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누나에게서 작은 택배가 하나 왔습니다. 열어 보니 표지가 다 해진 오래된 앨범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집을 정리하다 나왔다며 보낸 것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넘기던 손이 마지막 장에서 그대로 멈췄습니다.

첫 장부터 잊고 있던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첫 장에는 마당에서 찍은 흑백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엌 앞에 서서 앞치마에 손을 닦고 계셨습니다. 그 옆으로 아직 어린 누나와 제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사진이 왜 찍혔는지도 몰랐습니다. 이제야 어머니가 무슨 마음으로 우리를 세워 두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사진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장을 넘길수록 제 얼굴이 커지고 부모님 얼굴은 조금씩 작아졌습니다. 어느 사진에서는 아버지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무뚝뚝한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진 속 아버지는 늘 한 걸음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시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짐작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에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사진 대신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누나가 연필로 적어 둔 짧은 메모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진은 우리가 찍어 두자는 한 줄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앨범을 덮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남겨 두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별말은 하지 않았고 잘 받았다는 인사만 몇 번 되풀이했습니다.오래된 사진 한 장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 흔들 줄은 몰랐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형제들과 사진 한 장 남겨 두려고 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