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정보의 바다’를 두고 살아간다. 항상 손 안에 있거나, 혹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 바로 스마트폰이다. 조그만 기기 하나로 우리는 세상의 대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직접 발로 뛰어야만 얻을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보가 온라인 네트워크에 흘러다닌다.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 이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놓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의 관심사와 성향에 따른 정보만 주로 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일 아니냐고? 당연한 일은 맞다. 다만 이것이 생각보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해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다룬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한다.
정보의 공급과잉 시대
현대인들이 정보와 소식, 콘텐츠를 접하는 플랫폼은 대부분 인터넷에 기반한다.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뉴스와 콘텐츠는 빠르고 쉽게 퍼진다. 또한, 다양하게 변형되고 재구성되거나 재생산되기도 쉽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는 기존 인쇄 미디어의 경쟁력을 깎아낼 수 있었다.
정보생산자가 한정돼 있던 세상과 달리, 인터넷과 연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정보생산자이자 소비자, 즉 ‘프로슈머(Prosumer)’다. 모든 인간이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퍼뜨릴 수 있게 되면서, 어느 한 개인이 정보를 소비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정보가 생산된다.
정보는 ‘공급과잉’ 상태가 됐고, 소비 속도와 생산 속도의 밸런스는 일찌감치 붕괴됐다.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하나하나의 정보가 갖는 가치와 평균적인 품질이 낮아진 것도 문제가 된다.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섞여서 함께 퍼질 수 있게 됐으니까.
아무튼 이런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정보를 직접 찾아나서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도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치밀한 ‘알고리즘’에 따라,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 성향에 맞는 정보들이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빠르게 배달된다. 그것을 소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보의 바다? No, ‘거품’에 갇힌 것일지도
정보 버블(Information Bubble)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개인이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의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거품(Bubble) 속에 갇힌 것처럼 폐쇄성을 갖고 다른 시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본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아예 접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거품방울 속에 있는 인간은 편안한 느낌을 받기 쉽다. 자신의 신념, 의견과 같거나 비슷한 것들을 위주로 접하며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세계관이 공고해지며 더욱 더 폐쇄적이 된다. 이는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에 비중을 두고, 반대되는 정보는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 성향에 따라 알고리즘이 파악한 뉴스와 콘텐츠가 배달되는 현상. 정보에 대한 균형을 잃고 ‘정보 버블’이 발생하도록 하는 핵심 배경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SNS나 동영상 플랫폼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 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용자 또는 채널을 구독한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용자나 채널을 일부러 팔로우 또는 구독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분 좋은 것에 끌리고, 기분 나쁜 것을 꺼려한다. 굳이 심리적 본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세상의 모든 현상이 나에게 달콤할 수만은 없다는 것, 때로는 ‘씁쓸한 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다. 이미 삶에서 충분히 많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일부러 나와 다른 의견을 찾아보며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든, 불가항력적인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보 버블’에 갇히게 된다.
메아리가 울리는 방, 심화되는 편 가르기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이에 대해 ‘에코 챔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본래 물리학에서 유래한 용어로, ‘소리의 반향 공간’을 의미한다. ‘메아리’라는 뜻의 에코(Echo)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떤 공간 내에서 소리가 벽이나 다른 물체의 표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를 미디어와 사회학에 적용할 경우, 특정한 의견이나 정보가 반복적으로 전파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신이 서있는 ‘버블’ 안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엇비슷한 톤을 가진 정보와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최소화되는 현상,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과 신념이 강화되는 현상을 부른다.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확고하게 다진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사회는 더욱 경직된다. 서로 다른 편으로 갈라져 분열되고 다투기 쉬워진다.
타협하지 않는 개인, 심화되는 편 가르기,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런 환경으로 인해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편향된 시각, 정신건강 문제를 부른다
정보 버블과 에코 챔버의 반복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보고 들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살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와 더불어 살다보면 서로 말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자신만의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의 가치관 같은 묵직한 주제까지 갈 필요도 없다. 편향에 물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연히 관계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 정보의 편향은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옳은 줄 알았던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그로 인한 혼란이나 좌절, 정서적 고통,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게 되는 스트레스, 자신이 생각해본 적 없던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불확실성, 그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까지.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버블’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의지
정보 버블으로부터 기인하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창구를 다양하게 가져가면 된다. 2021년 수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최소 5곳의 서로 다른 출처’에서 정보를 소비하면 해당 주제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보일 가능성이 50% 더 높게 나타났다.
귀찮은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다.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한 일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다양한 생각을 지닌 조직과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이다. 본인이 정보 버블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그 어떤 해결책이든 무용지물이다. 반대로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해결책은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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