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한때 ‘대도’로 불리웠던 도둑 조세형씨를 변호하면서 듣게 된 얘기다. 당시 한겨레신문에서 이런 사설이 실렸다.
‘대도가 다시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1983년 잡힐 당시 공소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훔친 보석만 마대로 두 포대, 수백억원어치에 이른다는 것이다. 범죄사실을 부풀리는데 익숙한 수사기관이 오히려 축소했다. 그 피해액은 항소심에서 다시 반으로 줄었다. 감정해 보니까 반밖에 안되더라는 것이다. 수수께끼 같다.
해답은 사실 간단하다. 한 개에 수 억원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떳떳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석이나 거액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숨거나 피해액을 줄이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엄변호사는 이 사회의 부패상과 빈부 격차를 알려주는 씨씨티브 역할을 한 것이 대도라고 했다.’
사설은 대도의 형량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도에 대한 사법처리에 대해서도 정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죄 값을 충분히 치르고 다시 덤으로 감옥에서 십년을 살라는 처분이 정당한 법정신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다. 재범의 위험이 있다는 명분만으로 그를 다시 간판만 갈아붙인 교도소인 보호감호소에서 살리는 것은 명백한 법의 횡포다. 대도 사건의 뒤에 숨은 음습한 진실은 밝혀져야 마땅하다. 또한 응분의 죄 값을 치른 대도는 풀려나야 옳다.’
사설은 내 말을 인용해 주었다. 한편으로 언론은 ‘음습한 진실’이라고 하면서 꼬리를 감춘 고위층이 누군지 알고 싶어했다.
15년 전의 공소장에 그들은 피해자로 나와있지 않았다. 그 실체가 누구인지 대도에게 물어보았다. 대도가 들어간 턴 집은 다양했다. 국무총리, 안전기획부장, 부총리, 경제관료, 재벌, 경호실장, 중진 정치인의 집등이었다.
대도는 그런 집들의 은밀한 창고 안을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그는 장충동의 넓은 한옥집에서 보석을 턴 얘기를 했다. 당시 엄지 손톱 만한 루비는 한 알에 몇 억원이었다.
대도는 그 집 금고에서 루비 2백알을 훔쳐 편지 봉투에 넣고 돌아오다가 그 루비가 담긴 봉투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도망을 할 때 바로 큰 길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붙어있는 몇 집 담을 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집 정원에 그걸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그걸 주운 집은 횡재를 한 셈이었다. 그 보석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대도는 홍대 근처의 어떤 집에서 천문학적 숫자의 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있던 걸 얘기하기도 했다. 이상한 건 거액의 수표나 어음이 분실됐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경찰서에 온 그 집 주인 여자는 바로 그 수표나 유가증권들을 태워버리고 안심하는 표정이더라고 했다. 형사들끼리 자기가 고관집을 털었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그는 광화문의 어떤 집 집 안방 장 뒤의 벽에 달라와 엔화 그리고 현금 뭉치가 벽돌같이 포장되어 가득 쌓여있었다고 했다. 카고백에 수십억의 현금을 넣어가지고 나오는데 정말 무거웠다고 했다. 형사들이 그 댁은 정치인의 집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그는 그외에도 경호실장등 실세 권력가의 집에서 보았던 엄청난 양의 골동품등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말해 주었다. 그가 도둑질은 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재벌이나 권력가의 촉수는 민감한 것 같았다. 15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들은 내게 접근해 왔다. 잃어버린 보석이나 금고 안의 돈 문제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는 걸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고 했다.
어느 날 한 재벌그룹 회장 비서라고 하는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말했다.
“저희 회장님께서는 대도를 돕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좋은 일 하시는 엄변호사도 지원하실 의사가 있으십니다. 다만 우리 회장님이 뒤에서 돕는 걸 아무도 몰라야 한다는 겁니다.”
“왜 회장님이 그렇게 하고 싶으신 거죠?”
그 비서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회장님께서는 평생을 저축한 예금증서를 금고 안에 넣어두셨는데 운 나쁘게도 대도가 그걸 가져갔습니다. 그걸 엄 변호사께서 알아달라는 겁니다.”
그 회장은 전직 고위 경제관료였다. 부인이 경찰서에 와서 거기 있던 거액의 CP어음을 다 태워버리고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는 그 당사자였다. 평생을 저축했다는 예금증서라면 왜 분실신고도 하지 않고 없애버렸을까. 수백억에 해당하는 루비를 도둑맞은 부자도 중간에 변호사를 넣어 내게 침묵을 부탁했다. 거액을 털린 집들이 대도의 입을 무서워 하면서 떠는 이상한 현상을 나는 목격하고 있었다.
1983년 4월경 대도는 권총에 이마를 맞고 체포됐었다. 당시 두꺼비라는 네 컷짜리 신문의 시사만화가 당시의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시사만화가인 안의섭씨는 ‘대도는 총 말고 대포로 쏴야 한다’며 영원히 입을 막지 못한 권력을 비웃었다.
#두꺼비안의섭, #물방울다이어,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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