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세라는 나이에 접어들면 삶의 중심이 가족에서 오롯이 나 자신으로 옮겨오며, 그동안 헌신했던 자식들에 대한 보상 심리가 복잡한 감정으로 나타난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노년의 가장 힘든 시기에 자식으로부터 소외받는다는 느낌은 씻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속에서, 대다수의 어르신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서운함의 실체를 확인해본다.

평생을 바쳐 길러낸 자식들이 나를 정서적 지원군이 아닌, 돌봐야 할 무거운 짐으로 취급할 때 부모는 가장 큰 서운함을 느낀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 걸려오는 형식적인 안부 전화조차 부모의 일상을 체크하는 의무감으로 비칠 때 마음의 문은 닫히고 만다.
나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기를 바라지만 돌아오는 건 무관심뿐이라는 사실이 비참하게 다가온다.

자식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는 곁에 머물던 이들이, 경제적 능력이 사라지자 점차 발길을 끊는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인 고통이다.
나를 위해 썼던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자산에만 관심을 두었던 자식의 속내를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으나 자식의 효도는 조건부였다는 현실이 노년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요양원 입소나 병원 치료 등 중요한 결정을 당사자인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자식들끼리 통보할 때 큰 박탈감을 느낀다.
아직 내 정신이 온전하고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투명 인간처럼 취급받는 상황은 노년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부모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일방적인 통보가 결국은 소통의 단절을 불러온다.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거나 서로의 일상에 무관심한 모습은 부모에게 더 큰 고립감을 안겨준다.
정작 80세 부모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효도가 아니라, 그저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소한 다정함이다.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애써 말을 걸어봐도 귀찮아하는 자식의 반응을 보면 말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모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자식의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힐 때가 많다.
나이 든 부모를 가르치려 들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80년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의 품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예의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지만 이를 망각하는 자식을 볼 때 부모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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