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바퀴벌레 때문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 많다. 지구상에서 바퀴벌레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상상은 누구나 하기 마련인데, 과학적으로 볼 때 생태계에는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바퀴벌레는 엄연히 해충이지만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이 적잖다. 그중 하나가 유기물 분해다. 바퀴벌레는 낙엽이나 음식물 쓰레기, 동물의 사체, 배설물 등 유기물을 먹어치워 분해한다. 바퀴벌레가 일순간 사라지면 유기물 분해 속도가 느려지고, 쓰레기가 더 오래 쌓일 수 있다. 이는 균류, 박테리아, 다른 곤충에 부담을 전가해 생태계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바퀴벌레의 유기물 분해 능력은 다른 곤충에 비해 탁월하다.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 생물학자 스리니 캄밤파티 교수 연구팀은 바퀴벌레가 부패한 유기물 속의 질소를 분해해 토양에 방출, 식물에 질소를 공급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바퀴벌레가 사라지면 질소 순환이 둔화돼 숲과 초원 등 생태계 건강이 약화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먹이사슬도 영향을 받는다. 바퀴벌레는 조류와 개구리 등 양서류, 일부 포유류, 절지동물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기생벌은 바퀴벌레 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다른 먹이를 찾아야 하고, 개체 수가 감소할 수 있다. 특히 멸종위기에 몰린 아마존 열대우림 및 호주의 일부 조류는 바퀴벌레를 주로 사냥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또한 바퀴벌레의 배설물은 일부 토양에 사는 미생물의 성장에 긍정적이다. 이는 간접적으로 식물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장기적으로 토양비옥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굴을 파는 일부 바퀴벌레는 토양의 통기성 및 배수성을 끌어올려 식물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과학자들 입장에서도 바퀴벌레가 사라지면 곤란하다. 바퀴벌레는 약물 및 오염물질에 대한 내성이나 신경계 구조 연구에 동원된다. 최근 로봇공학 및 생명공학자들은 바퀴벌레의 끈질긴 생명력을 중점 연구하는 추세다.
일본 오사카대학교와 인도네시아 디포네고로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올해 3월 바퀴벌레에 전극을 심어 사이보그로 만든 로봇을 공개했다. 로봇을 이용한 장애물 통과 실험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만큼, 향후 재난 현장의 요구조자 탐색에 활용 가능할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했다.

바퀴벌레의 유용성에 대해 스리니 교수는 “바퀴벌레가 싹 사라지면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음식 오염, 질병 유발 등 문제가 줄면서 사람들은 쾌적함을 느낄 것”이라면서도 “이런 효과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이며, 바퀴벌레의 공백으로 생긴 생태계 불균형은 결국 파리나 진드기, 흰개미 등 다른 해충의 대량 번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약 4000종에 달하는 바퀴벌레속의 생물 다양성 자체가 생태계의 회복력 유지에 분명히 기여한다”며 “바퀴벌레는 물론 모기나 파리 등 해충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생태계는 분명한 영향을 받게 되고 인간의 생활도 변화를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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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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