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건강에 해로울까? 글쎄, 단순히 이렇게만 묻는다면 답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무엇이든 과도하면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는 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따라서 ‘과도한 외로움’은 건강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심한 스트레스는 명백한 건강 문제다.
만성 질환자들이 느끼는 외로움
최근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2024년 2월 호주 시드니 대학 연구팀이 수행했던 ‘외로움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에서는 외로움을 가리켜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 경험’으로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외로움이라 하면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면 그 자신이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식이다. 물론 실제로 외로움을 겪는 것이 개인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사회적 요인이 얽혀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유로 인해 외로움과 그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시드니 대학 연구팀은 특히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만성 질환은 본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생기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났거나 유전적 요인, 불가항력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스스로 위축되면서 외로움 느껴
연구팀은 2020년 1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호주 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19~83세 범위의 만성 질환자 40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앓고 있는 만성 질환의 종류도 만성 피로, 골관절염, 만성 요통, 다발성 경화증, 만성 폐쇄성 폐질환, 섬유근육통, 우울증 등으로 다양했다.
연구팀이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환자들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감추려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나는 질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의) 친구나 동료로 바람직하지 않다”라거나 “내 질환을 감췄기 때문에 솔직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또한, 그들은 부득이하게 자신의 만성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도, 가급적 축소해서 말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만성 질환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이 부담스러움을 느껴 관계가 끊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만성 질환자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한편, 연구에 참가한 만성 질환자들은 “삶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질환을 겪지 않는 주위의 동료들이 더 많은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거나,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굵직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만성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의미한 경험을 하는 데 제약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자신들은 제자리에 멈춰서 늘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차 자신과 멀어지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을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만성 질환자들은 자신이 ‘삶의 구경꾼과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은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의 입장과 같다는 것이다. 이 또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연구팀은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주제적 분석(Thematic Analysis)을 실시했으며, 반성적 접근 방식(Reflexive Approach)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내용에서 의미 있는 주제를 찾아 분석하고, 자신들의 판단 과정을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성찰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는 40명이라는 소규모의 참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깊이 면에서는 충분히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사회에도 만성 질환을 앓으면서 주위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계에서 드러나는 각종 만성 질환 유병률을 보면, 누구든 주위에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연구팀은 사회에 흔히 존재하는 만성 질환자들이, ‘솔직하고 의미 있는 사회적 유대감이 부족한 상황’에 종종 노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더라도, 그들 역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 따라서 이에 대한 개인의 인식부터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까지를 포괄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만성 질환 여부와 별개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연관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두 가지를 짚었다. 외로움이 전 세계적으로 시급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적 과제 중 하나라는 점, 기존의 외로움 관련 연구가 어느 단일 분야에서의 접근 방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앞서 연구팀이 이야기한 포인트는 만성 질환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이지만, 사실 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과 비슷한 개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지만,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부족하다는 데서 오는 외로움, 혹은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문제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문제가 된다.
만성 질환 자체는 외로움의 직접적 원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이 어떤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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