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시간을 빙벽에서 버텼다" 1968 울진·삼척 무장공비 124명의 비사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 사이 북한 무장공비 124명이 강원 울진과 삼척 일대에 침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 1월의 1.21사태(김신조 사건) 9개월 뒤 일어난 두 번째 대규모 무장 침투였습니다.이 사건은 단일 침투 인원으로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대 규모였고, 토벌 작전이 약 두 달간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군경 사상자만 약 70
"탄알 한 발에 철모를 뚫었다" 1953 백마고지, 24차례 주인이 바뀐 12일1952년 10월 강원 철원 일대 해발 395미터 고지 하나에서 12일 동안 한국군 9사단과 중공군 38군 사이에 24차례 주인이 바뀐 격전이 있었습니다. 고지 능선이 포격으로 깎이고 흙이 흰빛으로 변해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입니다.이 전투는 단순한 고지 점령전이 아니라 휴전회담을 앞두고 협상 테이블에서의 위치를 결정하던 마지막 격전 중 하나였습
"고지 주인이 24번 바뀌었다" 1952 백마고지, 9사단 포탄 22만 발의 9일한 고지의 주인이 9일 동안 24번 바뀌었습니다. 그 9일이 한국군 9사단을 '상승백마'로 만들었어요. 1952년 백마고지 전투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사실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디지털철원문화대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52년 10월 6~15일 — 9일간 12차례 공방·24차례 점령 교체 1952년 10월 6일부터 15
"60명 정원에 14000명 태웠다" 흥남철수 메러디스호, 크리스마스의 기적정원 60명짜리 화물선에 14,000명을 태우고 떠난 배가 있었습니다. 그 배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어요.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를 위키·VOA·KBS 다큐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50년 12월 15~24일 — 군 10만 + 피난민 10만 철수 흥남 철수작전은 6·25전쟁 중 1950년 1
"한 명이 다 막은 게 아니다" 다부동 전투, 숨은 8개 사단의 진실"백선엽 1사단이 인민군을 다 막아 대한민국이 살았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죠? 학술 자료를 열어보면 그림이 꽤 다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정책브리핑, 그리고 다부동 전투 재구성 논문을 토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사실을 정리했습니다. 240km 낙동강 전선, 8개 사단이 함께 막았다 박경석 예비역 장군은 "240km나 되는 낙동강 전선에
"해군을 창설" 이순신 장보고와 함께 전설로 불리는 '해군의 아버지' 정체해군의 아버지, 손원일이라는 이름 손원일은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는 신념으로 대한민국 해군을 세운 인물이다. 해방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11일,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조직하며 사실상 한국 해군 창설에 착수했다. 이 공적으로 그는 훗날 초대 해군참모총장, 제5대
대를 이어서 "대한민국을 수호한" 별 갯수만 13개 가문의 외국인별 13개, 3대에 걸쳐 한반도와 이어진 ‘에이브럼스 가문’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브루스 에이브럼스 대장은, 애초부터 “군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군인”이었다. 부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전 미 육군참모총장과 두 형까지, 3부자가 모두 장군으로 진급해 합계 별이 13개에 이른다는 상징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 가운데 막내인 로버트가 결국 한반도 방위를 책임
한국 고등학교 졸업식에 ”미군 고위급 간부들이” 찾아오는 이유한국전쟁 격전지 황무지…천막 교실서 공부하는 아이들 1951년 영천은 한국전쟁 최전선 격전지로, 미군 40사단과 한국군이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서울 재탈환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었다.전투로 모든 학교가 파괴된 황폐한 땅에서 아이들은 폭격 흔적 천막 아래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당시 40사단 사단장 클리블랜드 준장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교육을 포기
외국인의 죽음에 ”한국 공군 전투기 6대를 띄워” 애도를 표현한 이유교사였던 태국 청년, 한국전쟁에 자원하다 롯 아사나판은 원래 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고, 이웃나라 한국이 공산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망설임 없이 참전을 결심했다.태국 파병군 의무대 소속으로, 그는 전선과 후방을 오가며 포화 속에서 다친 장병들을 돌보는 간호분대장 겸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리
6.25전쟁 패배했다면 "한국인들이 이주할 뻔 했다는" 제 2의 대한민국 섬패배를 전제로 세워졌던 ‘제2의 대한민국’ 구상 6·25전쟁 초반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던 시기, 미국과 유엔군은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가능성을 실제 시나리오로 검토하고 있었다. 이 경우를 대비해 한국 정부와 일정 인구를 해외로 옮겨 ‘망명정부’와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자는 논의가 미군 내부에서 제기됐고, 그 후보지로 일본 야마구치현과 남태평양 서사모아(당
"미국 사령관" 대를 이어서 대한민국을 지켜줬지만 알려지지 않은 미국인 가문문재인이 건넨 최고등급 보국훈장과 ‘호랑이 칼’ 2021년 7월 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이임 서훈식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했다. 통일장은 국가안보에 뚜렷한 공을 세운 이에게 주는 보국훈장 5개 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1등급으로, 현직 미군 지휘관에게 수여되는 일은 매우 이례적
”전투 경력도 제일 많았던 장군이” 고작 1평짜리 좁은 무덤에 묻힌 이유‘전투 제일 많이 한 장군이’ 1평짜리 무덤을 택한 이유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전투에 참여하고, 역대 최다 무공훈장(28개)을 받은 육군 쓰리스타 채명신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단 1평짜리 묘역에 누워 있다.장군은 평소 “나를 장군 묘역이 아니라, 함께 싸우다 먼저 간 사병들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뜻 그대로 사병 묘역에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카그뉴, 에티오피아의 선택 아프리카에서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국가는 에티오피아 한 나라뿐이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는 유엔군 파병 요청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에티오피아를 도와준 국제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며 정예 부대를 보내기로 결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는 황실 근위대 출신으로 구성된 ‘카그뉴(Kagnew)
미국보다 어쩌면 "더 한국 보호에 진심이라" 무조건 지켜준다는 '이 나라'한국전쟁 당시 영국의 긴급 파병과 역사적 역할 1950년 6월, 북한군 남침 소식이 전해진 직후 영국은 미국에 이어 가장 신속하게 지원을 결정했다. 개전 불과 4일 만에 제29보병여단 파병 공식 발표와 동시에 극동함대의 일부 함정을 한국 해역에 급파했다. 영국 해군은 경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프리깃 등 8~22척 함대 전력을 투입해 미군과 합동 작전에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목숨걸고 참전했지만 '잘 알려지지않은 국가들'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카그뉴 부대’, 에티오피아의 결단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 의사를 밝힌 아프리카 국가는 단 한 곳, 바로 에티오피아였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자유 진영을 지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파병을 결정했다. 에티오피아군은 정예 부대인 ‘카그뉴(Kagnew) 부대’를 1951년부터 파
일본이 버리고 간 폐광에서 ''한국이 파자 황금이 쏟아져나온'' 폐광일제가 버리고 간 폐광에서 황금이 다시 쏟아지다 한국 전쟁 당시 무너져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일제 시대 금광이 최근 재조명 받고 있다. 350m 깊이 갱도 곳곳에서 엄청난 금맥이 발견되며, 연간 250kg의 황금 생산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기술 부족으로 깊이 탐사가 어려워 표면 일부만 채굴됐던 금맥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무너진 갱도, 한국의
교과서에 실린 책,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더니 오열...”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읽히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쓴 자전 소설인데요. 1930년대 개풍 박절골에서 보낸 찬란하고 싱그러운 유년 시절과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살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경험
253번 넘는 전투에도 ''단 한 번도 패배 없이'' 한국을 지켜준 아프리카 부대에티오피아가 한국을 도운 이유와 배경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한국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유엔의 집단 안보 원칙에 따라 참전했습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국제협력을 강조했고, 이를 바탕으로 에티오피아는 UN군에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이 결정에는 과거 이탈리아 식민지 경험, 에리트레아 회복 의지, 그
소위에서 고작 2년 만에 초고속 진급해 ''별을 달고 장군이 된'' 군인공군의 초석 놓은 전략가, 최용덕 장군의 비전과 역할 최용덕(崔用德, 1898~1969)은 중국군 군관학교 출신으로 광복 이후 1946년 귀국, 1947년 육군 소위 임관 후 공군 창설에 뛰어들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초대 국방부 차관 겸 공군 독립 주도자로 발탁됩니다. 이로써 그는 공군 체계와 전통 정립의 핵심 지도자로 평가받게 됩니다.
''국군 최초로 38선을 진격하며'' 한 번도 북한에 뚫린 적 없다는 이 '부대'‘백골(白骨)’ 상징에 담긴 불굴의 투지 3사단으로도 알려진 백골부대는 강원도 철원 DMZ에 주둔하며, 이름인 백골(白骨)은 ‘백골이 되어서라도 조국을 사수하겠다’는 사투 의지를 담고 있다. 극한의 추위—겨울에는 체감 기온 –30℃ 이하— 속에서도 훈련과 경계를 멈추지 않아, 군필자 사이에서도 “백골이 출동하면 입이 딱 다문다”는 평가가 전해진다. 38선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