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연구로 밝혀진 ‘기 빨리는 이유, 보이지 않는 감정 전염’ 메커니즘
스트레스가 전염된다
직장에서 유난히 긴장하는 동료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일명 ‘기 빨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는 단순한 심리적 공감이 아닐 수 있다. 최근 국내외 연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배출하는 땀 속 화학 신호가 주변 사람의 뇌와 면역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스트레스와 면역체계의 긴밀한 연결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시상하부가 교감신경계를 통해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하도록 자극한다. 이로 인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며 호흡이 가빠지는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난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팀이 30년간의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뇌에서 내려오는 교감신경 섬유가 골수, 흉선, 비장, 림프절 등 면역 조직에 직접 연결되어 백혈구 수용체에 결합하는 다양한 물질을 방출함으로써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됐다.
땀 속 ‘케모시그널’의 발견
그렇다면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까? 답은 ‘케모시그널’이라 불리는 화학 신호에 있다. 인간의 체취에는 건강, 유전적 정체성, 면역 체계, 감정 상태에 관한 화학 신호가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건 세민 교수팀은 12명의 남성에게 공포와 행복을 유발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땀을 수집한 후, 36명의 여성에게 이를 맡게 했다. 놀랍게도 여성들은 의식적으로 냄새를 구분하지 못했지만, 공포 땀을 맡을 때는 경계 상태가 강화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반응을 보였으며, 행복 땀을 맡을 때는 긍정적 감정이 전염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독일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시험 직전 수집한 ‘불안 땀’과 운동 중 수집한 ‘통제 땀’을 비교했다. 뇌파 분석 결과, 불안 땀은 거의 무취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신호로 처리되었으며, 특히 여성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직접적인 반응
PBS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처음으로 스카이다이빙을 한 후 채취한 땀을 다른 사람이 맡았을 때, 감정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인 편도체가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런닝머신 운동 후의 땀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의 베티나 파우제 교수 연구팀은 스트레스 케모시그널이 공감과 관련된 뇌 영역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경영상 연구에서는 불안 땀이 주로 편도체에서 처리되며, 냄새는 논리적 필터를 거치지 않고 감정 회로에 직접 접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도 전에 케모시그널에 반응하게 된다.
사회적 판단과 행동의 변화
미국 몬넬 화학감각센터의 파멜라 달튼 박사팀은 44명의 여성 기증자로부터 운동 땀, 스트레스 땀을 수집하여 120명의 평가자에게 제공했다. 남성 평가자들은 스트레스 땀을 맡았을 때 영상 속 여성들을 덜 자신감 있고, 덜 신뢰할 만하며, 덜 유능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케모시그널 불안 신호가 여성의 신뢰와 위험 감수 의사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 상태는 지각 문턱 이하에서 겨드랑이 땀에서 유래한 케모시그널을 통해 전달되며, 특히 여성에서 발신자의 불안이 수용자에게 전염되었다.
면역체계에 대한 직접적 영향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의 스콧 루소 박사 연구팀이 ‘Nature’에 발표한 연구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면역체계를 활성화하여 뇌를 변화시키고 행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스트레스는 신체 말초에서 생성되는 염증성 면역 세포가 뇌를 침범하여 사회적 행동 같은 우울증 증상에 기여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시 뇌의 특정 영역들이 서로 다른 면역 세포 그룹에 신호를 보내 신체 전체로 재배치하도록 하며, 이는 자가면역 및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크게 변화시킨다. 필립 스위르스키 박사는 “급성 스트레스 중에는 백혈구 생산의 큰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백혈구 분포와 기능에는 엄청난 변화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만성 스트레스는 면역 기능을 조절 장애시키거나 억제한다. 장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는데, 이는 사이토카인과 다른 면역 신호의 생산을 억제하여 감염에 대한 효과적인 반응 능력을 감소시킨다. 만성 염증은 활성산소종 생산을 증가시켜 뉴런과 뇌의 다른 세포를 손상시키며, 이러한 산화 스트레스는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발병의 주요 요인이다.

국내 연구: 땀 속 신경펩타이드 측정
국내에서도 비침습적 방법으로 스트레스 시스템을 평가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땀 패치를 통해 수집한 땀에서 NPY, VIP, SP, CGRP 같은 신경펩타이드를 측정할 수 있으며, 이들이 우울증 이력이 있는 환자의 혈장 수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는 심혈관계와 면역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부교감신경계는 면역계에 항염증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는 땀, 타액 수집 및 심박 변이도 측정과 같은 비침습적 방법을 통해 신경면역 상호작용을 평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별과 임신에 따른 차이
흥미롭게도 케모시그널에 대한 반응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냄새에 더 민감하고 감정 읽기에 능숙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케모시그널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과 스위스 공동 연구팀은 임신부들이 불안 케모시그널 처리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임신 3기 여성은 비임신 여성에 비해 불안 땀에 대한 반응이 약화되었다. 연구진은 이것이 임신 중 취약한 시기에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화학적 대화
우리는 언어나 신체 언어뿐만 아니라 체취를 통해서도 소통하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배출되는 땀 속 화학 신호는 주변 사람의 뇌를 활성화시키고, 감정을 전염시키며, 사회적 판단을 변화시키고, 심지어 면역체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순히 심리적 공감이 아니라 생물학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실제 현상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트레스는 화학 신호를 통해 사람들 사이를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스트레스 관리가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웰빙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울증, 불안 장애, 신경퇴행성 질환의 병태생리를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진단 및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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