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잡초, 한식이 바꾼 운명”…유럽 해조류 혐오에서 세계적 유행으로
유럽, 해조류를 ‘바다의 잡초’로 바라본 오랜 시간
유럽 대륙에서는 수백 년 이상 해조류를 식재료로 인식하지 않았다. 바닷가에 밀려온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는 곧잘 버려지거나, 가축의 사료 또는 퇴비 정도로만 활용됐다.
해조류는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수족관 냄새가 나는 바다의 잡초”로 여겨졌고, 식탁에 오르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프랑스 일부 지방이나, 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일부 골짜기 마을에서만 간헐적으로 해조류를 시도했던 역사가 있을 뿐, 전통적인 유럽 요리 문화에서는 해조류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바뀌기 시작한 인식, 환경 위기가 계기
유럽에서 해조류에 대해 관심이 싹튼 것은 놀랍게도 “먹는 것”이 아니라 “환경 문제” 때문이었다. 육상 식물보다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5배 이상 많고, 양식 자체가 환경에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유럽 연안국가들은 바다를 활용한 친환경 정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북해와 대서양 연안 국가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조류 양식에 대한 연구와 산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주목받은 부분은 또 있었다. 호주·뉴질랜드 등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조류를 소 사료에 소량 첨가하면 반추 동물의 메탄가스 배출량을 약 95%까지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 농축산업계와 식품 공급망에서도 갑작스러운 해조류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해양목초 사료의 친환경성은 EU 탄소중립, 축산업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제2의 녹색혁명으로 주목받았다.

‘김’, ‘미역’, ‘다시마’…한식에서 발견한 해조류의 가능성
이 획기적 반전의 중심에는 변화의 롤모델이 필요했다. 그때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해조류를 ‘음식’으로 즐기고 있었던 대한민국이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김, 미역, 다시마, 감태, 매생이 등 익숙한 해조류를 매일 식탁에 올리고, 식품, 반찬, 간식, 심지어 음료 등으로 활용하는 풍부한 전통이 있었다.
한국의 ‘김밥’과 ‘김’은 2010년대 한류 붐과 함께 유럽 내 한식 붐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지 슈퍼마켓에 ‘Seaweed Snack’이라는 이름으로 김을 포장해 팔기 시작하고, 한류 열풍 덕분에 현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음식 문화 자체가 일종의 멋과 건강식, 트렌디함을 상징하게 됐다.
유럽 각국 대형 식품 유통체인에는 한국산 김, 미역, 다시마, 심지어 ‘매생이 분말’까지 수입되어 팔리기 시작했다.

영양학적 가치, 유럽 학계·식품업계 모두 주목
유럽이 해조류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된 데는 영양 전문가와 식품 과학자의 분석 결과도 큰 역할을 했다. 해조류에는 미네랄, 칼슘, 식이섬유, 항산화물질,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현대인에게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한 번에 보충할 수 있다.
동물성 원료를 피하는 ‘비건’ 문화까지 더해지며, 해조류가 다시마국, 김치, 김밥, 스시, 샐러드, 스낵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기는 웰빙 식재료, 슈퍼푸드,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슈퍼푸드, 친환경 신소재…유럽 시장 해조류 열풍 본격화
유럽 시장에서 해조류는 이제 슈퍼푸드, 친환경 신소재, 동물성 단백질 대체품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한국에서 영감을 얻은 ‘김스낵’ ‘미역 칩’ ‘다시마 파스타’ 등 신제품이 출시되고, 현지 스타트업이 해조류를 원료로 한 친환경 포장재 확장, 바이오플라스틱,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김을 얇게 구워 소금과 오일을 뿌린 ‘플뢰르 드 김(Fleur de Kim)’,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해안에서는 현지 미역·다시마와 한국 김을 혼합해 파스타, 비건 마요네즈 원료로 사용하는 스타트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에서는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조식품, 스무디, 에너지바까지 등장하면서 그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해조류 외연 확장…해양 바이오산업, 지속가능 미래의 핵심
식품을 넘어, 유럽에서는 해조류가 다양한 분야로 활용도가 확장되고 있다. 해조류는 바이오연료와 플라스틱 대체 신소재 연구의 주역이 됐고, 대기 탄소 흡수와 해양 생태 복원 등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총아로 인식되고 있다. 바이오매스 전환 기술, 해조류 기반 바이오연료, 에너지 저장·순환 등 첨단 기술 기업도 급팽창 중이다.
스페인, 영국, 스웨덴 등 주요 국가는 해조류 산업에 대규모 육성 예산을 투입했고, 공동 연구 프로젝트와 민관 펀드가 연달아 조성되고 있다. 북유럽 지역 항구 주변에는 해조류 전용 양식장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 및 사회 혁신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불과 10년 전 ‘잡초’에서 미래 핵심 자원으로…한국의 문화적 영향력 절정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인들은 해조류를 바다에 떠다니는 잡초로 폄하하며 심지어 인근 바닷가 환경 오염의 상징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김밥 한 줄을 통해 한국의 해조류 식문화를 접하게 된 유럽 청년 세대, 바이오업계가 “놓칠 수 없는 미래 자원”이라고 인정하며 유럽 식문화와 산업 속 중심 소재로 해조류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유럽의 대형마트, 유기농 매장에서는 김, 미역, 감태, 다시마, 김스낵, 해조류 샐러드, 해조류 주스, 매생이 캡슐까지 각종 한국식 해조류 식품이 팔리고 있다. 2020년대 국제식품박람회에서는 ‘K-SEAWEED’라는 테마관이 등장해 기존 참치·연어류 못지 않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 해조류 산업은 이제 세계인들의 건강, 환경, 미래소비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문화·기술혁신의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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