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수함 좌초부터 공비 침투 작전 개요
1996년 9월 13일 북한 함경남도 신포기지에서 출발한 상어급 잠수함(360t급)은 14일 동해를 넘어 강릉 앞바다에 도착했다.
침투 목적은 지역 불안 조성으로, 정찰조 5명 선발 후 본대 26명(정찰국 해상처 소속 무장공비)이 오리발·산소통 착용해 상륙했다. 그러나 접선 실패로 잠수함이 파도에 휩쓸려 좌초되자, 함장은 자폭 명령 내렸다.

국군·경찰 추격전, 26명 사살과 이광수 생포
공비들은 AK 소총·권총·수류탄 휴대, 산악 지대로 도주하며 저항했다. 국군 68사단·특전사·경찰 합동 추격으로 17~18일 교전 중 25명 사살됐고, 민간인 4명·군인·경찰 12명 전사했다.
9월 18일 오후 4시 40분, 강릉 강동면 모전리 사슴농장 부부가 이광수를 발견하고 시간을 끌며 경찰 신고, 출동 경관이 권총 꺼내려던 이광수를 제압해 생포했다.

광어회 한 점에 무너진 ‘최정예 공비’ 신념
생포 직후 안기부 수사관들이 “먹고 싶은 거 있냐”고 회유하자, 이광수는 “광어회”를 요구했다. 북한에서 최고급·희귀 음식인 광어는 간부 특권이었으나, 남한 80년대 양식 성공으로 길거리 횟집에 넘쳐났다.
수사관이 10분 만에 동네 횟집에서 사와 내놓자, 이광수는 충격으로 “남조선이 이렇게 부유한가” 하며 30년 주입된 반남 사상이 와해, 즉시 정보 토해내기 시작했다.

전향 후 이광수의 새 삶과 사건 교훈
이광수는 적극 협조로 침투 경로·북한 내부 정보 제공, 1997년 해군 입대 후 군무원으로 복무하며 대한민국 시민이 됐다. 현재 60세, 강릉에서 평범한 삶 살고 있다.
사건은 남북 심리전의 상징으로, 공비 최후 1인이 총알 아닌 ‘광어회’에 무너진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국민적 트라우마와 남북 대치사 상징
강릉 사건은 IMF 직전 국민 공포 조성, 13명 순국자 추모와 함께 보안 강화 계기 됐다. 이광수 생존은 북한 선전에도 악재, “혁명전사”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남았다.
오늘날에도 동해 도발 방지를 상기시키는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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