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 소식에 마음이 좀
가라앉았을 것이다.
미와 아키히로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황야의 마녀,
‘모노노케 히메’ 늑대신 모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 말이다.
소속사 오피스 미와는 지난 28일,
고인이 6월 20일 오전 9시 30분
노환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1. 미와 아키히로,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실 한국에서는 ‘성우’로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이 사람의 인생 중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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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루야마 아키히로 (아명 신고) ✓출생 : 1935년 나가사키 ✓데뷔 : 1952년, 16세 샹송 가수 ✓직업 : 가수·배우·연출가·성우·작가 ✓별세 : 2026년 6월 20일 (향년 91세) |
가수, 배우, 연출가, 방송인,
성우에 작가까지.
직함만 나열해도 숨이 찬다.
말 그대로 전방위 예술가였다.
1957년 프랑스 샹송을 번안한
‘메케메케’로 이름을 알렸고,
1965년 자작곡 ‘요이토마케의 노래’로
일본 대중음악사에 이름을 새겼다.
이 곡, 그냥 히트곡이 아니다.
노동하는 어머니의 삶과 존엄을
정면으로 노래한 곡인데,
2012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다시 불려 온 일본을 울렸다.
2.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한 그 목소리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성우로서의 미와 아키히로 이야기.
1997년 ‘모노노케 히메’의 모로,
200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황야의 마녀. 두 캐릭터 모두
목소리만으로 화면을 압도했다.
특히 모로 캐스팅 뒷이야기가
소름 돋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주문을 했다고 한다.
“모성과 잔인함, 체념을
동시에 표현해 주세요.”
이걸 한 목소리로 하라니.
미와 아키히로가 연기한 ‘하울의 움직이는성’ 마녀
미와 본인도 요구가 하도 복잡해서
순간 “미야자키 씨를 죽여버리고
싶었다(웃음)”고 회고했을 정도다.
그런데 결과가 뭐였냐면,
그 어려운 주문을 전부 담아낸
연기를 NG 없이 단 한 번에 끝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탄하며
“내가 생각했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고 했다니,
이쯤 되면 재능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3. 목소리 너머의 사람, 그가 살아온 방식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는 10살이던 1945년,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직접 겪은
피폭 생존자였다.
그 경험 때문인지 평생
전쟁과 차별, 빈곤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노래로, 강연으로,
글로, 그리고 인생 상담으로.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시대에
성소수자임을 공개하고,
성별을 초월한 자신만의 미학을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기도 하다.
잠깐 냉정하게 짚자면,
그 선택으로 인기가 주춤한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를 꾸미지 않았다는 점.
그게 이 사람의 진짜 무기였다.
4. 마지막까지 사랑을 말한 사람
소속사가 공개한 부고에는
고인이 생전 직접 쓴
자필 편지가 함께 실렸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기는 사랑의 말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폭을 겪은 소년이
91년을 살아내고 남긴 문장이
‘사랑’이라는 게,
쉽게 넘겨지지가 않는다.
빈소는 그가 생전 좋아했던
노란 장미로 가득 채워졌고,
관 속엔 팬들이 오랜 세월 보낸
편지들이 함께 담겼다고 한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
조용히 치러졌다. 마지막 순간
그가 남긴 말은 딱 한마디,
“고맙습니다” 였다.
그 목소리는 화면 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그를 전설의 가수로,
누군가는 무대 위 배우로,
또 누군가는 황야의 마녀로
기억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얼굴로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냈는지를 말해주니까.
오늘 밤엔 ‘모노노케 히메’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틀어봐야겠다.
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필름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편히 쉬시길.
당신이 남긴 목소리와 그 한마디,
오래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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