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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에게 병원비 7천만원 줬는데..” 남편 칠순 건배사에서 알게 된 며느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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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프면 돈 이야기는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병원비를 누가 맡아 어떻게 쓰는지 묻는 것조차 정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입을 다물게 됩니다. 그래서 믿고 맡긴 돈일수록 들여다보지 않게 되고, 그 틈은 생각보다 깊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정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의 시장 골목에서 남편과 함께 32년째 방앗간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셔터를 올려 쌀을 불리고, 명절 대목에는 가래떡을 뽑느라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삽니다. 외아들은 같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며 며느리,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며느리는 9년 전 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인사 오던 날, 며느리는 방앗간 앞치마부터 빌려 입고 참깨 볶는 솥 옆에 섰습니다. “어머님, 저 이런 거 꼭 해 보고 싶었어요.” 매운 연기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끝까지 주걱을 놓지 않았습니다. 정 씨는 그날 밤 남편에게 “복덩이가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명절이면 며느리는 가장 먼저 방앗간에 나와 떡을 썰고 손님들 봉지를 묶었습니다. 정 씨가 쌀자루를 들다 허리를 삐끗했을 때는 한 달 내내 퇴근길에 들러 가게 정리를 도왔습니다. 맞은편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한 씨는 “요새 저런 며느리 없어요”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2년 전 가을, 남편이 같은 말을 자꾸 되묻기 시작했습니다. 떡 배달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돌아온 날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라고 했습니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 진행을 늦출 수 있지만 앞으로 검사와 돌봄에 돈이 꽤 들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날 저녁 며느리가 정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님, 은행 일 어려워하시잖아요. 아버님 병원비랑 약값은 제가 꼼꼼히 관리할게요. 영수증도 다 모아 둘게요.” 정 씨는 고마워서 목이 메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 자신보다 젊은 며느리가 훨씬 나을 것 같았습니다.

남편 명의로 든 정기예금이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대목 수입을 조금씩 떼어 모은 7000만 원이었습니다. 남편이 아직 은행 창구에서 제 이름을 또박또박 쓸 수 있을 때, 정 씨는 남편과 함께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해지하고 남편 이름으로 새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통장과 카드를 며느리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너 믿는다.”

그 뒤 2년 동안 남편의 병은 조금씩 깊어졌습니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녔고, 밤에는 정 씨가 곁을 지켰습니다. 며느리는 석 달에 한 번쯤 손글씨 장부를 보여 주었습니다. 센터비 매달 150만 원, 약값, 검사비가 빼곡했습니다. 지난봄에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통장에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정 씨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병이 원래 돈 먹는 일이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새벽 일을 한 시간 앞당겼습니다.

올해 10월, 남편의 칠순 잔치가 열렸습니다. 아들이 시내 한식 뷔페의 작은 연회실을 빌렸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들이 맞춰 준 회색 양복을 입고 상석에 앉았습니다. 손님들을 다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손녀가 달아 준 카네이션 브로치를 자꾸 만지며 웃었습니다.

친척 스무 명 남짓이 모였고, 며느리의 친정 부모님도 일찍 와 계셨습니다. 상에 오른 떡은 정 씨가 새벽에 방앗간에서 직접 뽑은 무지개떡이었습니다. 케이크 촛불을 끄자 사회를 보던 아들이 바깥사돈에게 건배사를 부탁했습니다.

바깥사돈은 맥주잔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사돈어른, 칠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정 씨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사돈 덕분에 우리 막내아들이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사돈, 고맙습니다!”

박수가 터졌지만 정 씨는 잔을 든 채 굳어 버렸습니다. 사돈댁 막내아들이 지난해 봄 고깃집을 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 씨가 보탠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사돈어른,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런 돈을 드린 적이 없는데요.” 바깥사돈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겸손하시긴. 오천만 원이 어디 적은 돈입니까. 딸애가 시어머님께서 흔쾌히 내주셨다고 해서 우리 내외가 얼마나 송구했는지 모릅니다.”

정 씨의 시선이 며느리에게 갔습니다. 며느리는 물수건을 쥔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안사돈이 딸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얘, 너 시어머님이 주셨다며. 그게 아니면 그 돈이 어디서 났어?” 며느리는 입술만 달싹일 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친척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번졌고, 상석의 남편만 영문을 모른 채 손녀 접시에 떡을 올려 주고 있었습니다.

잔치는 서둘러 끝났습니다. 그날 밤 아들이 남편 통장의 거래 내역을 열었습니다. 통장을 만든 지 석 달 뒤, 5000만 원이 처남 이름의 계좌로 한 번에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정 씨는 서랍에서 주간보호센터 명세서를 꺼내 며느리의 장부와 나란히 놓았습니다. 센터비 대부분은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되고 있었고, 차량 이동비 칸에는 ‘보호자 부담 없음’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가족이 실제로 낸 돈은 한 달 이십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나라에서 대 준 몫까지 매달 150만 원씩 병원비로 쓴 것처럼 적어 왔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며느리가 방앗간으로 찾아와 기계 소리가 멈춘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님, 동생 가게 잘되면 금방 채워 넣으려고 했어요. 시어머님이 주셨다고 하면 친정에서 마음 편히 받을 것 같아서….”

정 씨는 한참 동안 볶다 만 참깨 솥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내가 서운한 건 돈이 아니다. 아버님 아파서 모아 둔 돈을 아버님 몰래 쓰고, 나한테는 통장이 바닥났다고 한 거다. 나는 그 말 듣고 새벽 네 시에 나왔다.”

정 씨는 통장과 카드를 돌려받았습니다. 앞으로 남편의 돈은 아들과 정 씨가 함께 관리하고,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장부를 펼쳐 보기로 했습니다. 사돈 내외는 그 주에 방앗간을 찾아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바깥사돈은 막내아들이 가게 수입에서 매달 갚게 하겠다며 손수 쓴 각서를 내밀었습니다. 정 씨는 며느리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손녀의 엄마이고, 9년 동안 참깨 솥 옆에 서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무너진 믿음을 다시 쌓는 일은 며느리의 몫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가족끼리 돈을 맡기는 일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수증 한 장, 통장 한 줄을 함께 확인하는 일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아픈 가족의 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맡긴 사람도 맡은 사람도 언제든 꺼내 보일 수 있게 두어야 돈도 지키고 사람도 잃지 않습니다.

11월 첫 주, 정 씨는 남편의 손을 잡고 방앗간 뒤 둑길을 걸었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발밑에 수북했고, 둑 아래 빈 논에는 볏짚 더미가 둥글게 놓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여기 우리 가게 뒤 맞지?” 하고 물었습니다. 정 씨는 “그럼요, 우리 가게 뒤예요” 하고 대답하며 남편의 목도리를 다시 여며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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