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은 병이지, 전염병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울감이 사회적·정서적 관계를 통해 퍼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대학의 사회연결망 연구에서는 가까운 사람 중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가 있을 경우, 본인도 그 감정을 비슷하게 느끼게 될 확률이 무려 93%에 달했다. 이른바 ‘감정의 전염’ 현상이다. 이는 공감과 미러뉴런 활동으로 설명되며, 특히 애착 관계에 있는 연인, 부부, 가족 간에서는 정서가 쉽게 공유되고 흡수되기 때문에 우울감도 전파될 수 있다.

키스, 침, 타액을 통한 미생물 전파가 뇌와 감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이론은 미생물과 정신 건강의 관계다. 우리의 장내에는 약 100조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미생물군은 뇌와 신경계에 신호를 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장-뇌 축’이라 부른다.

문제는 타액에도 수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에 따르면 연인 간 키스를 할 경우 약 8000만 마리 이상의 박테리아가 교환되며, 상대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일부 전이될 수 있다. 이런 미생물의 변화는 세로토닌,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궁극적으로 기분과 우울감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감 있는 연인과의 밀접한 접촉은 뇌 화학물질에도 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이 힘든 상태’가 아니라, 신경화학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특히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기능이 저하되며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호르몬 시스템은 정서적 유대에 따라 동기화되기도 한다. 연인 간 자주 껴안거나 입맞춤을 나누는 관계에서는 ‘옥시토신’이라 불리는 신경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진다.
문제는 이 호르몬이 행복감을 유도하는 동시에, 상대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작용도 한다는 점이다. 상대가 우울할 경우, 나도 똑같은 스트레스를 느끼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커플이나 룸메이트 사이에서 ‘우울감 동기화’ 빈번하게 나타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 연구팀은 100쌍 이상의 커플을 1년 이상 추적 관찰한 결과, 한쪽이 우울감을 경험할 경우 일정 시간 이후 상대방도 비슷한 정서 상태를 겪을 확률이 70%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이를 ‘감정적 동조 현상’이라 부르며, 사랑이나 친밀감이 깊을수록 감정이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키스나 스킨십 등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친밀도가 높아질 경우 이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단순히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 접촉과 정서 교류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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