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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있어도 못 트는 에너지 빈곤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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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 35℃를 넘는 폭염에 에어컨은 여름철 건강을 지키는 필수 장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에어컨이 있다고 모두가 마음 놓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 부담에 냉방을 최소화하거나 선풍기에 의존하는 가구가 적잖다. 이런 에너지 빈곤 또는 냉방 빈곤은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은 에어컨 보급률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갤럽이 2023년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에어컨 보급률은 98%나 됐다. 에어컨은 전기밥솥(97%), 전자레인지(96%) 같은 필수 가전보다 보급률이 높아 거의 모든 가구가 소유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에어컨의 전기세가 우려돼 선풍기에 의존하는 가구가 많다는 데 있다. 선풍기는 요즘 같은 폭염에는 에어컨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선풍기는 실내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피부의 땀을 빠르게 증발해 체온을 낮추는 기기다. 따라서 기온과 습도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학자들은 무더위에 선풍기에 막연하게 의존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해 왔다. 호주 연구팀이 2019년 발표한 조사 보고서 ‘서로 다른 열지수 환경에서 선풍기 사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s of electric fan use under differing resting heat index conditions)’이 유명하다. 건장한 성인을 모아 실험한 연구팀은 선풍기의 냉각 효과가 열지수와 습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구팀은 2021년 발표한 조사 보고서 ‘폭염 속 선풍기의 냉각 효과를 분석한 연구(Electric fan use for cooling during hot weather: a biophysical modelling study)’에서도 선풍기 맹신을 경계했다. 연구팀은 선풍기의 효과는 기온보다 습도, 연령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덥고 습한 환경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매우 덥고 건조할 때 체내 열부하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탈수 역시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캐나다 오타와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낸 실험 보고서 ‘극심한 폭염 속 탈수 상태에서 선풍기 사용 효과(Electric fan use with dehydration in extreme heat)’에서 탈수일 경우 선풍기를 장시간 사용하면 땀 손실과 심혈관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을 짚었다. 연구팀은 폭염 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기보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적절한 냉방을 병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련의 연구들은 에어컨이 없는 집보다 에어컨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집이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전기요금 부담 등으로 적절한 냉난방을 하지 못하는 가구가 많다. 정부는 이를 에너지 빈곤으로 정의하고 관련 연구와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에너지 바우처 사업을 운영하며 여름철 전기요금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폭염의 건강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5년 온열질환자는 4460명으로 2018년(4526명)에 이어 감시체계 가동 이래 두 번째로 많았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은 전체 환자의 30%를 차지했고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29명 중 68.6%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폭염은 모두에게 같은 재난이 아니다. 에어컨 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한국도 일부 가구는 전기요금 부담에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버틴다. 선풍기가 모든 폭염 환경에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이어지는 만큼, 에어컨을 필요할 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지가 건강과 생존을 좌우하는 새 기준이 됐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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