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도 감정 기복을 겪는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파충류가 포유류처럼 인지력과 감정을 가졌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번 성과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영국 링컨대학교 동물행동학자 올리버 버먼 교수 연구팀은 16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의 성과는 국제 학술지 동물 인지(Animal Cognition) 최신호에 먼저 실렸다.
연구팀은 파충류가 감정이나 인지능력을 가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실시했다. 전 세계 바다에 분포하는 바다거북의 일종 붉은바다거북 15마리를 모은 연구팀은 포유류와 조류에 적용하는 인지 편향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가로 930㎜, 세로 970㎜에 높이가 낮은 사각 펜스 안에 먹이가 들거나 들지 않은 접시 5개를 207㎜ 간격으로 배치하고 거북이들에게 먹이가 든 접시를 학습하게 했다. 각 접시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는 400㎜였다. 이후 거북이들이 학습하지 않은 곳에 접시를 놓고 거북이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일부 거북이는 미지의 접시에 먹이가 있다고 확신한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또 다른 개체들은 어차피 먹이가 없다고 비관한 듯 느릿느릿 움직이거나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거북이들에게 미지의 물체를 보여주고 불안 행동을 살펴봤다. 얼마나 고개를 내밀고 접근하는지 바디 랭귀지 역시 파악했다. 실험이 이뤄진 펜스의 색상이나 바닥재 소재도 바꿔가며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도 알아봤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각 거북이가 낙관적 혹은 비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고 판단했다. 애매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한 개체는 새로운 환경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불안 행동이 적었다. 연구팀은 거북이의 감정 기복과 불안 행동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올리버 교수는 “이 같은 행동으로 미뤄 붉은바다거북도 포유류나 조류와 마찬가지로 사건과 관계없이 한동안 지속되는 심리상태가 존재할 것”이라며 “파충류를 대상으로 인지 편향 테스트를 적용해 기분의 존재를 시사한 첫 사례”라고 전했다.

교수는 “우리 실험은 파충류가 주변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는 큰 걸음이기도 하다”며 “기존에 감정이 없다고 여긴 거북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기분을 상황에 따라 느끼는 듯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파충류에게도 감정 기복에 따른 마음의 물결이 있다면 포유류 및 조류와 공통 조상이 이미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붉은바다거북이 독자적으로 진화한 능력이라면 어느 단계에서 감정이 생겨났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올리버 교수는 “반려동물 파충류가 증가하는 지금, 사육 환경에 대한 그간의 가이드라인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며 “특히 동물 복지 측면에서 향후 인간이 파충류를 대하는 마음이나 자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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