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과류와 들깨가루, 콩가루는 영양가가 높은 식품이지만 개봉한 뒤 장기간 잘못 보관하면 처음과 같은 식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견과류와 들깨에는 불포화지방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돼 맛과 향이 변할 수 있고, 습기가 유입된 식품에서는 곰팡이가 증식할 가능성도 생긴다. 특히 견과류와 콩 같은 농산물은 아스페르길루스속 곰팡이가 만드는 아플라톡신 관리가 중요한 식품군이다. 그렇다고 오래된 식품에 무조건 독소나 세균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관 기간뿐 아니라 온도와 습도, 개봉 여부와 포장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오래됐다고 무조건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먼저 시작되는 변화는 ‘산패’일 수 있다
견과류나 들깨가루 봉지를 열었는데 곰팡이는커녕 색깔도 처음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냄새가 조금 이상해도 “마른 음식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먹기 쉽다. 하지만 이런 식품에서 눈으로 보이는 곰팡이만큼 살펴봐야 하는 것이 지방의 산화와 산패다. 견과류와 들깨에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데 불포화지방은 산소와 빛, 열 등에 노출되면서 서서히 산화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산화물과 다양한 2차 산화산물이 형성되고 고소했던 향이 사라지면서 흔히 ‘쩐내’라고 표현하는 불쾌한 냄새와 쓴맛, 페인트나 오래된 기름을 연상시키는 향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통으로 보관하는 씨앗보다 가루로 갈아 놓은 식품은 내부 조직이 파괴돼 지방이 공기와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크게 늘어난다. 들깨가루 보관 연구에서도 저장 기간에 따라 산가가 증가하고 일부 지방과 항산화 성분이 감소하는 등 품질 변화가 확인됐다. 따라서 오래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식중독 식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 다른 쩐내나 쓴맛이 나타났다면 ‘곰팡이가 안 보이니까 괜찮다’며 계속 먹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오래된 견과류… 산패뿐 아니라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도 살펴야 한다
아몬드와 호두, 피스타치오, 땅콩 같은 견과류는 수분이 적어 쉽게 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재배와 수확, 건조, 운송과 저장 과정에서 곰팡이에 노출될 수 있다. 견과류에서 특히 중요하게 관리되는 것이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속 곰팡이와 아플라톡신이다. FDA는 일부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가 아플라톡신 B1, B2, G1, G2 등을 생성할 수 있으며 땅콩과 피스타치오, 브라질너트 같은 견과류가 아플라톡신에 취약한 식품에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WHO 역시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와 아스페르길루스 파라시티쿠스 등이 아플라톡신을 만들 수 있으며 땅콩뿐 아니라 피스타치오, 아몬드, 호두, 브라질너트 등 여러 견과류와 종실류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견과류의 미생물 오염을 검토한 연구에서는 아스페르길루스와 페니실리움 같은 곰팡이뿐 아니라 살모넬라, 대장균, 리스테리아 모노사이토제네스 등이 보고됐지만, 이것은 오래 보관하면 이런 미생물이 반드시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니다. 재배·가공 단계에서 이미 오염될 수 있고 부적절한 저장 조건이 곰팡이 증식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오래된 견과류에서 색이 변했거나 곰팡이가 보이고 눅눅해졌으며 이상한 냄새와 맛까지 난다면 아깝더라도 먹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들깨가루… ‘갈아 놓았다’는 것 자체가 보관에서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들깨가루는 세 식품 가운데 산패를 특히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들깨에는 알파리놀렌산을 비롯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데, 통들깨를 갈면 세포 내부에 있던 지방이 산소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실제 들깨가루를 온도별로 8주간 저장한 연구에서도 저장기간이 길어지면서 산가가 유의하게 증가했고 지방과 항산화 관련 성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더 최근에는 습도의 영향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2025년 발표된 연구에서 들깨가루를 서로 다른 상대습도 환경에 12주 동안 보관했더니 상대습도 69% 이상에서는 미생물 증식으로 육안상 품질 저하가 빠르게 나타났고, 81% 이상에서는 불과 1주 후부터 눈에 띄는 변화가 관찰됐다.
반대로 상대습도 43% 이하에서는 지방 산화가 상당히 지연됐다. 연구진은 품질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습도에서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가정에서 판매기한을 일률적으로 정해주는 연구는 아니지만 들깨가루가 습기와 저장환경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사실은 잘 보여준다. 숟가락을 넣을 때 물기가 묻거나 봉투를 제대로 닫지 않아 습기가 반복적으로 들어가면 보관에 불리하다. 그래서 들깨가루는 한꺼번에 대용량으로 사서 오랫동안 열었다 닫았다 하기보다 적은 양을 구입하고 밀폐해 보관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오래된 콩가루… 콩도 아플라톡신 위험 식품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콩가루는 들깨가루보다 지방 비율이 낮은 제품이 많지만 ‘가루니까 오래 둬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콩에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이 들어 있고 가루로 만들면 표면적이 넓어져 주변의 수분을 받아들이기도 쉬워진다. 특히 제대로 밀폐하지 않고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장기간 보관하면 품질이 떨어지고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WHO는 아플라톡신을 만드는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작물에 대두를 포함한 유지종실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오래된 콩가루에는 아플라톡신이 생긴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아플라톡신 생성 여부는 원료의 초기 오염 여부와 곰팡이 종류, 수분활성, 온도와 습도, 저장기간 등 여러 조건에 좌우되며 정상적으로 생산·유통·보관된 콩가루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FDA 역시 곰팡이독소를 만드는 균은 작물의 재배 과정과 저장 과정 모두에서 자랄 수 있으며 온도와 습도 등이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콩가루는 개봉일을 표시해두고 제품의 보관방법과 소비기한을 따르며, 덩어리가 생길 정도로 습기를 먹었거나 이상한 냄새, 변색, 곰팡이가 확인되면 먹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떡이나 음료에 뿌려 그대로 먹는 콩가루라면 가열 과정도 없기 때문에 보관 위생을 더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좋다.

곰팡이보다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곰팡이독소’일 수 있다
식품에 푸른색이나 검은색 곰팡이가 보이면 대부분 바로 버린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눈으로 곰팡이가 보이는 범위와 식품 내부의 오염 범위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USDA는 곰팡이가 실처럼 뻗은 균사를 식품 내부까지 침투시킬 수 있고 일부 곰팡이는 특정 조건에서 마이코톡신, 즉 곰팡이독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견과류와 콩류에 곰팡이가 확인되면 버리도록 안내하고 있다. 대표적인 곰팡이독소가 아플라톡신이다.
FDA에 따르면 아플라톡신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간암 위험이 증가할 수 있고 신장과 면역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매우 높은 농도를 단기간 섭취하면 심각한 간 손상과 간부전까지 일으킬 수 있다. WHO도 아플라톡신이 DNA를 손상시키는 유전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곰팡이가 핀 견과류에서 눈에 보이는 한 알만 골라내고 나머지를 계속 먹거나, 곰팡이가 핀 가루의 윗부분만 걷어내고 사용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곰팡이가 확실하게 확인된 가루나 견과류는 ‘아까우니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폐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냄새·습기·보관상태를 확인하라… 오래 두고 먹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견과류와 들깨가루, 콩가루를 안전하게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곰팡이가 생긴 뒤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변질될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대용량보다 일정 기간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을 구입하고 개봉 날짜를 적어두면 오래된 식품이 찬장 뒤에서 발견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사용 후에는 바로 밀폐해 공기와 습기 노출을 최소화하고, 제품에 냉장 또는 냉동 보관 지시가 있다면 그대로 따른다. 특히 들깨가루처럼 지방이 많고 분쇄된 식품은 빛과 열, 산소와 습기의 영향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견과류 역시 더운 공간에 장기간 두기보다 밀폐하고 서늘하게 관리하는 편이 품질 유지에 유리하다. FDA 자료에서도 견과류의 곰팡이와 아플라톡신 발생에는 온도와 습도 같은 저장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한다. 먹기 전에는 한 번 냄새를 확인해 평소의 고소한 향 대신 기름 쩐내나 페인트 같은 불쾌한 향이 나는지, 맛이 지나치게 쓰거나 이상하지 않은지 살펴본다. 다만 곰팡이가 의심되는 식품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 확인해서는 안 된다. USDA도 곰팡이 포자를 흡입할 수 있기 때문에 곰팡이가 핀 식품의 냄새를 직접 맡지 말라고 안내한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오래된 견과류는 지방 산패가 진행될 수 있으며 보관 상태가 나쁘면 아스페르길루스, 페니실리움 등 곰팡이 오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래된 들깨가루는 불포화지방이 많고 분쇄돼 있어 산화에 민감하며 높은 습도에서는 미생물 증식과 품질 저하가 빨라질 수 있다.
오래된 콩가루도 습기와 부적절한 보관에 의해 변질될 수 있으며 대두 역시 아플라톡신 오염 가능성이 관리되는 농산물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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