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는 멀쩡한데 걸으면 아프다… 혈류가 근육의 요구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말초동맥질환을 이해하려면 걷는 순간 종아리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종아리 근육은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걷기 시작하거나 계단을 오르면 근육이 활발하게 수축하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더 많이 요구한다. 정상적인 동맥이라면 혈류를 증가시켜 이러한 요구량을 맞춘다. 문제는 동맥경화로 다리로 향하는 동맥의 내부가 좁아져 있을 때다. 휴식할 때는 그럭저럭 혈액이 공급되더라도 운동하면서 필요한 혈액량이 증가하면 좁아진 혈관으로는 이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
미국심장협회는 말초동맥질환에서 걷거나 운동할 때 다리 근육이 요구하는 혈액을 좁거나 막힌 동맥이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서 통증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종아리가 대표적이지만 엉덩이와 허벅지, 발이나 발목에서도 불편감이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쥐가 나는 느낌, 화끈거림, 묵직함, 피로감 등 표현도 다양하다. 평소에는 통증이 없다가 일정 시간 걷기 시작하면 비슷한 부위가 아파오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운동 부족이라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몇 분 쉬었더니 다시 걸을 만하다… 오히려 이 패턴을 눈여겨봐야 한다
혈관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다리 통증을 간헐적 파행이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계속 아픈 것이 아니라 걸을 때 나타났다가 쉬면 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2024년 AHA·ACC 말초동맥질환 가이드라인은 전형적인 파행을 걷기나 운동으로 유발되는 통증, 화끈거림, 경련, 불편감 또는 피로감으로 설명하며 휴식하면 일반적으로 10분 이내에 완화되는 특징을 제시한다. 미국심장협회의 환자 안내에서도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 발목 등에 통증이 발생하고 활동을 멈추면 몇 분에 걸쳐 좋아지는 것을 말초동맥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설명한다.
이 특징은 흔히 겪는 근육통과 구분하는 실마리가 된다. 전날 등산이나 스쿼트를 많이 한 뒤 생긴 근육통은 움직이지 않을 때도 뻐근하거나 눌렀을 때 아플 수 있고 며칠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혈류 부족에 따른 파행은 ‘걷기 시작→통증 발생→멈춤→완화→다시 걸으면 재발’이라는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허리디스크와 척추관협착증, 관절질환, 신경 문제 등도 비슷한 증상을 만들 수 있으므로 증상만으로 말초동맥질환을 확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쉬면 괜찮아졌다는 이유로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리 혈관에 생긴 동맥경화… 심장 혈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다리가 아픈데 왜 심근경색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일까. 이유는 말초동맥질환의 주요 원인인 죽상동맥경화증이 다리에서만 선택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액 속 지질과 염증 반응 등이 관여하면서 동맥 벽에 죽상경화반이 형성되고 혈관 내부가 좁아지는 과정은 다리 동맥뿐 아니라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과 뇌로 향하는 혈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말초동맥질환 환자에게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의 죽상경화성 질환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있으며, 여러 혈관 영역에 동맥경화가 존재하는 것을 다혈관질환이라고 한다.
2024년 AHA·ACC 가이드라인은 말초동맥질환 자체를 심근경색과 뇌졸중, 사망 위험 증가와 관련된 흔한 심혈관질환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관상동맥과 말초동맥 등 두 곳 이상의 혈관 영역에 죽상경화성 질환이 있는 경우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포함한 심혈관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종아리 통증이 심근경색을 직접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다리에서 발견된 혈관 문제가 심장 혈관에도 동맥경화가 존재할 가능성을 알려주는 일종의 ‘전신 혈관 경고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심근경색은 관상동맥에서 발생하지만 출발점은 같은 동맥경화일 수 있다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혈류가 갑자기 심하게 줄거나 막히면서 심장 근육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과정 가운데 하나가 관상동맥에 형성된 죽상경화반이 파열되고 그 자리에 혈전이 만들어져 혈관을 막는 것이다. 반면 말초동맥질환은 다리로 향하는 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혈류가 감소하는 질환이다. 발생 장소는 다르지만 두 질환 모두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이라는 큰 범주에서 연결된다.
이것이 말초동맥질환을 발견했을 때 의사가 단순히 ‘다리 통증 치료’만 하지 않는 이유다. 2024년 AHA·ACC 가이드라인은 말초동맥질환 환자에게 심근경색과 뇌졸중 같은 주요 심혈관 사건을 줄이기 위해 항혈소판·항혈전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이를 시행하고, 강도 높은 스타틴을 포함한 지질 관리와 혈압 관리, 당뇨병 관리, 금연 등을 종합적으로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쉽게 말하면 다리 동맥 하나만 고치는 질환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다리 혈관에서 동맥경화가 확인됐다는 사실 자체가 심장과 뇌를 포함한 전체 심혈관 위험을 다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종아리만 보지 말아야 한다… 흡연·당뇨·고혈압·고지혈증이 겹친다면 더 주의한다
말초동맥질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확률로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위험이 증가하며 흡연과 당뇨병, 고혈압, 높은 콜레스테롤, 만성콩팥병처럼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있는 사람에서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미국심장협회 역시 당뇨병과 고혈압, 높은 콜레스테롤, 만성콩팥병, 다른 부위의 동맥 협착 등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안내한다. 문제는 말초동맥질환이 항상 교과서처럼 ‘종아리가 아프다’는 증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24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형적인 파행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말초동맥질환 환자의 약 3분의 1 정도로 추정되며, 상당수는 걷다가 다리가 쉽게 피곤하거나 힘이 빠지고 저리거나 평소보다 걷는 거리가 줄어드는 등 비전형적인 증상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잘 걷던 사람이 최근 비슷한 거리만 걸으면 종아리가 아파 멈추게 되고, 쉬었다 걸으면 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면 한 번쯤 혈관 상태를 확인할 이유가 있다. 특히 흡연 경력이 있거나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이 함께 있다면 단순한 노화라고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복된다면 발목과 팔의 혈압을 비교하는 검사부터 확인할 수 있다
말초동맥질환이 의심된다고 해서 처음부터 복잡한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진료에서는 통증이 어느 위치에 생기는지, 얼마나 걸었을 때 시작되는지, 쉬면 몇 분 만에 사라지는지 등을 확인하고 다리의 맥박과 피부 상태 등을 살펴본다. 이후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검사가 발목상완지수(ABI)다. 팔에서 측정한 혈압과 발목에서 측정한 혈압을 비교해 다리로 혈액이 충분히 흐르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2024년 AHA·ACC 가이드라인 역시 병력이나 신체검사에서 말초동맥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진단을 확립하기 위해 안정 시 발목상완지수를 측정하도록 권고한다.
증상이 심해져 가만히 있어도 발이나 다리가 아프거나 발의 상처가 잘 낫지 않고, 발가락이나 발의 색이 달라지거나 차갑게 느껴지는 상황은 단순한 간헐적 파행보다 혈류가 심하게 부족한 상태일 가능성이 있어 더 빠른 평가가 필요하다. 갑자기 한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생기면서 차갑고 창백해지거나 감각·운동 이상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급성 하지허혈 같은 응급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걸을 때 반복되는 종아리 통증은 심근경색의 전조증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숨어 있는 전신 동맥경화를 발견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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