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은 흔히 잊히기 쉬운 장기다. 위장이나 간처럼 자주 언급되는 기관도 아니고, 기능의 특성상 자극이 적기 때문에 평소에는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췌장은 인슐린을 포함한 주요 호르몬을 분비하고, 지방 소화를 돕는 소화효소를 생성하는 핵심 기관이다.
이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 바로 췌장염이다. 문제는 이 질환이 단순한 염증에 그치지 않고, 자칫하면 전신 염증, 급성 쇼크, 심하면 췌장 기능의 영구 손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50대 이후에는 음주, 고지방 식단, 대사증후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췌장염 발생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초기 증상이 위염, 담석, 소화불량과 유사해 쉽게 간과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증상들을 겪고 있다면, 단순한 위장 트러블이 아니라 췌장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상복부 중앙에서 시작되는 칼로 베는 듯한 통증
췌장염의 대표 증상은 상복부 중앙에서 시작되는 통증이다. 특히 명치에서 시작되어 양 옆으로 퍼지거나, 등 쪽으로 방사되는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통증은 단순히 ‘아픈’ 수준이 아니라, 환자들이 “칼로 찌르는 듯하다” “안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날카롭고 깊은 것이 특징이다.
췌장염의 통증은 식후 특히 심해지며, 누워 있으면 더 심하고 상체를 앞으로 굽히면 다소 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통증은 췌장 부종이나 괴사, 주위 조직 자극으로 인해 발생하며, 진통제를 복용해도 잘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위장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고, 복부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강한 통증이 반복된다면 췌장을 의심해야 한다.
식사 후 구토를 유발하는 극심한 더부룩함
췌장은 지방을 소화하는 리파아제, 단백질 분해를 위한 트립신 등의 효소를 분비한다. 이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지방과 단백질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위장 전체가 부담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식사 후 복부 팽만감과 구토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섭취한 후에 극심한 더부룩함이나 구토가 반복된다면 이는 위장의 문제라기보다 췌장의 소화 효소 작용이 저하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췌장염에서는 위장이 비정상적으로 더뎌지고, 음식물이 장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 소화 자체가 지연된다. 또한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로 인해 장내 가스가 과도하게 발생하며 복부 팽만감이 심해지고, 속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며칠에서 수주간 반복된다면 위, 담낭이 아닌 췌장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기름지고 밝은 색의 대변이 자주 나온다
췌장은 지방 분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염증이 생기면 지방 흡수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지방변이다. 지방변은 일반적인 대변보다 묽고 기름기가 많으며, 물 위에 뜨고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색깔은 회백색 혹은 노란빛이 도는 밝은 색을 띠기도 한다.
췌장염 환자들은 식사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복부 팽만과 체중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체내 지방 흡수가 저하되어 영양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변은 단순히 변 상태의 변화가 아니라 췌장 기능 저하를 시사하는 명확한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변 상태가 반복된다면 반드시 췌장 기능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
설명되지 않는 체중 감소
췌장염이 반복되면 췌장의 외분비 기능뿐 아니라 인슐린을 포함한 내분비 기능까지 저하된다. 이 경우 체내 대사 효율이 떨어지고, 당 조절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식사량은 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점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복부 불편감으로 식사량이 줄어들거나, 구토와 설사로 인해 체내 흡수가 저하되면 단기간에 3~5kg 이상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는 단순한 다이어트 효과가 아니라, 췌장의 기능 저하로 인한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만성 췌장염의 40% 이상에서 비정상적인 체중 감소가 동반된다는 보고도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췌장염이 생긴다
췌장염은 흔히 음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급성 췌장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과음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음주 이력 없이도 췌장염이 발생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50대 이후에는 담석, 고중성지방혈증,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 질환이 췌장 기능을 침범하면서 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지방 위주의 식습관, 약물 복용, 자가면역 질환 등도 췌장염의 위험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췌장염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특히 복부 증상이 반복되고 대변, 체중, 식욕에 변화가 있다면 연령에 따라 췌장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췌장염은 조기 진단과 생활습관 관리가 핵심이다
췌장염은 자각 증상이 명확하지 않고, 다른 소화기 질환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이 어렵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증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여러 증상이 동시에 겹친다면 단순한 위장 질환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췌장염은 급성인 경우 병원 입원과 금식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만성으로 이어질 경우 췌장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 당뇨, 소화불량, 체중 감소 등 만성 대사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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