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해군 장교들이 떠올린 이순신
1905년 쓰시마 해전을 앞둔 일본 해군 소위 가와다 이사오는 러시아 발트함대와 싸우기 직전, 조선 수군 제독 이순신을 떠올렸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소설 형식의 회고에서 “세계 제1의 해장 이순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으며, 이순신의 인격·전술·발명·통제술·지모·용기 등 칭찬하지 않을 요소가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전투 직전 고통과 공포를 견디기 위해 마음속으로 “순신, 순신”을 부르며 용기를 끌어올렸다고 묘사할 정도로, 이순신은 일본 해군 장교에게도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의 이순신 참배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에는 정작 조선에서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진해에 주둔한 일본 해군은 매년 통영 충렬사를 찾아 이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조선인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1915년 ‘이순신전’에서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 인민이 이순신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는데, 같은 시기 일본 해군이 오히려 이순신을 ‘패전의 교훈’으로 기려 왔다는 사실은 상징적입니다. 침략국 해군이, 300년 전 자신들을 격파한 적군 장수를 매년 기리는 장면은 오늘날 봐도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풍경입니다.
![커버스토리]일본 참관은 한·미·일 군사동맹? - 주간경향](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6/CP-2025-0398/image-67fe8bf6-4e42-48fa-816c-e81898ee24fe.jpeg)
일본이 만든 ‘조선 이순신전’과 해군 교재
근대 일본에서 이순신을 다룬 첫 전기물 가운데 하나가 1892년 출간된 ‘조선 이순신전’입니다. 저자 세키 고세이는 조선의 ‘징비록’ 등 자료를 참고해 이순신의 생애와 전투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제국 해군이 임진·정유 두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세계 강국과 경쟁하려면 해군력을 진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02년 해군대학 교재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에는 이순신의 인품과 전략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저자인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이순신이 13척의 선대로 조류를 활용해 포화를 집중시키고, 전선 제조법·진형·군략·전술까지 체계적으로 개량한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쓰시마 해전과 이순신 전술 연구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의 이른바 ‘T자 전술’은, 적함대의 진로를 가로막아 집중 사격을 가하는 형태로, 이순신의 학익진 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평가됩니다. 다만 도고 본인이 공개적으로 이순신이나 학익진을 언급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도고가 이순신을 영국 넬슨보다 훌륭한 군신이라고 말했다”는 1960년대 잡지 기사는 있지만, 사료로 검증되진 않은 일종의 전후 전설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해군 교육 과정에서 이순신의 전투 사례가 ‘패전 교훈’이자 전술 연구 대상으로 다뤄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패전 이후 일본 대중문화 속 이순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역사·소설계에서도 이순신은 꾸준히 중요한 인물로 다뤄졌습니다. 일본 국민작가로 불리는 시바 료타로는 소설 ‘언덕 위의 구름’ 등에서 이순신을 “병사를 거느리는 재능, 전술 능력, 충성심과 용기를 갖춘,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군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교과서에서도 임진왜란(일본식 표기론 임진·정유 전쟁)을 서술할 때 대부분 이순신을 언급하고, 일본 수군의 패배와 조선 수군의 활약을 부정하지 않는 서술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는 패전 이후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고 교훈을 찾는 과정에서, 이순신을 ‘적이지만 배워야 할 인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이순신을 통해 본 교훈
일본인도 존경하는 장군이니 더 자랑스럽다는 식의 감상보다, 적의 전략을 집요하게 분석해 교훈으로 삼은 일본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순신을 연구해 “바다에서 패배하면 육군도 고립되고, 국가 존망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반복 확인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지금도 주변국 전략과 역량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데 충분히 치밀한가,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다시 ‘강대국 각축의 무대’가 되는 상황에서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한반도는 과거처럼 중국·일본·서구 세력이 교차하는 장이 되었고, 남북 분단과 북한 핵이라는 요인까지 더해져 당시보다 더 복잡한 안보 환경을 맞고 있습니다.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은 영웅 숭배를 넘어,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략적 사고와 냉정한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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