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 능력을 버리고 살아가는 식물도 있다. 어떤 종은 땅속 균류를 통해 탄소를 얻고, 다른 종은 이웃 식물에 직접 조직을 연결해 물과 영양분을 빼앗는다.
최근 태국에서 발견된 일명 ‘악마의 꽃’ 티스미아 다에모나(Thismia daemona)도 이런 식물 가운데 하나다. 태국 출라롱콘대학교와 프린스오브송클라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통파품 국립공원에서 발견한 신종으로, 지난달 국제 학술지 PhytoKeys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검은색과 주황색이 뒤섞인 꽃을 피우는 티스미아 다에모나는 꽃 위로 가느다란 돌기 3개가 솟는다. 기묘한 생김새와 낙엽 아래 숨어 사는 습성 때문에 연구팀은 악마를 뜻하는 종명 다에모나를 붙였다. 현재 알려진 개체군은 하나뿐이고 50개체도 되지 않아 연구팀은 멸종위기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위급(CR)으로 잠정 평가했다.
티스미아 다에모나는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다. 대신 땅속 균류와 연결돼 필요한 탄소와 영양분을 얻는 균종속영양식물이다. 이런 생활 방식은 식물 진화 과정에서 한 번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러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했다. 완전히 균류에 의존하는 속씨식물만도 적어도 500종 이상 알려져 있다.

‘악마의 꽃’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은 신종 기생식물 티스미아 다에모나 「사진=토삭 실라난」
대표적인 예가 유령처럼 새하얀 수정난풀(Monotropa uniflora)이다. 역시 광합성을 하지 않는 대신 뿌리가 균류와 연결되고, 균류는 다시 광합성을 하는 나무와 이어진다. 나무가 만든 탄소가 균류를 거쳐 수정난풀로 전달된다. 수정난풀은 특히 무당버섯이 포함된 균류 집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호란속(Corallorhiza)을 비롯한 일부 난초도 비슷하다. 난초는 원래 씨앗에 저장된 영양분이 거의 없어 발아 단계부터 균류의 도움을 받는데, 일부 종은 성체가 된 뒤에도 광합성을 회복하지 않고 균류에 계속 의존한다. 이런 식물들은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숲 바닥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꽃을 피우는 라플레시아(Rafflesia)와 같이 균류를 사이에 두지 않고 다른 식물에 아예 기생하는 것도 있다. 잎도 줄기도 뿌리도 없는 라플레시아는 포도과 덩굴식물의 조직 안에서 가느다란 세포 덩어리 상태로 살아가며 숙주가 가진 물과 영양분을 받아쓴다.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번식할 때 숙주 조직을 뚫고 나온 거대한 꽃 정도다.
특징적인 꽃으로 널리 알려진 라플레시아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아프리카 남부의 히드노라 아프리카나(Hydnora africana)도 마찬가지다. 엽록소와 잎이 없고 식물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다. 숙주 식물의 뿌리에 연결돼 물과 영양분을 얻다가 비가 온 뒤 꽃만 지상으로 나온다. 썩은 냄새를 풍겨 딱정벌레를 끌어들이는 수분 방식까지 갖췄다.
새삼속(Cuscuta)은 기생 과정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란색 및 붉은색의 실 같은 줄기가 다른 식물을 감은 뒤 흡기라는 특수 기관을 숙주의 조직 속으로 밀어 넣는다. 흡기가 숙주의 물관과 체관에 연결되면 새삼은 그곳에서 물과 양분을 가져온다. 일부 완전기생 새삼은 뿌리도 없이 사실상 숙주에 매달려 생애를 보낸다.
이들 식물 모두 기생종으로 여겨지지만, 균종속영양식물과 직접 기생식물은 엄연히 다르다. 티스미아나 수정난풀은 식물 조직을 직접 뚫지 않고 균류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를 얻는다. 반면 라플레시아와 새삼, 하이드노라는 숙주 식물과 직접 연결돼 자원을 가져간다.
기생 과정을 볼 수 있는 새삼속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공통점은 광합성이라는 식물의 가장 보편적인 생존법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대신 이미 다른 생물이 확보한 자원을 이용함으로써 햇빛 경쟁에서 벗어났다. 진화적으로는 큰 모험이지만 일단 특정 균류나 숙주와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어두운 숲 바닥이나 땅속처럼 일반 식물이 불리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대가는 의존성이다. 숙주나 특정 균류가 사라지면 이들 역시 살아남기 어렵다. 티스미아 다에모나가 극히 좁은 지역에서만 확인된 것도 이런 생태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조사 결과 티스미아 다에모나는 거의 평생 낙엽 아래 숨어 지내며 꽃이 필 때에야 지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출라롱콘대 토삭 실라난 연구원은 “식물이 반드시 햇빛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억 년 동안 이어진 식물 진화는 광합성을 버리는 대신 균류를 이용하거나 다른 식물에 직접 의존하는 전혀 다른 생존법도 만들어냈다”며 “이번 ‘악마의 꽃’은 그 기묘한 전략이 지금도 새로운 형태로 발견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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