니는 장롱 깊숙한 데서 그 함을 꺼내 한참씩 들여다보았습니다. 윤 씨가 시집가던 날, 어머니는 딸의 빈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금반지 하나 못 끼워 보내서 이 에미가 한이다.”
사 년 전 봄, 어머니가 가스 불을 켜 놓은 채 장터에 나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치매 진단이 나왔습니다. 남매가 어머니 집 마루에 마주 앉았을 때 남동생이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누나, 내가 지금 사업이 너무 어렵다. 조금만 풀리면 그때 내가 다 할게.”
그날 밤 남편이 말했습니다. “장모님 일인데 우리가 하면 되지. 처남 기다리다가는 장모님 고생만 길어지겠다.” 윤 씨는 다음 날 십 년 넘게 부어 온 자기 저축보험을 해지했습니다. 고객들에게는 웬만하면 깨지 말라고 말리던 상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갔습니다. 병원비는 달마다 백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겨울에는 어머니가 침대에서 내려오다 고관절을 다쳐, 개인 간병인 조 씨를 따로 두었습니다. 윤 씨는 고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매일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렇게 사 년 동안 들어간 돈이 6000만 원이었습니다.
남동생은 일 년에 두어 번 얼굴을 비쳤습니다. 간병비 이야기를 꺼내면 늘 “다음 달엔 꼭”이라고 했지만, 그다음 달은 오지 않았습니다. 윤 씨는 서운했지만 따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남매가 언성을 높이는 일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이 맑은 날이면 윤 씨의 손을 잡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내 패물함은 고생한 큰딸 줘라. 장롱 맨 밑에 있다.” 윤 씨는 그때마다 웃으며 “엄마, 그런 거 필요 없으니 오래만 사세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올봄, 어머니는 여든여섯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친정집 장롱을 정리하던 윤 씨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맨 밑 칸에 있어야 할 자개 패물함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정신이 흐릴 때 어디 옮겨 두셨겠거니 하고 윤 씨는 장롱 문을 닫았습니다.
사십구재는 읍내에서 차로 삼십 분 떨어진 산사에서 지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장맛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법당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향 연기가 어머니 영정 앞에서 천천히 흩어졌습니다. 윤 씨는 남편과 함께 맨 앞줄에 앉아 염불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동생 부부는 재가 시작되고 한참 뒤에야 들어왔습니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올케가 윤 씨 옆에 앉아 합장하는 순간, 윤 씨의 눈이 한곳에 멈췄습니다. 올케의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려 있었습니다. 알 굵기가 고르지 않고 빛이 살짝 바랜 목걸이였습니다. 어머니 혼례 사진 속 바로 그 목걸이였습니다.
합장한 올케의 왼손 약지에는 비취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가락지 한쪽에 깨알만 한 흠이 보였습니다. 윤 씨가 어릴 때 어머니가 장독을 옮기다 부딪혀 생긴 흠이었습니다. 윤 씨는 염불이 끝날 때까지 그 흠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공양간에서 비빔밥 그릇을 앞에 놓고 윤 씨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올케, 그 목걸이랑 가락지, 우리 엄마 거 아닌가.” 올케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어머님이 저 예쁘다고 주신 건데요.” 윤 씨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언제?” 윤 씨가 남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남동생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머뭇거렸습니다. “삼 년 전에… 병원 갔다가 집에 들렀거든. 엄마가 가져가라고 하셨어, 누나.”
삼 년 전이면 어머니가 아들 얼굴을 보고도 “아저씨는 뉘시오” 하고 묻던 무렵이었습니다. 윤 씨는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습니다. “금반지들은?” 남동생은 시선을 피했습니다. “급한 빚이 있어서… 그건 정리했어. 남은 건 이거 두 개뿐이야.”
윤 씨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영정을 모신 절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이 식탁 밑으로 윤 씨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윤 씨는 와이퍼 소리만 들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윤 씨는 서랍에서 종이봉투 여러 개를 꺼냈습니다. 사 년 동안 모아 둔 요양병원 영수증과 간병인에게 보낸 이체 확인증이었습니다. 이십육 년 동안 고객 서류만 정리해 온 손으로, 윤 씨는 처음으로 자기 집 서류를 날짜순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맨 앞장에 합계 6000만 원을 적었습니다.
윤 씨는 묶음 위에 짧은 편지를 얹었습니다. “돈 달라는 게 아니다. 내가 엄마 곁에서 사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네가 엄마 장롱에서 무엇을 가져갔는지, 너도 한 번은 나란히 놓고 봐야 할 것 같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윤 씨는 우체국에서 그 묶음을 남동생 집으로 부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매 부부가 함께 있던 친정 단톡방에 한 줄을 남겼습니다. [엄마 제사는 앞으로 내가 모시겠다.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습니다. 남동생에게서 몇 번 전화가 왔지만 윤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거실 한쪽에 작은 제사상 놓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패물함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윤 씨는 친정집에서 어머니가 쓰던 콩나물시루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물이 빠지던 바닥 구멍마다 어머니의 새벽이 고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늙은 왕은 사랑을 말로 꾸민 두 딸에게 나라를 나눠 주고, 말을 아낀 막내딸을 내쫓습니다. 그리고 뒤늦게야 끝까지 곁을 지킨 진심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깨닫습니다. 부모를 향한 마음은 말이 아니라 영수증 한 장, 밤길 한 번으로 증명되는 법입니다.
형제 사이라도 셈이 한쪽으로만 기운 관계는 덮어 둔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한 일을 차분히 보여 주고, 지킬 것은 내 손으로 지키면 됩니다. 부모가 남긴 가장 귀한 것은 패물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람의 기억입니다.
올가을 어머니 생신날, 윤 씨는 남편과 함께 읍내 강둑길을 걸었습니다. 둑을 따라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렸고, 강물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잔잔하게 부서졌습니다. 윤 씨는 어머니가 콩나물 함지를 이고 오가던 그 길을 해가 질 때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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