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아내가 장롱 위 상자를 내렸습니다. 안에서 오래된 수첩 한 권이 나왔습니다.표지가 갈라지고 고무줄이 삭아 있었습니다. 무심코 첫 장을 펼쳤다가 그대로 멈췄습니다.

첫 장에 날짜와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맨 위에는 결혼한 해의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숫자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쌀값과 연탄값 같은 항목이었습니다. 신혼 때 아내가 적던 가계부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형편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중간에 적힌 금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달 지출 옆에 작은 글씨가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 구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달만 지출이 유난히 컸습니다. 제 첫 출근 때 사 준 구두였습니다. 그 뒤 석 달은 다른 항목이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뒷장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숫자가 끝난 뒤에 한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올해도 무사히 넘겼다는 문장이었습니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별말 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그 웃음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수첩은 다시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대신 이번 달부터 둘이 같이 가계부를 쓰기로 했습니다.숫자를 맞추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 시절처럼 같이 적어 두고 싶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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