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12월, 강릉발 서울행 비행기 한 대가 통째로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50명 중 11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어요.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RFA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69년 12월 11일 — 강릉발 서울행 YS-11기, 손덕 비행장 강제 착륙
1969년 12월 11일,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 국내선 여객기가 승객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조창희에 의해 강제 납치돼 함경남도 평양 손덕 비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한국 민항기 사상 가장 충격적인 납북 사건입니다.

탑승자 51명 — 승객 47 + 승무원 4
탑승자는 총 51명이었습니다. 승객 47명, 승무원 4명. 이 중 납치범인 조창희를 빼면 피해자는 정확히 50명. 당시 한국 사회에서 ‘민항기까지’ 라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66일 후 — 39명만 판문점 통해 송환
북한은 66일이 지난 1970년 2월 14일에야 50명 중 39명만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습니다. 나머지 11명은 그대로 북한에 억류된 상태로 남았습니다. 39명도 ‘세뇌’를 거친 뒤에 풀려났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미귀환 11명 — 조종사·승무원 4명 + 승객 7명
돌아오지 못한 11명에는 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승무원 성경희·정경숙, 그리고 승객 7명이 포함됐습니다. 영동방송(현 강원MBC) PD 황원과 기자 김봉주 등 지식인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32년 후 가족 상봉 — 성경희, 딸을 못 알아봤다
2001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승무원 성경희가 32년 만에 딸과 만났습니다. 딸은 어머니를 즉시 알아봤지만, 어머니는 성장한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11명은 북한에서 강제 결혼을 당한 채 살았다는 증언이 함께 나왔습니다.
왜 56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이 무거울까요?
11명은 ‘국가가 끝까지 데려오지 못한 우리 국민’으로 남았습니다. 한국 외교사가 가장 오래 끌고 있는 미해결 사안 중 하나이며, 매년 12월 11일 가족들의 송환 요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32년 만에도 딸을 못 알아본 그 어머니, 그게 분단이 한 가족에게 새기는 가장 무거운 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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