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호객꾼에서 ‘계엄 체포 명단’ 오르기까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의 파란만장 굴곡사

대한민국 미디어 지형에서 가장 뜨거운 찬사와 거센 비판을 동시에 받는 방송인 김어준(56) 딴지일보 총수가 파란만장한 인생 궤적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학 시절 유럽의 거리 호객꾼에서 국내 1세대 인터넷 언론 창간자로, 나아가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군 체포 명단에 오른 핵심 인물로 지목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여정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재조명됐다.
수재 출신의 방랑벽… 파리·로마 호객꾼 거쳐 포스코 8개월 만에 퇴사

1968년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난 김어준은 유년 시절 부친을 따라 미국에서 1년간 거주한 뒤 국내 중학교로 전학해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할 만큼 학업 역량이 뛰어났다. 서울 문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3수를 거친 끝에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그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전 세계 50여 개국을 배낭여행하며 견문을 넓힌 그는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저가 호텔과 민박의 한국인 호객꾼(삐끼)으로 일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배짱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단순 호객꾼을 넘어 호텔 매니저 역할까지 맡는 등 비범한 이력을 남겼다.
1995년 대학 졸업 후 국내 유수의 대기업인 포항제철(현 포스코) 해외영업팀에 공채로 입사했으나, 규격화된 조직 문화에 얽매이지 못하고 불과 8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대한민국 1세대 인터넷 언론 ‘딴지일보’ 창간과 팟캐스트 돌풍
퇴사 후 여행과 사업 구상 과정에서 마련한 자금 6,000만 원을 밑천 삼아 그는 1998년 7월 ‘딴지일보’를 창간했다. 주류 언론의 권위주의와 보수 기득권, 특히 조선일보를 통렬하게 풍자·패러디한 딴지일보는 ‘B급 감성’과 파격적인 화법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창간 이듬해인 1999년에는 기성 언론을 제치고 국내 언론사 영향력 조사에서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국내 인터넷 저널리즘의 효시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후 2011년 팟캐스트 전성기를 연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기획·진행하며 대안 미디어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어 2016년부터 맡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수도권 라디오 청취율 1위에 올려놓으며 독보적인 스피커로 군림했다. 2022년 말 TBS 하차 이후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출범시켜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여론 형성자로 활동을 이어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 “내가 죽을 줄 알았다” 체포 명단 포함된 내막
김어준의 파란만장한 행보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정점에 달했다. 계엄 사태 직후 국회에 출석한 홍장원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사령부 및 군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가 작성한 주요 체포 대상자 명단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정치권 수뇌부와 함께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김어준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김어준은 2024년 12월 10일 로이터 통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직접 증언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후 군용 차량 등이 동원된 체포조가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즉시 피신했으며, 계엄 해제 이후에도 신변 위협을 느껴 약 36시간 동안 은신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로이터에 “내가 죽을 줄 알았다”고 회고하며 “국회가 불과 수 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하고 시민들이 군의 진입을 막아낸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라고 평했다.
유럽 배낭여행지의 거리 호객꾼에서 대안 언론의 선구자로, 나아가 군사 계엄의 표적이 되는 현대사의 격랑을 겪어내고, 현재는 보수, 극우 진영과 대립하고 있는 김어준의 행보는 여전히 한국 정치·미디어 지형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사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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