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인 트로이 전쟁의 증거가 튀르키예에서 발견됐다. 신화로 여겨져 온 트로이 전쟁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물증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역사학자 뤼스템 아슬란 교수 연구팀은 18일 조사 보고서를 내고 약 3500년 전 투석용 돌과 화살촉 수천 개, 불탄 건물 잔해, 서둘러 매장된 인골 등 트로이 전쟁의 새로운 흔적을 소개했다.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트로이 전쟁은 도시국가 트로이와 아카이아 연합군의 치열한 전투를 말한다. 신과 인간이 모두 참여한 그리스 신화의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그 무대는 튀르키예 북서부 다르다넬스 해협을 따라 조성된 고대 도시 트로이다.

철벽 방어를 자랑하던 트로이는 성벽 밖에 도착한 거대한 목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설마 병사들이 숨었다고 의심하지 않은 트로이는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다가 함락된다.
당초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이 신화 속 이야기라고 봤다. 그러던 1870년대 트로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많은 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일부 학자들은 청동기시대 말기 진짜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다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트로이 유적을 면밀하게 재조사했다. 특히 청동기시대 말기 파괴층(destruction layer)에 초점을 맞췄다. 파괴층이란 화재나 전쟁, 지진 등에 의해 갑자기 손상을 입은 지층을 말한다.

아슬란 교수는 “특히 주목할 것은 트로이를 지키는 굳건한 외벽 근처에서 출토된 수십 개의 석재 탄환”이라며 “매끈하게 가공해 공기저항을 줄인 돌을 탄환처럼 가죽 투석구로 날리면 멀리 떨어진 적의 두개골을 부술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석재 탄환은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600~1200년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스 역사가들이 기록한 트로이 전쟁 시기(기원전 1184년경)와 대략 일치한다. 석재 탄환과 함께 나온 불에 탄 건물, 부서진 무기, 급히 매장된 인골은 트로이가 천천히 쇠퇴한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음을 암시한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트로이 유적의 고고학적 조사는 1871년 독일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면서 본격화됐다. 물론 슐리만은 수많은 유구를 파괴해 버렸지만 트로이가 신화가 아닌 실제 도시임을 보여준 점은 지금도 높이 평가된다.

아슬란 교수는 “고대 도시 트로이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로에 자리했고, 다르다넬스 해협과 가까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며 “풍부한 자원과 중요한 입지로 다른 나라들이 호시탐탐 노렸기 때문에 견고한 성벽과 석조 탑이 축조됐다”고 설명했다.
교수는 “기원전 1500~1200년 지중해 세계 전체에 전쟁이 만연했고 문명이 붕괴했다”며 “이런 영향으로 트로이에서도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학계는 이번 발견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가 신화가 아닌 사실에 기반한 창작물임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고 주목했다. 트로이 목마 자체에 대한 물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이번 발견으로 트로이 전쟁의 양상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자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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