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아들 대신 손녀 학비 2000만원 댔는데..” 졸업식장에 온 전 며느리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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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떠난 자리를 조부모가 채우는 집이 적지 않습니다. 늙은 몸으로 손주를 키우는 일은 고되고, 아이를 두고 떠난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도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원망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오랜 세월의 서러움은 한꺼번에 눈물이 되어 쏟아집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하옥분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진주 중앙시장에서 35년 동안 건어물 가게를 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가게를 꾸리며 외아들을 키워 장가보냈습니다.
11년 전, 아들 부부가 갑자기 이혼을 했습니다. 며느리 미영이는 짐을 싸서 집을 떠났고, 여덟 살이던 손녀 지은이만 남았습니다. 아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떠났고, 지은이는 그날부터 옥분 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옥분 씨는 떠난 며느리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두고 가나.” 동네 사람들이 며느리 이야기를 꺼내면 옥분 씨는 “독한 사람”이라며 말을 끊었습니다. 지은이 앞에서는 엄마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네 시면 옥분 씨는 가게 문을 열었고, 오후에는 지은이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학부모 공개 수업에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젊은 엄마들 사이에 앉았습니다. 지은이는 친구들이 “너네 엄마는?” 하고 물으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춘기가 된 지은이가 “나는 왜 엄마가 없어?” 하며 밤새 울던 날도 있었습니다. 옥분 씨는 손녀를 끌어안고 “할미가 엄마 몫까지 다 해 줄게” 하며 등을 토닥였지만, 속으로는 떠난 며느리가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지은이는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옥분 씨는 손녀가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학원비며 문제집 값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원비와 학비로 쓴 돈이 2,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건어물 가게의 수입은 고스란히 손녀의 책값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은이를 맡은 그해부터 옥분 씨 통장에는 매달 30만 원씩 돈이 들어왔습니다. 보낸 사람의 이름 칸에는 늘 ‘지은이 우유값’이라고만 찍혀 있었습니다. 옥분 씨는 중동에 있는 아들이 보내는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옥분 씨는 그 돈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따로 통장을 하나 만들어 매달 그대로 옮겨 두었습니다. “아들이 고생해서 보낸 돈이니 지은이 대학 갈 때 쓰자.” 그렇게 11년 동안 모인 돈이 4,000만 원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몇 해 전 한국에 돌아와 창원의 조선소에 취직했습니다. 주말마다 진주에 와서 딸을 만났지만, 우유값 이야기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옥분 씨는 아들이 쑥스러워서 그러려니 하고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고3이 된 지은이는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 가게 구석에 앉아 밤늦게까지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마른 오징어 냄새가 배어도 지은이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할머니, 나 선생님 되면 할머니 가게 그만하게 해 줄게.” 옥분 씨는 그 말에 피곤함도 잊었습니다.
올해 2월, 지은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서울의 한 교육대학교에 합격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이었습니다. 옥분 씨는 장롱 깊숙이 아껴 둔 한복을 꺼내 입고 아들과 함께 졸업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강당 앞에서 사진을 찍던 중이었습니다. 옥분 씨는 강당 기둥 뒤에서 누군가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수한 외투를 입은 마흔 중반의 여인이었습니다. 옥분 씨는 그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미영이였습니다.
옥분 씨는 굳은 얼굴로 다가갔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나.” 그때 아들이 옥분 씨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엄마, 사실 할 말이 있어요. 그 우유값, 제가 보낸 게 아니에요. 지은이 엄마가 보낸 거예요.”

옥분 씨는 아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은 그제야 11년 동안 감춰 온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혼하던 해, 미영이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긴 항암 치료를 앞두고 어린 딸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겨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그 사람 미워하는 거 알아서 말을 못 했어요. 그 사람이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고요. 자기가 살아남으면 그때 직접 용서를 빌겠다고요.” 미영이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식당 주방과 청소 일을 하며 한 달도 빠짐없이 30만 원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미영이는 옥분 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지은이를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은이 운동회도, 입학식도 늘 먼발치에서만 봤습니다. 오늘만큼은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요.” 미영이는 5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옥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11년 동안 독한 사람이라고 미워했던 며느리가, 사실은 누구보다 아프게 딸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옥분 씨는 떨리는 손으로 미영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왜 말을 안 했어.”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은이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아들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은아, 엄마다.” 지은이는 한참 동안 미영이를 바라보다가 졸업장을 든 채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강당 앞마당에 세 여자의 울음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옥분 씨는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통장을 꺼내 미영이 앞에 내밀었습니다. “네가 11년 동안 보낸 우유값이다. 한 푼도 안 쓰고 모아 뒀다. 이건 네가 지은이 손에 직접 쥐여 줘라.” 미영이는 통장을 받아 들고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미영이는 그 통장을 지은이의 두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엄마가 해 줄 수 있었던 건 이것뿐이었어.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모자란다는 거 잊지 마.” 지은이는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뒤로 미영이는 한 달에 두 번씩 진주에 와서 옥분 씨의 가게 일을 돕습니다. 지은이가 방학을 맞아 내려온 지난달, 세 사람은 중앙시장 골목의 오래된 비빔밥집에 함께 갔습니다. 놋그릇에 담긴 비빔밥 세 그릇과 선짓국 한 뚝배기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미영이가 옥분 씨 그릇에 나물을 덜어 드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제 제가 효도할게요.” 옥분 씨는 웃으며 며느리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권정생의 『엄마 까투리』에서 엄마 까투리는 산불이 번지는 순간에도 새끼들을 날개 밑에 품고 끝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쉬지 않고 자식을 감싸 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대개 그 사람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해서 생깁니다. 오랫동안 원망해 온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그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가 오랜 상처를 풀어 줍니다.
올가을 옥분 씨는 미영이, 지은이와 함께 남강 유등축제가 열린 강변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강물 위에 수많은 등불이 떠올라 은은하게 빛났고, 강변 나무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옥분 씨는 두 사람의 손을 양쪽에 잡고 밤이 깊도록 강변을 걸었습니다.
출처 : ‘엄마 까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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