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여름 휴가

그해 여름, 지영은 남편 출장 덕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오랜 친구 수아가 권유한 곳이었습니다. 조용한 해변 근처 작은 펜션,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다고 했습니다. 지영은 짐을 싸면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것에 기분이 들떴습니다.
그리운 풍경
제주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숙소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지영은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왔던 제주도. 그때는 아무 걱정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결혼 7년 차. 남편 준혁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지영은 알고 있었습니다. 딱히 싸운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이번 휴가가 그 공기를 환기시켜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첫날 저녁
펜션에 짐을 풀고 해변을 산책했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웠고, 파도 소리가 머릿속을 비워줬습니다. 지영은 오랜만에 숨을 제대로 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해변 근처 작은 바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셨습니다. 혼자인 게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파도가 조용히 밀려왔다 나가는 걸 바라보며 지영은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해변 끝 쪽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뭔가 익숙한 실루엣이었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낯선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목격
오전 내내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해변 근처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다가, 지영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장면
창가 너머 테라스 자리. 남자가 여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웃고 있었고, 남자도 웃고 있었습니다. 지영이 결혼식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그 웃음이었습니다.
남자는 준혁이었습니다. 친구 수아의 남편.
지영은 몸이 굳었습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수아는 남편이 이번 주 부산 출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제주도에 오게 됐다고. 지영도 그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준혁은 제주도 해변 테라스에서 낯선 여자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도망치듯 나온 식당
지영은 메뉴판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최대한 시선을 끌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준혁은 여자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지영 쪽을 보지 않았습니다.
식당을 나와 골목으로 돌아서는 순간, 지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습니다. 머릿속이 하얬습니다.

수아에게 전화해야 할까
첫 번째 본능은 수아에게 바로 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영은 손이 멈췄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떻게 꺼내야 할까요. 잘못 봤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준혁이었습니다. 10년 넘게 봐온 얼굴이었습니다.
혼자 감당하는 무게
펜션으로 돌아온 지영은 침대에 앉아 한참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완벽했던 여름 휴가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수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결혼하면서 누구보다 행복해했던 친구. 준혁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지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무거웠습니다.
다시 나간 해변
저녁이 되어 지영은 다시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해변 초입에서, 지영은 또 그들을 봤습니다. 이번엔 훨씬 가까웠습니다. 준혁이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둘 다 발을 파도에 적시며 걷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처럼.

준혁과 눈이 마주쳤다
지영이 돌아서려는 순간, 준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영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3초였습니다. 하지만 그 3초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수없이 많은 말이 오고 갔습니다. 준혁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지영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지영이 펜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준혁이었습니다. 여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영아.”
지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영아, 잠깐만.”
할 말이 없는 사람
지영은 결국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준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게 더 가증스러웠습니다.
“설명해줄 수 있어?”
지영이 먼저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하게 나왔습니다.
준혁은 입을 열었다 닫았습니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준혁이 말했습니다.
“오래됐어.”
지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이 아니라는 것. 그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설명되지 않던 것들을 한꺼번에 설명해줬습니다.
수아가 혼자 여행을 자주 다닌 이유. 준혁이 야근이 많아진 시기. 두 사람 사이가 어딘가 어색해 보이던 순간들.
수아는 알고 있을까
“수아는 알아?”
준혁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순간 지영에게는 결정해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친구에게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어느 쪽도 쉽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
말하면 수아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말하지 않으면 지영 자신이 그 비밀을 평생 안고 가야 합니다.
지영은 준혁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한테 부탁하지 마. 내가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해.”
그리고 돌아섰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잤다
펜션으로 돌아온 지영은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수아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20년 친구.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한 사람.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수아는 어떻게 했을까. 지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왔다
날이 밝았습니다. 지영은 씻고 짐을 쌌습니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이 바다가 예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지영은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올라가는 길이야. 만날 수 있어?”
카페에서 마주한 친구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지영은 수아를 만났습니다. 수아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지영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영은 말을 꺼낼 타이밍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이 순간을 미루고 싶었습니다. 한 번 꺼내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진실을 말하다
결국 지영이 입을 열었습니다.
“수아야, 나 제주도에서 준혁 씨 봤어.”
수아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지영은 본 것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꾸미지도, 줄이지도 않았습니다. 말하는 내내 손이 떨렸습니다.
수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었어.”
지영은 멈췄습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확인하기가 싫었어.”
무너지지 않는 친구
수아는 놀랍도록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울면서도 담담했습니다. 지영이 오히려 더 많이 울었습니다.
수아가 말했습니다.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 평생 모른 척하고 살았을 것 같아.”
지영은 그날 이후 수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 자리에서 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수아의 이야기이고, 수아가 결정할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지영은 제주도 그 해변을 생각할 때마다, 아름다운 노을보다 그날 아침 굳어버린 준혁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던 여자가.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오락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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