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날 식당 문 닫고 생일상 차렸는데..” 축하 떡 상자 앞에서 드러난 삼남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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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생일상은 자식이 차려 드리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평생 남의 밥을 지어 온 부모는 그날마저 손수 앞치마를 두르곤 합니다. 자식 얼굴 한 번 보는 것만큼 큰 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국도변 작은 읍내에 사는 황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35년째 국도 옆 공터에서 기사식당을 혼자 꾸려 왔습니다. 화물차 기사와 택시 기사들이 새벽부터 드나드는 식당으로, 제육볶음과 된장찌개 백반이 대표 메뉴입니다. 남편은 막내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덤프트럭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 씨는 그 보상금으로 식당 자리를 얻었습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 막내딸 삼남매는 모두 도시에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황 씨의 하루는 새벽 네 시에 시작됐습니다. 밥솥 세 개에 불을 올리고, 육수를 끓이고, 반찬 여덟 가지를 무쳤습니다. 삼남매는 식당 뒷방에서 숙제를 했고, 기사들이 두고 간 신문을 깔고 낮잠을 잤습니다.
큰아들이 대학에 붙던 해, 황 씨는 식당 한 달 수입을 통째로 등록금에 넣고 석 달 동안 반찬 가짓수를 줄였습니다. 단골 기사들이 “사장님, 요즘 반찬이 왜 이래요” 하고 웃으면 황 씨는 “우리 큰애 대학 갔어요” 하고 따라 웃었습니다. 막내딸 결혼식 날에는 새벽에 식당 문을 열어 기사들 밥을 다 먹이고 나서야 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세 들어 있던 식당 건물을 대출을 끼고 사들였습니다. 2층짜리 낡은 건물이었지만, 황 씨에게는 35년 인생이 담긴 집이었습니다.
3년 전 봄, 큰아들이 식당에 들렀습니다. “엄마, 건물 재산세랑 서류 정리할 게 있어서 그래요. 인감도장 좀 저한테 맡겨 두세요. 엄마가 관공서까지 왔다 갔다 하시기 힘드시잖아요.” 황 씨는 장롱 속 손수건에 싸 둔 도장을 꺼내 아들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 엄마는 글씨 들여다보면 눈이 침침하다.”
그 뒤로 삼남매의 발길은 조금씩 뜸해졌습니다. 명절이면 하룻밤 자고 가던 자식들이 점심만 먹고 일어섰습니다. 큰아들은 올 때마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엄마, 이제 식당 그만하세요. 그 연세에 새벽일은 무리예요.” 황 씨는 걱정해 주는 말이라 여겼습니다.
올해 칠순을 앞두고 자식들이 잔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황 씨는 직접 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가족 단체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엄마 칠순날 식당 문 닫는다. 저녁 여섯 시까지 다들 와라. 엄마가 상 차린다.] 큰아들이 [네, 엄마]라고 답했고, 두 동생은 이모티콘 하나씩을 보냈습니다.
칠순 당일, 황 씨는 35년 만에 처음으로 평일에 식당 셔터를 내렸습니다. 셔터에는 큼직하게 써 붙였습니다. [오늘 하루 쉽니다. 주인 칠순입니다.] 지나가던 단골 기사들이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황 씨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35년을 지켜 온 주방에 섰습니다. 큰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큰 냄비 가득 졸이고, 둘째가 어릴 때부터 찾던 잡채를 무쳤습니다. 막내딸이 좋아하는 동그랑땡과 호박전, 녹두전을 부치고, 손주들 먹일 떡갈비도 빚었습니다. 나물 다섯 가지에 생선구이, 식혜까지 상에 오른 음식이 스무 가지였습니다.
오후 여섯 시, 테이블 네 개를 붙인 상 위에 수저 열네 벌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일곱 시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여덟 시, 갈비찜 위에 하얀 기름이 굳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가다 끊겼습니다.
밤 아홉 시가 넘었습니다. 황 씨는 식은 전 접시를 데우지도 않은 채 상 끝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빗소리만 셔터를 두드렸습니다.
그때 쪽문이 열렸습니다. 20년 넘게 점심마다 들르던 단골, 읍내 부동산 중개업자 오 씨였습니다. 오 씨는 비에 젖은 우산을 접고 떡 상자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사장님, 칠순 축하드립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자제분들은 벌써 다녀갔나 봅니다.”
황 씨가 대답을 못 하자 오 씨는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식당 정리하신다면서요. 서운하지만 잘 결정하셨어요. 다음 달 잔금 날 뵙겠습니다. 가계약서 사본은 사장님도 한 장 갖고 계셔야죠.”
황 씨는 돋보기를 꺼내 썼습니다. 매도인란에는 자신의 이름이, 그 옆에는 장롱 속에서 꺼내 준 바로 그 인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대리인란에는 큰아들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계약 날짜는 보름 전이었습니다.
“오 씨, 나는 이런 계약을 한 적이 없어요.”
오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드님이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 직접 못 오신다고, 다 위임하셨다고 해서요….”
황 씨는 떨리는 손으로 막내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막내딸이 받았습니다.
“엄마, 몸은 좀 괜찮아요? 오빠가 엄마 아프셔서 잔치 취소됐다고 하던데.”
“얘야, 엄마는 아픈 데 없다. 지금 식당에 상 차려 놓고 앉아 있다. 너, 식당 판다는 얘기 알고 있었니?”
수화기 너머가 한참 조용했습니다. “…오빠가 엄마 생일 지나서 말하자고 했어. 엄마 나이에 식당 계속하시는 것보다 정리해서 셋이 나누는 게 낫다고. 작은오빠도 그러자고 했고.”
황 씨는 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열네 벌의 수저와 식어 버린 스무 가지 음식 앞에서, 자식 셋이 이미 엄마의 건물을 셋으로 나눠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황 씨는 울지 않았습니다. 남은 음식을 하나하나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을 뿐입니다.
다음 날 아침, 황 씨는 오 씨와 함께 매수인을 만났습니다. 오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가 본인 확인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본인 뜻 없이 도장만 찍힌 계약은 효력을 다툴 수 있으니, 가계약금은 제가 책임지고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수인도 사정을 듣고 계약을 없던 일로 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황 씨는 그 길로 주민센터에 가서 인감 변경 신고를 했습니다. 큰아들이 가진 도장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족 단체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식당 계약은 없던 일로 했다. 이 건물은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엄마 것이고, 식당 문 닫는 날은 엄마가 정한다. 할 말 있으면 엄마 얼굴 보고 해라.]
사흘 뒤 큰아들이 식당 쪽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 사업이 어려워서 그랬어요. 잘못했습니다.” 황 씨는 아들에게 된장찌개 한 그릇을 떠 주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엄마 도장보다 엄마 얼굴을 먼저 봤어야지.” 큰아들은 숟가락을 든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 주 토요일, 황 씨는 칠순 상에 올렸던 음식을 데워 단골 기사들에게 대접했습니다. 기사들은 갈비찜을 집으며 “사장님, 칠순 축하합니다” 하고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황 씨는 그제야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늙은 왕은 듣기 좋은 말을 한 딸들에게 왕국을 미리 나눠 주었다가, 끝내 비바람 치는 들판으로 내몰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 손으로 지켜야 할 것을 너무 일찍 내어 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다툼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인감도장은 내 이름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믿는 자식이라도 도장은 내 손에 두고, 서류는 내 눈으로 확인하세요. 그것은 자식을 의심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지켜 주는 일입니다.
늦가을 새벽, 황 씨는 첫 손님을 받기 전 식당 앞 국도변에 나와 섰습니다. 길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첫차를 몰고 온 화물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습니다. 황 씨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밥솥에 불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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