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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팔순잔치 700만원 대줬는데..” 잔칫날 축의금함 앞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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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칠순이나 팔순 잔치는 자식들이 마음을 모으는 자리입니다. 형제가 많으면 비용도 나누고 일도 나누자고 쉽게 약속합니다. 그러나 막상 날짜가 다가오면 그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결국 한 사람이 모든 짐을 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임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 시장 골목에서 32년째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의자 세 개짜리 가게로 동네 할머니들 파마와 염색을 도맡아 해 왔습니다. 남편은 버스 기사로 일하다 3년 전 은퇴했고, 외동딸은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여든이 된 친정어머니가 혼자 살고, 남동생이 둘 있습니다.

임 씨는 맏딸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밭일을 하며 삼남매를 키웠습니다. 임 씨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읍내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 감기는 일부터 배웠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봉투째 어머니에게 드렸고, 그 돈으로 두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큰남동생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늘 집안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무렵 가게를 차린다며 돈을 빌려 갔다가 갚지 못했을 때도 어머니는 “그래도 장남인데” 하며 감쌌습니다. 작은남동생은 착했지만 형의 말이라면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명절마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사람은 임 씨였고, 상을 받는 사람은 남동생들이었습니다.

작년 봄, 어머니의 팔순을 앞두고 삼남매가 모였습니다. 큰남동생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누나, 엄마 팔순은 제대로 하자. 읍내 연회장 빌려서 동네 어른들 다 모시고. 비용은 셋이 똑같이 나눠 내면 되잖아.” 임 씨는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계약금을 낼 때가 되자 큰남동생은 “요즘 장사가 안 돼서 다음 달에 줄게” 하고 미뤘습니다. 작은남동생은 “형이 내면 나도 낼게”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결국 연회장 대여료와 음식값, 떡과 한복, 사진사 비용까지 700만 원이 모두 임 씨 몫이 되었습니다. 미용실 수입에서 매달 떼어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통장을 내밀며 “장모님 잔치인데 아끼지 맙시다” 하고 거들었습니다.

잔치 준비는 반년이 걸렸습니다. 임 씨는 가게 문을 닫는 일요일마다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 한복 치수를 재고, 떡집에 들러 떡 종류를 정했습니다. 동생들은 그동안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임 씨는 ‘엄마 웃는 얼굴만 보면 됐지’ 하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잔칫날은 바람이 선선한 가을 토요일이었습니다. 읍내 연회장 입구에는 ‘어머니 팔순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둥근 상마다 잡채와 갈비찜, 무지개떡이 놓였습니다. 어머니는 임 씨가 맞춰 드린 연분홍 한복을 입고 상석에 앉았습니다. 아침 일찍 임 씨가 직접 드라이를 해 드린 머리가 단정하게 빛났습니다.

임 씨는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과 홀을 오가며 음식을 날랐습니다. 하객 자리에는 동네 어른들과 어머니의 오랜 친구들이 가득 앉았습니다. 입구 탁자에는 하얀 축의금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회는 큰남동생이 데려온 지인이 맡았습니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 뜻깊은 자리를 마련한 효자 장남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 속에 큰남동생이 양복 차림으로 앞에 나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니, 이 아들이 그동안 부족했습니다. 오늘 하루라도 효도하고 싶어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부엌 문 앞에 서 있던 임 씨는 손에 든 쟁반을 내려놓지도 못했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주먹을 쥐었지만 임 씨가 팔을 잡았습니다. “잔칫날이에요. 엄마 앞에서 큰소리 내지 맙시다.”

잔치가 끝나 갈 무렵, 큰남동생이 입구 탁자로 가더니 축의금함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건 행사 비용 정산해야 하니까 내가 챙길게.” 그때였습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천천히 일어나 사회자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마이크 좀 이리 주게.”

연회장이 조용해졌습니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하객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 와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그런데 바로잡을 말이 있습니다. 이 잔치는 우리 큰딸이 다 했습니다. 연회장도, 음식도, 내가 입은 이 한복도 다 큰딸이 미용실에서 번 돈으로 했어요. 아들들은 한 푼도 안 냈습니다.”

하객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일었습니다. 큰남동생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엄마, 왜 이러세요.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이니까 하는 거다. 2년 전에 네가 서류 정리해 준다며 내 도장 가져갔지. 그때 내 이름으로 된 아랫마을 밭을 팔아서 네 빚 갚은 거, 나 알고 있다. 이장님이 새 주인한테 들었다고 알려 주더라.”

연회장 뒤쪽에 앉아 있던 이장 정 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은남동생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형이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습니다. “내가 평생 장남, 장남 하면서 네 허물을 덮어 줬다. 그게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 밭은 내가 너희 아버지랑 일군 땅이다. 그런데 정작 나를 챙긴 건 맨날 부엌에 서 있던 우리 큰딸이었다.”

어머니는 축의금함을 큰남동생 손에서 받아 임 씨에게 건넸습니다. “이건 네 거다. 네가 낸 돈 다 못 갚아도 이거라도 받아라.”

임 씨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큰남동생은 아무 말 없이 연회장을 빠져나갔고, 하객들은 하나둘 임 씨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잔치가 끝난 뒤 임 씨는 축의금을 세어 어머니 이름으로 통장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엄마, 이 돈은 엄마 병원비로 두세요. 저는 엄마가 알아주신 걸로 충분해요.” 작은남동생은 며칠 뒤 누나를 찾아와 그동안 미뤘던 몫이라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큰남동생은 한 달이 지나서야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을 빌었습니다. 어머니의 명의로 된 재산을 허락 없이 처분하는 일은 가족이라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어서, 형제는 남은 땅과 서류를 함께 정리하고 어머니가 직접 관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가족 사이의 약속은 말로만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늘 묵묵히 일하는 한 사람이 모든 짐을 집니다. 부모님을 위한 큰일이 있다면 누가 얼마를 낼지 미리 정해 두고, 형제끼리 그 내용을 함께 확인해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말없이 애쓰는 자식은 부모가 다 보고 있습니다.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올가을 임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 뒷산 감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가지마다 붉게 익은 감이 매달려 있었고, 들판 너머로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습니다. 모녀는 감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아 해가 질 때까지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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