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후손의 재산 상속과 환수의 한계

매국노 이완용이 생전에 보유했던 토지는 여의도 면적의 약 일곱 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그는 해방 직전 자신의 부동산 중 95%를 미리 매각하여 현금화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렇게 확보된 거액의 현금은 아들인 이항구에게 고스란히 상속되어 후손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아들 이항구는 부친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백작 작위를 그대로 물려받아 일본 귀족 사회에 편입됐다. 그는 일본에서 귀족원 의원을 지내며 부친의 뒤를 이어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지속했다. 이완용 일가는 일제의 비호 아래 권력과 부를 동시에 거머쥐며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는 삶을 영위했다.

세월이 흐른 1992년 이완용의 증손자인 이윤형은 대한민국 국가를 상대로 충격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북아현동에 위치한 약 700평 규모의 땅이 증조부 이완용의 소유였다며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대중은 친일파 후손의 뻔뻔한 요구에 경악했으나 법원은 놀랍게도 후손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송에서 승소한 이완용의 후손들은 해당 토지를 즉시 매각하여 약 30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었다.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쥔 이들은 곧바로 캐나다로 이주하여 국내의 따가운 시선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가 재산을 환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적으로 돌려주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국민적 공분이 거세지자 뒤늦게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과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재산이 현금화되거나 제3자에게 넘어가 환수 작업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실제로 이완용이 소유했던 방대한 토지 중 국가가 환수에 성공한 비율은 고작 0.05%에 불과했다.
이완용의 치밀한 재산 은닉과 해방 이후의 미온적인 대처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0.05%라는 수치는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로 남았다. 후손들은 조상의 매국 행위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여전히 풍족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완용 후손들의 삶은 매국의 대가로 얻은 부를 지키며 해외로 도피하는 비겁한 경로를 택했다. 환수되지 못한 99.95%의 재산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그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는 이 뼈아픈 기록을 기억하며 진정한 과거사 청산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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