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경’ 리뷰
‘문경’은 지친 현대인에게 휴식을 주는 선물 같은 영화다. 문경은 신동일 감독 부친의 고향으로 문경에서 영화를 찍길 바란 아버지의 오랜 권유가 발단이 되었다. 아버지가 태어난 110년 넘은 고택이 후반부 중요하게 등장하는 메인 무대로 이어진다.
문경의 수려한 자연과 무해한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선유동 계곡, 윤필암, 고모산성, 주암정, 진남교반, 잉카마야박물관이 등장해 마치 여행을 떠난 듯 편안한 마음이 이어진다.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추천하고 싶은 지역이다.
번아웃으로 2박 3일 휴가 떠나 얻은 것
회사에서 인정받는 문경(류아벨)은 동생 같은 초월(채서안)을 살뜰히 챙기는 선배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 바로 초월이기 때문.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획력, 성실한 인성까지 갖추었지만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서는 초월만 챙기는 문경의 태도에 불만이 커져 업무와 대인관계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결국 위장병과 번아웃이 온 문경이 며칠 결근한 사이 초월은 예정보다 빨리 퇴사해 버려 자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틸 수 없었던 문경은 초월의 고향이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문경으로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난다.
한편, 문경에서 첫 만행을 시작한 비구니 스님 가은(조재경)은 강아지 길순과 문경을 만난다. 떠돌이 개 같지 않은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한다. 두 사람은 조용한 살길을 걷고 한적한 강가에서 차박하며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을 만끽한다.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초초한 모습,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일상을 서울에 두고 오니 꽉 찬 마음이다.
그러던 중 반려견 해피를 잃어버린 할머니(최수민)를 만나 그 집에 머물게 된다. 나이, 출신, 배경,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세 여성은 비밀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고, 길순의 보호자를 정하던 중 길순이 실종된다.
인연의 중요성 인연과보(因緣果報)
영화는 세 여성의 과거를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되짚는다. 인연과보란 모든 사건과 현상이 원인과 조건으로 발생하며, 결과와 보답이 있다는 불교 교리다. 즉 현재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과거 인연의 결과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설정과 메시지를 위해 신동일 감독은 정토불교대학에서 1년간 배우며 불교를 공부했다.
문경은 뮤지션을 꿈꾸던 동생을 떠올리며 계약직 초월을 챙기는 살뜰한 선배다. 직장 생활의 대부분은 대인관계라는 말이 있듯이, 업무 스트레스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합이 중요한 현대사회의 기본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그야말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동료이자 후배를 만난 문경은 초월의 정규직 전환에도 도움주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 있다고 해도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혀 고민하던 중 결국 반갑지 않은 손님 번아웃이 찾아온다
가은은 입적하기 전 친구를 잃은 비극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사회적 참사의 생존자였지만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 후 1년 차가 되던 날, 세상을 떠돌며 만행하다 길순과 문경을 만난다.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문경을 돌아다니던 중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자연의 섭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배워간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나 만나는 첫 번째 인연임을 실감하며 길 위에서 만난 곤충, 나무, 동물, 돌 하나까지도 연결된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
유랑 할매는 자식 같은 반려견을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사회생활에 짓눌려 상처 입은 손녀를 보듬고 있다. 가족이라 해도 하루에 얼굴 보기도, 말 섞이고 어려운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트라우마로 얻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손녀가 안타까워 속앓이, 집 나간 반려견이 걱정된 근심으로 하루를 겨우 버텨내던 중. 인적 드문 동네에 오랜만에 찾아온 외지인 문경, 가은, 길순을 맞아 대접하고 대접받는 즐거움을 맞는다.
연관성 없어 보이던 세 여성과 각기 다른 사연은 자연의 정취와 따스한 정, 맛있는 음식으로 연결된다. 서로의 고민과 상처를 보듬는 위로를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해 나간다. 문경은 지구라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사람과 사람, 동물과 인간, 인류와 자연과의 소통은 원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담아낸다.
영화 제목과 동명이자 지역 이름과 같은 주인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진주의 진주」는 영화를 찍으러 진주에 찾은 감독 진주가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켜내는 과정을 담았다. 「패터슨」은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 일상을 보내며 시를 써 내려가는 이야기다.
「문경」에서도 자신의 이름과 같은 문경으로 휴가를 떠나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바쁜 생활에 지쳐 어떠한 방법으로도 휴식을 원한다면,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면 「문경」이 전하는 청청무구함이 잠시나마 여유와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더불어 노란색, 파란색 위주로만 구별할 수 있는 강아지의 흑백 세상을 담은 영상도 잊을 수 없다.
평점: ★★★☆
글: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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