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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망한 아들네 3년 데리고 살았는데..” 이사 나가던 날 며느리 한마디에 결단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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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어려움에 빠지면 부모는 앞뒤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밉니다. 내 노후가 조금 흔들리더라도 자식이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도움이 길어질수록 고마움은 옅어지고, 어느새 당연한 권리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말순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남편 한상길 씨와 함께 40년 동안 수원 팔달문 시장에서 그릇 가게를 했습니다. 가게를 정리한 뒤로는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34평 아파트에서 연금과 적금 이자로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릇 가게 일은 허리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뚝배기와 접시 상자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고 날랐습니다. 말순 씨는 50대부터 허리 디스크를 앓았고, 상길 씨는 무릎 연골이 다 닳았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외아들 동욱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아들 동욱이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다가 서른여덟에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며느리 미선이와 손자 둘을 데리고 용인의 전셋집에 살며 한동안은 사업이 제법 잘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겨울, 동욱이의 사업이 무너졌습니다. 큰 공사를 맡겼던 건설사가 공사비를 주지 않고 문을 닫은 것이었습니다. 직원들 월급과 자재값을 갚느라 전세 보증금까지 다 날렸습니다.

어느 날 밤 동욱이가 말순 씨 집 현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 아버지. 저희 갈 데가 없어요. 1년만, 딱 1년만 같이 살게 해 주세요.” 말순 씨는 아들의 수척한 얼굴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들네 네 식구가 말순 씨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안방을 제외한 방 두 개를 내주었고, 거실은 손자들 장난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말순 씨는 다시 하루 세끼 여섯 식구의 밥을 지었습니다.

손자들은 할머니 집을 좋아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가 해 주는 떡볶이를 먹고, 저녁이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말순 씨는 몸은 고되었지만 손자들 웃음소리에 그럭저럭 하루를 버텼습니다.

1년이 지나도 아들네는 나갈 기미가 없었습니다. 동욱이는 작은 회사에 다시 취직했지만 빚을 갚느라 월급이 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순 씨 부부는 아들의 신용카드 빚 2천만 원을 대신 갚아 주었고, 손자들 학원비도 절반씩 내 주었습니다.

그사이 상길 씨의 무릎은 더 나빠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상길 씨는 “아들네가 자리 잡으면 하겠다”며 미뤘습니다. 수술비가 아들네 생활비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는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관리비와 식비, 손자들 간식비까지 모두 말순 씨 부부의 연금에서 나갔습니다. 상길 씨는 가끔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보, 이러다 우리 노후 자금 다 바닥나겠소.” 말순 씨는 “그래도 자식이잖아요” 하며 남편을 달랬습니다.

며느리 미선이는 처음에는 미안해하며 부엌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집안일은 점점 말순 씨 몫이 되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와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는 며느리 대신, 허리 아픈 말순 씨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갰습니다.

한번은 말순 씨가 허리가 너무 아파 저녁을 차리지 못한 날이 있었습니다. 퇴근한 며느리는 냉장고를 열어 보더니 “어머님, 오늘 저녁은 없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말순 씨는 아픈 허리를 붙잡고 다시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그날 밤 상길 씨는 아무 말 없이 아내의 허리에 파스를 붙여 주었습니다.

말순 씨는 그 3년 동안 쓴 돈을 작은 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아들 빚 2천만 원, 손자 학원비 1,800만 원, 생활비 월 150만 원씩 3년. 하나하나 더해 보니 9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말순 씨는 그 숫자를 보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다시 일어서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여름, 드디어 동욱이가 다니던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빚도 거의 정리되었다며 아들 내외는 근처에 작은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말순 씨는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제야 아들이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 날짜는 이번 달 초로 정해졌습니다. 말순 씨는 이사 전날 밤늦게까지 손자들 옷을 개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밑반찬을 몇 통이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사 전날 저녁, 상길 씨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섭섭해도 잘된 일이오. 이제 우리도 우리 인생 좀 삽시다.” 말순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텅 비게 될 방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이삿날 아침, 이삿짐 트럭에 짐을 다 실었을 때 며느리가 말순 씨를 거실로 불렀습니다. 며느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어머님, 전세 보증금이 3천만 원 모자라요. 이사 비용도 좀 들었고요. 그동안 저희가 같이 살아 드려서 어머님 아버님 덜 적적하셨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이 집은 나중에 동욱 씨 거니까, 그 돈은 미리 좀 해 주세요.”

말순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3년 동안 생활비 한 푼 받지 않고 먹이고 재운 대가가 “같이 살아 드려서 덜 적적하셨잖아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아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내의 말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말순 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안방에서 수첩 한 권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느리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미선아, 이건 지난 3년 동안 너희 식구를 위해 쓴 돈이다. 9천만 원이 넘는다. 나는 이걸 돌려받겠다고 적은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 네 말을 들으니 꼭 보여 줘야겠구나.”

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말순 씨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이 어차피 동욱이 거라는 말은 틀렸다. 이 집은 너희 시아버지와 내가 40년 동안 그릇 팔아 마련한 우리 노후다. 3천만 원은 해 줄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집에 손 벌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상길 씨도 아내 옆에 섰습니다. “동욱아, 우리는 오늘 은행에 가서 주택연금 상담을 받기로 했다. 이 집은 우리가 살다가 우리 노후를 위해 쓸 거다. 너는 이제 가장이다. 네 식구는 네 힘으로 책임져라.”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엄마,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너무 염치가 없었어요.”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먼저 트럭에 올랐습니다.

이삿짐 트럭이 떠난 뒤, 말순 씨 부부는 텅 빈 방 두 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서운함과 함께 묘한 홀가분함이 밀려왔습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집이 다시 두 사람의 집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날 오후, 부부는 정말로 은행에 가서 주택연금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저녁, 수원 통닭 거리의 오래된 가게에 마주 앉았습니다. 가마솥에 튀긴 옛날 통닭 한 마리와 생맥주 두 잔이 전부인 소박한 저녁상이었습니다. 상길 씨가 잔을 들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둘만을 위해 건배하는 것 같소.” 말순 씨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습니다.

그 주에 상길 씨는 3년 동안 미뤄 온 무릎 수술 날짜도 잡았습니다. “이제는 내 몸부터 챙기겠소.” 말순 씨는 남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일주일 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아버지.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저희 힘으로 해결했어요. 미선이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다음 주에 애들 데리고 인사드리러 갈게요.] 말순 씨는 문자를 남편에게 보여 주며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고전 소설 『옹고집전』의 옹고집은 욕심 많고 인색해 부모와 이웃을 박대하다가 가짜 옹고집에게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나서야 잘못을 깨닫습니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은 그것을 잃어 보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자식을 돕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지만, 끝없는 도움은 자식의 홀로서기를 막기도 합니다. 내 노후를 지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배려입니다. 도움을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부모의 지혜입니다.

올가을 말순 씨 부부는 수원 화성 성곽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방화수류정 너머로 노을이 붉게 물들었고, 성벽 아래 용연 연못에는 단풍 그림자가 고요히 비쳤습니다. 두 사람은 성곽 위에 앉아 해가 다 질 때까지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출처 : ‘옹고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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